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배근 교수n사회대 언론정보학 ©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일이란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늘상 이런 말로 시작됐다. 그 때도 역시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이라서 그랬을까.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 땐 지금과는 달리, 학생들이 잘못을 하면 즉석에서 엄하게 꾸중을 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다. 또한 그 땐 대학뿐만 아니라, 동네에도 골목마다 '호랑이 할아버지'라는 분들이 계셔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불호령을 내리시곤 하셨다. 지금은 이런 호랑이 할아버지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들었지만.


  난 학교에 다닐 때 결코 '범생'은 못되었다. 그래서 대학시절에도 여러 번 교수님들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꾸중을 우리는 '잔소리'(죄송)라고 불렀다. 솔직히 고백컨대, 그 땐 선생님의 '잔소리'가 몹시 불쾌했고, 선생님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호되게 들은 '잔소리'일수록 오래 기억되어, 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해 보면서 또 다시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또한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조금이나마 배우게 된 것도 모두 은사 교수님들의 '잔소리' 덕분이었다.


  때문에 내가 교수가 되고 나서도 종종 돌이켜 보면서 고맙게 생각했던 것은 대학시절 은사님들로부터 들었던 '잔소리'였다. 그래서 뭐 거창하게 '교육철학'이라고 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나는 '교육이란 곧 잔소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잔소리가 없는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에 지나지 않으며 대학은 학생들의 인격교육도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만약 학생들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야단을 치면서 잔소리를 해 왔다.


  하지만 요즘은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더라도 그냥 못 본척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건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해 봤자 되돌아오는 것은 반발과 원성뿐인 요즘의 대학 세태와 사회 분위기에 나도 굴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학생들에 대한 나의 애정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듯이, 나의 잔소리도 혹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요즈음 난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서도 외면하기 일쑤이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그건 국가와 학부모들로부터 학생들의 교육을 위임받은 교육자로서 그 책무에 대한 일종의 배임행위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학생들에게 계속 잔소리를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잔소리를 포기하고 편하게 몸보신만 하면서 적당히 살 것인가. 이것이 요즘 나의 고민거리이다.


  "선생의 X는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 참 뜻을 난 대학 강단에 선지 30년이 되어서야 이제 겨우 알 듯도 싶다. 선생이라는 직업이 겉보기에는 편한 것 같지만, 고민을 얼마나 많이 하길래 그의 변이 딱딱하고 시커멓게 변해서 개도 외면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아직 나의 것을 개가 외면할 정도로 심각하게 학생들의 교육방법을 고민하는 훌륭한 선생은 못된다는 것을 밝혀 둔다.

차배근 교수(사회대 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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