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도 하고 노래도 하는 짬짜면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당차게 소개한 최민지 씨(국악과·09). 그는 “다섯 살 이후로 무소속인 적이 없었는데 졸업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고 운을 뗐다. 그가 7년 동안 몸담았던 서울대 국악과의 커리큘럼은 전통음악의 이론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최민지 씨의 행보는 이와는 거리가 있다. 대학가요제에서 해금을 연주하며 노래 부르고, 홍대에서 대중음악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하는 그는 비단 교내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로 통한다. ‘해금 싱어송라이터’라는 유일무이한 캐릭터로 홍대 인디씬에 자리매김한 최민지 씨를 삼청동의 어느 볕 잘 드는 카페에서 만났다.

 

나만의 무대를 갖고 싶던 아이

 

유치원 때 해금을 처음 만났다는 최민지 씨는 무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국악중, 국악고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대에 섰던 것은 물론, 잠시 배우가 되길 꿈꿨던 것 역시 새로운 무대에 대한 그의 남다른 동경 때문이었다.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다’는 부모님의 말에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한 그는 교내 보컬동아리 ‘트리플에이치’에서알앤비 노래를 부르는 등 학교에서도 스스로의 무대를 찾아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정악합주’ 수업을 계기로 도전하게 된 작곡활동을 통해 최민지 씨는 자신만의 음악을 펼칠 무대를 꿈꾸게 됐다. 관현악기 전공생이 모여 정악을 합주하는 수업 시간에 어느 날 교수님께서 칠판에 오선지를 긋고 학생들에게 작곡해 볼 것을 제안했고 최민지 씨가 나가 오선지를 채웠다. 그는 “처음 해보는 작곡이었는데 교수님께서 피드백해주시고 칭찬해주시니 재밌게 느껴져용기가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주어진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에서 나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직접 선율로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 최민지 씨는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 푹 빠져들게 됐다. 점차 자신이 지향하는 소통하는 음악과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적인 음악의 사이에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최민지 씨는 학교 바깥의 더 다채로운 무대를 찾아 나섰다.

"핸드폰 진동패턴도 굿거리장단이에요" 최민지 씨는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해금을 메고 학교 밖 더 넓은 세상으로

 

학교 밖으로 첫 발을 내딛었던 2012년 대학가요제 무대에서 최민지 씨는 ‘해금 싱어송라이터’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대학가요제 무대를 막연히 동경해 온 그는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자작곡 ‘아리랑-그녀의 노래’를 해금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그는 “학부시절 첫사랑이 환경대학원 3층에서 피아노를 쳐주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가깝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잃어버릴까 고백 한 번 못해본 첫사랑에 대해 노래하고자 했다”고 곡을 설명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진솔한 가사와 감각적인 해금의 울림은 관객들의 큰 호응을 끌어냈고 결국 최민지 씨는 마지막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최민지 씨는 2013년 대학국악제에서도 해금 베이스의 자작곡 ‘칠석우’로 대상을 수상해 사람들의 뇌리에 ‘해금 싱어송라이터’라는 특유의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대학가요제 이후 그는 국악무대가 아닌 홍대에 첫 둥지를 틀며 ‘최민지만의 국악’을 알려왔다. 대학가요제에서 최씨의 연주를 눈여겨 본 한 연주자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 받은 이후 홍대의 다양한 무대에 서게 됐다. 최민지 씨는 해금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의 전공인 국악을 대중음악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황해도·평안도 민요인 서도민요무형문화재 전수를 받고 있는 그는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한다”며 “서도민요 또한 내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민지 씨는 양악기인 기타에도 손을 뻗었다. 그는 “해금은 국악적 색채가 강하지만 단선율 악기라 해금만으로는 곡을 만들기 어렵다”며 “화성악기인 기타를 노래반주로 사용할 때 더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키워가는 최민지 씨는 어느 술자리에서 행드럼 연주자와 즉흥으로 콜라보 연주를 하기도 하고, 홍대 뮤지션들과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주최하는 네팔 지진피해 돕기 자선공연 무대에 서기도 하며 홍대에 국악 선율이 흐르는 이채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현재 최민지 씨는 국악의 틀을 넘어 자신만의 다채로운 음악적 색깔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대체불가능한 그만의 음악적 색깔은 국악이 아닌 다른 장르에도 잘 녹아 든다. 국악이 재즈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최민지 씨는 이 장르초월적인 두 음악의 만남을 제10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무대에서 보여줬다. 재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최민지 씨는 ‘30세 이하 누구나’라는 공고에 끌려 지원했고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결국 유일한 국악기연주자로 무대에 섰다. 최민지 씨는 “산토끼와 자라섬의 연결고리로 수궁가를 떠올렸다”며 동요 ‘산토끼’ 음계로 트리오 구성편곡*을 하는 과제를 설명했다. 판소리의 아니리로 시작해 술 취한 토끼를 해금선율로 묘사한 최민지 씨만의 수궁가에서는 그녀 특유의 재치가 묻어난다. 한편 그는 악기를 내려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해 목소리로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발매한 두 개의 앨범을 포함한 그의 음악적 활동은 단순히 하나의 장르 혹은 키워드로 묶어 낼 수 없는 최민지 씨 고유의 음악이다.

 

‘다른 길’이 아닌 ‘나의 길’

 

매일 밤 유초신지곡**을 들으며 하루를 정리한다며 전통음악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최민지 씨. 그런 그가 국악무대를 지키는 대신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학문적인 전통음악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유연한 창작곡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민지 씨는 이러한 창작을 할 수 있는 배경이 학교 커리큘럼에서부터 마련돼야 한다고말한다. 그는 “학교에서 시대에 맞는 음악,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며 “컴퓨터 음악과 대중음악론 등 새로운 과목이 생겼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이어 “이론적 측면을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보는 경험 또한 중요하다”며 “자신의 음악에 대해 고민해보고 사람들에게 설명해볼 수 있는 수업이 개설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발걸음을 내디딘 최민지 씨는 국악계의 한 폭에 그만의 음표를 채우는 중이다. 장르에 따라 연주스타일을 달리 해야 하는 입시에서 늘 한결같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그는 “당시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사실 그 속에 답이 있었다”며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라고 바꿔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국악을 전공해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드물어 외롭기도 했다는 최민지 씨. 그는 “힘들어도 한 길을 계속 닦고 걸으면 후배들은 내가 온 길까지 편하게 올 수 있을 것”이라며 “나만의 이익이 아닌 음악의 발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고 열심히 자국을 내며 길을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해 새로운 길을 연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음악의 장을 열어갈지 그의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본다.

 

*트리오 구성편곡: 삼주창 또는 삼중주로 구성해 편곡하는 것

**유초신지곡: 국악의 한 갈래인 풍류음악의 대표적 기악곡

 

최소영 기자 s101394@snu.kr

사진: 조수지 문화부장 s4kribb@snu.kr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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