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문화예술직접소비플랫폼: 삼천원'

"삼천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지속 가능한 '덕질'을 꿈꾸는 '삼천원'팀 멤버들

우연히 A밴드의 공연을 보고 ‘입덕’한 J씨. 하지만 A밴드는 그날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활동중단 선언을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애’ 웹툰을 연재하던 작가가 수익성 좋은 플랫폼으로 옮겨 가는 바람에 매일 잠들기 전 챙겨보던 웹툰의 결말도 괴상하게 끝나 버렸다. 이런 불편한 경험을 가진 대학생들이 모여 문화예술계의 기울어진 유통구조를 ‘박살’내고 위태로운 플랫폼을 단단하게 고쳐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철저히 팬의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덕질’을 일궈나가는 ‘문화예술직접소비 플랫폼: 삼천원’을 클릭해 봤다.

◇내가 덕질하려고 만든 플랫폼=‘삼천원’을 만든 이들은 아티스트도, 예술계 종사자도 아니다. 인디부터 클래식까지 각자 좋아하는 분야도 달랐던 5명의 10년 지기 친구들은 올해 초 각기 다른 분야에서의 불편한 경험들을 계기로 하나로 뭉쳤다. 공동대표 장동현 씨(25)는 “연재 중이던 소설의 작가가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는 바람에 완결 나지 않은 마지막 부분을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해서 보거나 좋아하는 클래식 연주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설 무대가 없는 것을 보는 등, 좋아하는 분야는 달랐지만 팀원들 모두 비슷하게 불편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허탈함을 느낀 이들은 새로운 플랫폼을 열기로 마음먹었고 현재는 13명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덕질을 방해하는 일순위 요인으로 꼽았던 것은 바로 문화예술계의 기울어진 유통구조다. 장동현 씨는 경제적인 문제로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불가능한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양극화가 심한 한국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연 돈 문제”라며 “지속 가능한 창작을 막는 요인 또한 시장 구조 때문”이라고 기획 계기를 설명했다. 이런 문화예술계의 오랜 문제는 크라우드펀딩 형태의 아티스트와 팬이 교류하는 문화예술 직접소비 플랫폼 ‘삼천원’을 탄생시켰다. 이 문제의식은 이름인 ‘삼천원’에도 녹아있다. 장 씨는 “노골적인 이름으로 돈 문제를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접, 팬들과 함께하기=‘삼천원’은 문화예술인의 안정적인 수입원을 창출해 팬들로부터 ‘지속 가능한 덕질’을 가능케 하는 것을 구호로 한다. 장 씨는 “삼천원은 기존의 크라우드 펀딩에서 사용하는 ‘밀어주기’ ‘후원하기’ 대신 ‘함께하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삼천원으로 함께하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문화예술의 소비자가 되고, 아티스트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 문화예술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들의 지향점이 함축돼 있다. 금액에 따른 보상은 기존의 활동과 연계돼 제공된다. 웹툰 작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담긴 엽서에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붙여주기도 하고, 인디 밴드는 팬들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주거나 데모음원에 후원자의 이름을 넣어주는 식으로 유·무형의 선물을 제공하며 팬과 함께하고 있다. 장 씨는 “일상툰 작가 펑키마녀를 후원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지속 가능한 창작의 발판을 만드는 이들의 두 번째 목표는 새로 만난 아티스트에게 빠져드는 ‘덕통사고’의 현장을 만드는 것. 아티스트가 자신을 소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는 ‘삼천원’은 ‘심심할 때 랜덤’이라는 기능을 통해 회원에게 아티스트들의 페이지를 랜덤으로 소개한다. 장 대표는 “실제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정기결제 350여 건 중 90여 건은 중복결제”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에게 펀딩을 하러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또 다른 아티스트로의 정기후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 한 회원이 제안해 구현된 ‘내 아티스트 내가 소개하기’라는 기능을 통해 팬이 직접 아티스트를 소개하기도 한다. 아티스트는 이런 기능들로 팬들과 유연한 소통의 장을 갖고, 잠재적 팬을 만나기도 한다. 이용자 차아랑 씨(23)는 “키보디스트 ‘여운’의 영상을 보고 빠져들어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 했지만 소개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며 “‘삼천원’은 ‘여운’이 직접 작성한 이야기를 볼 수 있고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함께 할 수 있어 애용한다”고 플랫폼 이용 소감을 밝혔다.

◇플랫폼 발판 삼아 지속 가능한 성장을 꿈꾸다=‘삼천원’은 ‘지속 가능한 덕질’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차근차근 ‘박살’내려 한다. 장동현 씨는 “성공하기 위해 벌이는 거대 기획사와의 싸움, 자본과의 싸움, 인맥 싸움은 이제 넘을 수 없는 벽 같다”며 “이런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벽을 쉽게 넘을 수 있는 획일화된 장르만 남을 것”이라고 다양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런 취지로 오프라인 공간도 마련하려는 꿈을 품고 있다. 임대료가 싼 동네로 사무실을 옮겨 넓힌 후 기획팀과 개발팀, 그리고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장 씨는 “탄탄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기에 앞서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공공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회조차 큰 벽이 돼버린 문화예술계에서 팬의 입장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안정된 창작활동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이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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