김두이 (협동과정 미술경영 박사졸업)

졸업을 앞두고 5년 전 작성했던 박사 지원서를 꺼내 보았다. 그다지 길지 않은 지원서에는 “알고 싶다” 혹은 “연구하겠다”는 문장이 무려 열여섯 번이나 등장했다. 당시 회사에서 학교로 전향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앎’에 대한 나의 열정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많이 아는 것이 박사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만화 영화에서 봐온 박사님들은 흰 가운을 입고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그야말로 척척 박사들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박사 과정을 통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 다시 말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아는 것이 증가한 것보다 모르는 것이 증가한 비율이 높아졌다. 업어치나 매치나 나는 박사라 불리게 되긴 했지만 내가 꿈꾸던 척척 박사의 경지에는 전혀 이르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박사 과정이 영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이 모름의 과정에 대해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먼저, 모르는 것이 원래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또한 모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박사 첫 학기, 모든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일 때 나는 한 마디 운을 떼기가 어려웠다. 대신 학기를 거듭할수록 백지와 같던 나의 모름이 방향성이 있는 질문의 형태로 발전됐음을 느꼈다. 학기를 마칠 즈음 나는 모름을 드러내며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은 남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심한 성격의 나에게 매우 중요한 가정이 됐다. 아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도전하기가 더 어렵다. 남도 모른다는 가정은 모르는 영역의 연구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줬다. 비록 연구의 세월이라 칭할 수도 없는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내 연구의 접근법이 새롭다는 평을 가끔 들었다. 그것은 내 연구에 구체적으로 칭찬할 부분이 없어서인 것도 같다. 그러나 아마 남이 묻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얻어내는 과정이 도전으로 비춰진 듯도 하다.

모름의 더미 속에서 만약 내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스승의 은혜다. 나는 협동과정 미술경영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협동과정 미술경영은 미술, 경영, 법 그리고 행정 등 다섯 개의 전공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과정은 비록 미술대학 안에 개설돼 있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내 전공’이라는 울타리가 없다. 따라서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없다. 시간 흐르는 대로 부유하다가는 우주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반면에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남의 전공’에 가서 한 숟가락씩 떠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백미다.

우리 과정에 참여한 각 전공의 교수님들께서는 모두 각 분야의 고수들이셨다. 사실 그분들의 연구가 나의 연구 주제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각 교수님들의 전공 특성에 따라 내 연구를 좁게도 보고 넓게도 볼 수 있었다. 미술사를 전공하신 지도 교수님은 예술이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넓은 안목을 갖게 하셨다. 공동 지도교수이셨던 경영대의 교수님께서는 방법론의 기초도 몰라 허둥대던 때부터 여러 차례 공동 저술을 감행해 주셨다. 심리학과 교수님께서는 추운 연구실에서 혼자 데이터와 싸우고 있을 때마다 들러 큰 그림을 보게 해주셨다. 산을 좋아하는 교수님과 높은 곳에서 숲을 조망하고 나무도 들여다 본 경험은 좋은 연구 주제가 됐다. 덕분에 나는 예술이라는 주제를 경영학적 관점과 심리학적 관점으로 바라 본 논문 한편으로 꾸려낼 수 있었다. 물론 나의 학위 논문 199페이지 안에는 내가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부분보다 남겨진 질문들이 훨씬 더 많지만 말이다.

박사이기는 하나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는 결론이 지금 막 학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사기를 꺾는 고백이 아닌가 싶다. 혹은 이미 많이 알고 교문을 나서는 수많은 박사님들께 실례가 되는 발언인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현재 모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용기를 전한다. 알기 전에는 누구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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