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15 김제훈

무슨 말을 먼저 건네야 할까요. 축하합니다. 수고했어요. 앞으로도 모든 일 잘 되길 바랄게요. 그리고 부디, 안녕히.

안녕. 어리둥절하고 갈피를 못 잡는 새내기에게 당신은 먼저 손을 내밀어요. 흔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나면 당신은 내 이름을 기억하려 애써 몇 번씩이나 조그맣게 되뇌어요. 난생 처음 마셔본 소주에 얼굴을 찌푸리는 나에게 당신은 때론 조곤조곤하게, 때론 쾌활하게 말을 붙여요. 이름도 출신도 나이도 다른 우리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학문에 대한 열정이었던가요.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는 순수함 덕분일까요. 아니면 울퉁불퉁한 산길마냥 굴곡진 시대를 같이 살아내야 할 동지로서의 애정이었을까요.

당신의 빛깔은 다채로워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였지만 ‘공부만’ 잘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당신은 나에겐 그토록 낯설었던, 대학이라는 곳이 이렇게 다양한 색과 빛 그리고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줬어요. 나는 당신을 수많은 곳에서 만나요. 술판이 벌어진 천막 아래의 그늘에서도, 조곤조곤 시를 읽는 교실 안에서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운동장 안에서도. 눈을 반짝이는 나에게 당신은 손을 잡고 함께 하자고 말해요. 나는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즐거웠어요. 캠퍼스 어디서나 우리는 함께 뛰어다니며 춤을 췄어요. 너른 버들골도 좋았고 초록빛 자하연 근처도 아름다웠어요. 가슴이 답답하면 크게 노래도 불러봤어요. 당신과 함께 캠퍼스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두둥실 저 하늘로 가까워짐을 느껴요.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저 가을하늘로 말이에요.

나는 당신을 닮고 싶어요. 당신은 멋있으니까요. 내가 몰랐던 것들을 당신은 알고 있고, 그것을 나와 아낌없이 나눠요. 스스로의 생각과 철학을 키우는 일. 옳지 않은 일에 분노하는 일.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행동하는 일.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일. 모두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에요. 당신을 만남으로써 나는 변화했고 당신도 나와 함께함으로 인해 새로운 사람이 돼요. 그저 편하게 지내는 형 누나가 아니에요, 당신은.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사람이고,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이에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쉽지가 않네요. 당신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도 나는 번번이 벽에 부딪치고 매번 나의 바닥을 보곤 해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말없이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곤 다시 앞으로 걸어요. 맞아요. 당신은 비뚤어진 옆길 대신 항상 앞길로 걸어요.

당신은 가끔 넘어져요. 사실은 가끔이 아닐지도 몰라요. 울기도 많이 울었겠죠. 흔해빠진 노랫말, 드라마 속 대사처럼 세상살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으니까요.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공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와 취업준비, 학교 곳곳에 붙은 대자보와 심상치 않은 뉴스들,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무력감 때문에 많이 아프기도 했겠지요. 어떻게 아냐고요. 지금의 저도 그러하니까요.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힘내요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어요. 지금은 그런 위로조차도 우리에게 짐을 지우는 시대니까요.

그래도 당신, 힘들 때면 주변을 둘러봐요. 침튀겨대며 학문을 논하고, 술로 밤을 지새우고,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분노하고, 어깨동무를 한 채 소리를 지르고, 거리에서 땀흘리며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있어요. 이 모든 걸 함께 한 당신들, 그리고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던 우리들이 어느새 불쑥 당신만큼 자라 옆에 서 있어요. 그 다정한 사람들 속에 있는 당신, 참 아름다워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멋지고 사랑스러워요.

그런 당신이, 당신들이 이제는 더 넓은 곳으로 떠나갈 때가 됐군요.

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당신. 영영 보지 못할 사람에게 보내는 인사는 물론 아니에요. 우리는 가까운 날에 다시 만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험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함께 달려갈 거예요. 다만 당신이 나보다 조금 더 일찍 발을 내딛었을 뿐이죠. 늘 그랬듯 말이에요. 대학에 막 발을 들인 내게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그리고 늘 반 발짝 앞에서 나를 이끌어줬던 것처럼, 이제 당신이 발을 디딜 곳에서도 그러하리라 믿어요. 다채로운 당신. 너무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당신을 나는, 우리는 조금 뒤에서 따라갈게요.

밖에선 한 철 매미가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대요. 문득 당신 생각이 나요. 노래방에서, 강당에서, 거리에서 목청껏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던 당신이 앞으로도 가끔씩 생각날 듯해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던 그 노래 가사도 떠오를 것 같아요. 당신과 우리들을 닮아 정겨운 그 노랫말 말이에요.

 

더 상처 받지 마 이젠 울지 마 웃어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 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 YB, 「흰수염고래」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