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 미술계 유통망을 진단해 본다

지난 상반기 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이우환 화백의 위작 논란이었다. 최근 1~2년 사이 이우환 화백의 위작 백여 점이 국내외 미술시장에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가,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공론화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이 논란은 아직까지 미지근하게 이어지고 있다. 감정 및 과학수사 결과, 압수된 그의 그림 13점이 모두 위작이라고 판명된 가운데 작가는 그림들이 모두 자신의 그림, 즉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 년이 다 돼가도록 해결될 기미 없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위작 공방이 단지 이 화백 개인의 위신 문제로 치부될 것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미술계 안팎에서 불거지고 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위작 논란은 한국 미술시장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가 곪아서 터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지난 6월부터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학신문』에서는 한국 미술시장의 구조와 문제 그리고 미술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숙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부풀어 오른 한국의 미술시장

일제강점기 고미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의 미술시장은 1950년 최초의 근대적 화랑인 반도화랑이 등장하며 본격화됐다. 이후 76년 한국 화랑협회가 창립되고 98년 최초의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설립되며 반세기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한국 미술시장은 착실하게 성장해왔다. 미술시장연구소 서진수 소장은 “미술시장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고 체계화된 지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현재의 미술시장은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큰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한국 미술시장을 평가했다.

한국 미술시장은 특히 2007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술시장의 작품 판매 금액이 2006년 2,000억~3,500억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4,000억~5,000억으로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고 이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이 감정을 의뢰받은 작품이 2006년 500여 점에서 2007년 1,000여 점으로 급증한 것에서도 나타났다. 서 소장은 “초창기 경매에는 경매사와 구매자를 다 합쳐도 30명 정도 되던 인원이 2007년에는 300명으로 늘어 큰 호텔을 빌려 경매를 진행하기도 했다”며 당시 부풀었던 미술시장의 상황을 회상했다.

이후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상승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한국 미술시장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적 성장을 보여줬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 시장으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단색화 열풍에 힘입어 홍콩으로 진출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김환기, 정성화 등 국내 화가들의 작품을 연일 최고가로 낙찰시키는 성과를 보였다.

 

급격한 성장에 동반되는 성장통

구멍 뚫린 감정과 거래 이력 관리=그러나 과연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질적으로도 성장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감평원에 따르면 감정 의뢰가 들어온 작품 중 위작 비율이 2003년 25%에서 2004년 32%로 증가했다가 이중섭, 박수근 등 굵직한 화가들의 위작논쟁에 2006년 19%까지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12년 32%로 증가했다. 이는 감평원에 작품 감정 의뢰를 맡긴 일부 작품에 한한 비율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전체 작품 중 위작이 얼마나 유통되는지를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마다 끊이지 않는 유명 화가들의 위작 시비는 현재 감정 시스템과 거래 이력 관리에서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선 현재 한국의 감정기관에 공신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서울대 미술관 정영목 관장은 “한국에 전문적으로 감정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감평원에서 발행하는 인증서조차 믿을 수 없다”며 “일본의 동경예술대학이나 문화재 연구소처럼 감정에 대한 교육을 전담하고 박사생들을 키워내는 유서 깊은 기관이 부재하다”고 한국의 열악한 감정 환경에 대해서 설명했다. 문화예술 비평 웹진 ‘크리틱-칼’의 발행인 홍태림 평론가는 “감평원의 전문가들이 화랑 협회의 주요 회원이기도 해서 화랑에 유리하게 감정 결과를 내려주는 유착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실 작품의 진위를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작품의 거래 이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작품을 소유한 사람의 내역이 실린 보증서가 거래마다 반드시 발행되도록 법제화돼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화랑이나 경매에서 거래 이력을 명시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거래 이력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획일화되는 미술시장, 사라져가는 다양성=한쪽으로 쏠린 시장의 구조는 미술시장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이다. 홍태림 평론가는 “시장이 앞으로도 성장을 계속하려면 구조적 기반이 잘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미술시장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바로 시장 전체를 좌우하는 소수 화랑의 독과점이다. 문체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전국의 화랑 433군데 중 열 군데가 시장의 82.6%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매시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행한 ‘2015년 미술품 경매시장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경매 낙찰 총액은 약 1,880억원으로 2014년의 970억여 원에 비해서 2배 가까이 성장한 수치를 보였지만, 점유율 또한 덩달아 높아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두 회사의 점유율이 2014년 79.7%에서 2015년 93%까지 치솟았다.

시장 전체에서도 유통 구조의 획일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거대 화랑과 경매회사의 주체가 같은 상황으로, ‘가나 아트센터’는 서울옥션을 설립했고 ‘갤러리 현대’는 케이옥션의 최대주주다. 정영목 관장은 “화랑과 경매를 대형 회사가 함께 운영하는 것이 유통 구조를 획일화시켜 고가 미술품 위주의 시장 형성에 일조한다”며 시장에 다양성이 없는 구조를 꼬집었다. 심상용 교수(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는 이런 상황에 대해 “1차 시장인 화랑과 2차 시장인 경매는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한 시장 구조”라며 “화랑이 작가를 발굴하고 경매를 통해 승인을 받는 구조인데 화랑과 경매의 주체가 같다면 그 주체의 입맛대로 특정 작가에게 시장이 집중돼 예술적 다양성이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구매자의 집중 현상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홍태림 평론가는 “일부 콜렉터가 미술품 구매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가 소수에게로 집중된 상황은 한쪽으로 치우친 미술계의 흐름을 만든다. 심상용 교수는 “소수의 유명 화가에게로 관심이 집중되고 그들의 작품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위작을 만들어내 유통시키는 것”이라며 유통 서의 독과점과 획일화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다. 획일화된 유통망에 따른 부작용은 신진작가들의 시장 진입을 방해한다. 심 교수는 “유명 작가 위주의 고가 미술품 시장으로만 집중된 현상은 신진 작가가 저가시장에서부터 고가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 없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투명하고 균형잡힌 미술시장 만들려면

◇정부가 준비한 처방전은?=이우환, 천경자, 박수근, 이중섭 등 유명 화가들의 잇따른 위작 논란에 문체부는 지난 6월 9일 제1차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세 차례의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서는 △미술품 유통업(화랑, 경매 등) 허가·등록 기준 마련 △미술품 거래 이력 신고제 △미술품 유통단속반 운영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 △위작 유통 관련 범죄 처벌 명문화 등 위작 방지를 위한 강경한 규제안과 처벌법이 제시됐다. 홍태림 평론가는 이에 대해 “미술시장을 좀먹는 암 덩어리를 치료하기 위해 정부 개입이라는 항암제를 투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관련 법령을 제정해 거래 시 필요한 최소한의 법적 제재를 가하자는 것이다. 여러 번 지적돼 온 감정 시스템의 구멍에 대해서도 공인 미술품감정사 제도를 도입하고 국가 차원에서 연구원을 설립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이 과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심상용 교수는 “미술품 유통 단속, 특사경 도입 등 지금의 법안들은 규제·처벌 위주의 법안”이라며 “이는 지금 당장 위작범들을 위축시킬 수는 있겠지만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긴 어렵다”고 정부의 대책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정영목 관장 또한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감기약 주사 한 방 놓는 것에 그치는 일”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멀리 봐야 구조를 바꿀 수 있다=그렇다면 근본적으로 해결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미술품 거래 관련 데이터베이스의 확립은 시장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양도소득세 개정은 거래 이력 명시화의 한 방안이다. 미술품을 거래할 때 세금을 내게 되면 그 내역이 남게 되기 때문에 거래 투명화에 기여하게 된다. 현재의 미술품 양도소득세는 작고 작가의 6,000만원 이상인 작품 거래 시에만 적용된다. 홍태림 평론가는 “이우환처럼 생존 작가 중에서도 6,000만원 이상으로 작품을 거래하는 작가가 존재한다”며 “투명하게 거래 이력을 남기기 위해서는 작가의 생존 여부에 관계없이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하며, 가격 기준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가의 작품 목록과 거래 상황, 전시 현황, 평론 등을 빠짐없이 담고 있는 전작도록의 발간도 작품의 거래 이력을 밝혀주는 증거가 된다. 최병식 교수(경희대 미술대학)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이 전작도록에 대한 인식이 없다”며 “전작도록은 작품활동의 족보와 다름없기 때문에 위작이나 부당한 방법으로 거래된 작품을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전작도록은 미술사 연구를 풍부하게 해주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정영목 관장은 “전작도록 제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아주 긴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콜렉터들이 자신이 소장한 작품 내역을 공개하고 있지 않는 것도 전작도록 제작을 방해하는 요소”라며 이에 대해 정부와 콜렉터들의 협조를 촉구했다.

유통체제의 획일화를 완화해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주체들의 인식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 심상용 교수는 “소수의 화랑과 경매회사가 주도하는 미술계의 흐름에서 다양성을 꽃피우기 위해선 구매자가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매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더라도 각자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서 작품을 구매하고 작가를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미술과 자주 접촉해야 한다. ‘이럴 때 미술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서진수 소장은 “현재 국립 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이 35억밖에 안 돼 좋은 작품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술관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을 늘려주거나 대중들의 기부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병식 교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항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먹구구식으로 덮어놓고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끼리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영목 관장은 “미술시장의 문제들은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연쇄작용처럼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국 미술시장의 문제를 정리했다. 연일 반복되는 위작 스캔들 또한 여러 가지 문제들의 복합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이는 ‘위작’이라는 국소 부위에 주사를 놓는 것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거시적인 문제다. 바람직하고 투명한 미술시장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 시장 주체와 학자들의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울어진 유통망을 바로잡아 신진작가들이 다양하게 발굴될 기틀이 마련된다면 미술시장의 다양성과 질적 성장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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