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채종일 교수

정년을 앞둔 채종일 교수(의학과)는 시원한 주스와 자신이 집필한 기생충 관련 서적을 건네며 기자를 맞이했다. 들뜬 목소리로 책을 소개하던 그의 모습은 지난 4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마치 갓 연구에 임하는 새내기 연구자의 모습처럼 활기를 띠었다. 채 교수는 퇴임 소감을 묻자 “교수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시원하기도 하지만 서울대에서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크게 섭섭하다”라고 말했다.

채 교수가 어릴 적 우리나라 국민의 기생충 감염률은 80%에 육박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이나 일본의 기생충 감염률이 10%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그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생상태가 열악했다”며 “당시 한국을 ‘기생충 한국’이라 부를 정도였다”고 말하며 웃었다. 채 교수는 “어릴 적 회충약을 먹고 누워있자 기생충이 입으로 나오기도 했다”고 회상하며 그 때의 충격이 자신을 기생충학으로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과거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이 창궐한 시절, 기생충을 박멸하는 것은 기생충 학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한국기생충박멸협회에서 활동하면서 과거 우리나라에 창궐했던 해로운 기생충의 박멸에 일조했다”며 한국의 기생충 감염률이 급격히 낮아진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채 교수는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참굴큰입흡충’을 최초로 발견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이를 통해 원인을 알 수 없던 복통의 진원을 밝혀낸 일화를떠올리며 기생충 학자로서 자랑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소개했다.

기생충 박멸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지만 채 교수에게 기생충이란 적이자 친구였다.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질병이 거의 사라진 지금, 세계적으로 기생충은 인간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주는 동반자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채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생충을 여전히 박멸의 대상으로만 본다”라며 “이러한 인식은 의학계의 지원을 줄일 뿐 아니라 기생충 이용의 다양성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외국에서는 기생충을 신섬유나 의약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채 교수는 “우리나라가 선두적인 학문을 학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야에 대한 지원과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자신의 창의성과 창조력을 십분 발휘해 넓은 시야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기생충을 단지 해로운 존재로만 생각했을 때는 박멸 이외의 길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 그들에게서도 이로운 점을 찾으려 한다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무궁무진해진다. 모두가 과거에 사로잡혀 박멸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기생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선 채 교수의 연구 인생은 앞으로 미래를 개척하려는 청춘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준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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