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광화문역 장애인 농성장

광화문 역사 지하보도 장애인 농성장에 모인 사람들이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강연을 듣고 있다.

광화문 역사 지하보도 한 편엔 1년 365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를 외치며 농성을 이어온 지도 어느덧 4년, 이제는 일상이 돼버린 농성장과 그곳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4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광화문 무기한 농성장’을 찾았다.

광화문 농성 1466일째

회색빛 광화문 역사 지하보도를 밝히는 노란빛의 농성장 천막 옆에서 장애인 두 명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농성장 옆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잰 걸음으로 그곳을 빠르게 지나치기만 할 뿐이었다. 교보문고가 어디냐고 물어보는 행인의 질문에 능숙하게 대답한 뒤 자리에 앉은 정의당 서울시당 차한선 장애인위원장은 “교보문고나 광화문역 1번 출구 위치를 묻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며, “여기서 농성을 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 자체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제는 일상이 돼버린 그들의 농성과 이에 무감각해진 시민들의 반응에 힘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오늘로 1466일 째,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장애인들이 광화문 역사로 나온 까닭

전국 220여 개 장애인단체 연합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은 2012년 8월 21일 광화문 역사 지하보도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이 지난 4년간 광화문 역사에서 외쳐온 주장은 간단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이 장애인을 복지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해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으므로 폐지하자는 것이다. 장애등급제란 의학적 기준에 따라 장애인의 신체·정신적 손상을 평가해 장애인을 1~6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장애인의 소득보장과 감면·할인 및 서비스를 차등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의학적 장애 상태만 판단할 뿐 사회적 환경이나 욕구 등을 고려하지 않아 다양하고 복잡한 장애인 복지서비스 영역에 적용하기엔 획일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다운 활동가는 “한쪽 팔에 장애가 있는 가난한 장애인이 전신마비면서 부자인 장애인보다 의학적 진단이 더 좋게 나올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만약 교육과 사회참여의 기회가 없었다면 앞으로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 복지지원에 있어 의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초생활수급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또한 장애인의 생존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부양의무자는 기초수급신청자의 배우자나 부모, 자녀 등과 같이 수급권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인 본인의 수입이 전혀 없어도 신청인의 부양의무자가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그를 수급자에서 탈락시키거나 지원액을 줄일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라 부양의무자로 지정된 혈족이 실질적인 근로능력이 없거나, 가족관계가 단절돼 실제 부양을 받고 있지 못함에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가난한 장애인들이 수급권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농성장을 지키던 지적장애 3급 한정우씨는 “부모님이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며 공공근로를 통해서만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토로했다.

농성을 멈출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2017년까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그 중간단계로서 현행 1~3급을 중증으로, 4~6급을 경증으로 구분해 장애등급을 간소화하는 ‘장애등급의 중경 단순화’를 도입했으며 현재 2차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1차 시범사업 이후 중경 단순화를 통해 장애인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욕구해소가 용이해졌다고 발표했으나, 장애계는 등급의 단순화는 장애인 복지확대의 알맹이가 없는 단순한 제도 개편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정다운 활동가는 복지 예산의 증액 없는 중경 단순화는 장애등급제의 또 다른 말이라며, “의학적 기준으로 된 등급을 없애고,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권리로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경우에는 2015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정에 따라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기준이 조금 완화됐을 뿐 여전히 부양의무자의 존재만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크게 존재한다. 따라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광화문역 농성장의 외침은 2016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연대해 차별 없는 세상으로

오후 내내 계속된 서명운동으로 한창 허기질 시간인 오후 5시 30분경 따뜻한 밥과 국, 갖가지 반찬을 든 사람들이 농성장으로 찾아왔다. 자신을 강원도 골프장 토지강제수용 피해주민이라 밝힌 변정애 씨는 “농성장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밥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수요일마다 오고 있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김경래 씨는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몸이 좋든 나쁘든, 늙으나 젊으나, 다” 평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연대의 의미를 밝혔다. 이날 농성장에서는 연세대 젠더연구소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여성혐오와 대중매체’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정의는 신체적 조건, 성별, 성적지향에 상관없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의 동등함을 보장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여성과 장애인은 비장애인 남성중심사회에서 끊임없이 제재, 차별받는 존재이므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후,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광화문 역사 내 장애농성장은 장애인들만의 고독한 외침이 아닌, 누구든지 장애 관련 이슈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차별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공간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다운 활동가는 “이제는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농성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우리의 권리를 만들어 내는 건 바로 이 자리, 이 일상을 단단히 지키는 것”이라며 4주년을 맞은 감상을 밝혔다. 4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그들의 일상에 우리부터 먼저 관심의 손길을 내밀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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