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대비하는 학문, 미래학

가까운 미래의 언젠가. 시민단체 ‘HI, AI’ ‘로봇과 나’ 등 7개 시민단체와 다수의 시민이 참여한 제4회 ‘인공지능축제’가 열렸다. 인공지능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확대됨에 따라 이제는 인공지능도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서울광장에서 행사가 진행됐으며, 최근 가장 주목받는 스타 2위로 선정된 바 있는 인공지능 연예인 ‘제토’가 개회사를 맡았다. 한편 서울광장의 맞은편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수의 종교단체와 보수인사들, 상당수의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번 행사와 시위의 여파로 당일 교통은 오랜 시간 혼잡을 빚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공지능과 이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 인공지능 연예인에 열광하는 팬들과 인공지능의 사용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얼핏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4의 물결이라는 이름으로 ‘지능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는 가운데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어떤 새로운 사건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인공지능에 관한 수많은 영화들이, 위의 이야기가 실현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곧 맞이하게 될 미래를 위해 미리부터 계획을 수립해보려는 학문이 있다. 바로 미래학이다.

 

미래라는 퍼즐, 현재라는 힌트

 

1968년 4월 세계 각국의 경제학자와 교육자, 과학자 등 각계각층의 인사가 로마에 모였다. 이들은 앞으로의 세계가 어떤 문제를 겪게 될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경제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중시하는 국가논리에 회의를 갖고 인구, 식량 생산량, 천연자원, 산업발전,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연구했다. 미국 MIT 대학의 메도우즈 박사를 중심으로 3년여 간 진행된 연구의 끝으로, 그들은 1972년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 내용은 꽤 비관적이었는데, 2100년 즈음에 인구 과포화, 자원고갈, 식량 부족, 환경오염 등으로 전 세계가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당시 미래연구를 진행했던 인사들은 20년 후인 1992년 『성장의 한계, 그 이후』라는 개정판 보고서를 통해 그들의 예측대로 인류가 지구의 수용 능력을 초과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이 완전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자원고갈의 속도 문제와 관련해서 발달하는 기술에 따른 채굴량의 증가를 예측하지 못했다.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거시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세부적인 오류들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로마클럽은 미래 연구를 진행한 대표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미래라는 확신할 수 없는 대상에 도전해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것만으로도 로마클럽은 미래학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래학이 주목하는 ‘미래’라는 것은 애초에 명확하지 않다. 이광형 교수(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는 “미래란 갈수록 불확실하고 쉼 없이 급변하는 것”이라며 “미래예측은 발생 가능한 복수의 미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지 정확히 미래를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래학의 가치는 미래를 정확히 파악해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미래들을 구상하고 각각에 맞는 올바른 전략을 세우는 데 있다.

이 다양한 미래들을 구상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이다. 박성원 연구위원(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아직 작아서 안 보이는 문제를 짚어내는 것이 미래학자의 역할”이라며 “미래학자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잘 짚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로마클럽에서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인구 증가 문제와 천연자원 고갈 문제에 주목한 것도 현재를 잘 관찰한 결과다. 이 문제들은 지금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대표적인 과제들로 부상했다.

결국 미래학의 중요한 역할은 ‘의제 설정’(Agenda Setting)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로마클럽은 인구 증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 세계에 인구조절정책을 제안한 바 있는데, 한국의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대표되는 산아제한정책 역시 이 제안을 배경으로 한다. 미래학자들의 예측과 제안은 실제로 세계 각국의 정책 결정에 있어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미래학은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을 비롯해 자연과학과 공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 분과가 간학문적으로 연결된다. 방대한 데이터를 뽑아내 미래와 지금의 연결점을 찾아내는 것이 미래학 연구의 핵심이기 때문에 각계의 전문가를 모은 ‘전문가 패널’이나 이들이 구성한 시나리오에 맞춰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뮬레이션 제작’ 등이 주요한 방법론으로 거론된다. 다른 학문 분과의 지식들이 중장기적인 미래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사전에 대비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래라는 시나리오의 작가는 대중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W(더블유)>는 웹툰 속 세상과 현실 세계라는 두 세계를 넘나드는 전개로 많은 사람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의 재미있는 지점 중의 하나는 웹툰의 주인공들이 작가를 뛰어넘어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들 각각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강한 욕구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상상하는 자신들의 미래를 가진다. 네덜란드의 미래학자 프레드 폴락이 “모든 시민은 현재 사회의 시민이자 상상 세계의 시민”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을 담고 있다. 최근 미래학은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미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지난 6월 27일(월) 별세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역시 이를 주장했다. 박성원 연구위원은 토플러의 첫 저서인 『미래의 충격』에서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사회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서 이를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미래의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서용석 연구위원(한국행정연구원) 역시 “1960년~70년대 당시 미래는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고 말했다. 제3세계의 발전모델이 철저하게 선진국의 모습을 차용하는 것, 세계기구의 주요한 주장이 선진국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소수의 국가, 그리고 소수의 엘리트만이 미래 연구에 참여하고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게 되면서 대중 일반의 욕구를 담은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앨빈 토플러는 ‘예측적 민주주의’(Anticipatory Democracy)를 제안했다. 대중이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미래의 방향들을 확인해 그들이 원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측적 민주주의다. 여기서 미래학자는 대중에게 미래의 여러 방향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미래 세대의 의견까지 반영하는 정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측적 민주주의다. 박 연구위원은 원자력 발전소를 예로 들며 “핵폐기물 등 후손들이 겪을 고통까지를 염두에 두는 정책 결정이 미래연구자들의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예측적 민주주의의 한 예시로 미국 의회의 하위기관이었던 기술영향력평가기관(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 OTA)을 들 수 있다. 토플러의 추종자였던 뉴트 깅리치를 필두로 1972년 설립된 OTA는 정책 입안에 있어 미국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던 기관이다. OTA가 만들어지면서 정보통신, 보건, 환경 등 여러 분야의 새 법안을 만들기에 앞서 미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화됐다. 연구 내용은 보고서의 형태로 일반에 공개돼 대중들은 향후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이는 앨빈 토플러가 제시했던 예측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국가적 차원에서 작동한 사례다.

<W(더블유)>의 웹툰 ‘W’를 연재하는 인기 작가인 오성무를 미래학자로 생각하자면, 그는 자신의 웹툰 캐릭터들 각각이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를 수합하고 그들에게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결말들을 몇 가지 소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조정하는 것, 이것이 예측적 민주주의다.

 

 상상하지 않는 한국에상상을 이야기하다

 

미래학의 역사가 1960년대 즈음에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미래학을 수용했다. 1968년에 한국미래학회가 세워졌고, 이한빈 등 1세대 미래학자들이 국가 예산 설정, 경제 발전 계획 수립 등의 중요한 정책을 이끌었다. 하지만 서용석 연구위원은 “한국의 미래연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다”고 평했다. 한국의 미래학은 역사적 배경과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특수성으로 인해 꾸준한 발전을 도모할 수 없었다. 미국의 앨빈 토플러, 유럽의 요한 발퉁, 로버트 융크 등으로 대표되는 1세대 미래학자들은 근대화의 부작용에 반성하며 본인들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반면 아직 근대화도 제대로 이룩하지 못했던 한국은 서구의 미래학을 그대로 도입할 수 없었다. 서 연구위원은 “당시 한국의 유일한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며 “그렇기에 한국의 미래학은 일종의 발전학으로 왜곡됐다”고 설명했다.

상상의 폭이 넓지 못했던 것도 한국의 미래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서 연구위원은 “한국에게는 이미 검증된 일본이라는 좋은 경제모델과 미국이라는 훌륭한 정치모델이 있었다”며 “한국은 새 모델을 구상할 필요가 없이 단순히 모방만 하면 됐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스스로 새로운 모델을 고안하고 창조적인 미래를 그릴만한 동기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 역시 “한국사람들은 지금껏 제대로 상상한 적이 없다”고 평했다. 그는 “통일문제를 예로 들자면 한국의 미래학자들은 북한을 중심으로 한 통일 모델은 말조차 꺼낼 수가 없다”며 “아직도 상상의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한계가 반대로 미래학이 한국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작용할 것임을 보여준다. 미래학은 상상할 것을 촉구하는 학문이다. 한국은 이 상상의 가능성이 제한적이었기에 경직된 사회였다. 박 연구위원은 “미래학의 주요한 과제는 사람들에게 능동적 개입을 통해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라며 “모두가 저마다의 상상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되면 한국사회도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서 연구위원 역시 “이제는 한국이 빠른 추종자에서 창조적 리더로 새롭게 위치를 조정할 것을 요구받는 시점”이라며 “근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이제는 독자적인 미래 연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탈산업사회를 주장한 다니엘 벨을 이어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정보 혁명을 예측해냈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2차 혁명 이후의 산업화 시대에 있었음을, 그리고 앞으로 정보와 지식이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보 사회가 저물고 새로이 지능 혁명이 다가올 것이 예측되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은 4차 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스티븐 호킹은 이 새로운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4차 혁명이 어떤 사회를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 로봇의 인권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인공지능 연예인이 정말로 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나리오는 가능성을 가진다는 데 있다. 미래학은 이 가능성에 주목하는 학문이다. 가능성을 가지는 여러 미래의 방향들을 두고 가장 바람직한 미래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이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미래학의 가치이자 목표다. 그렇기에 미래학자들은 현재에 주목해 미래에 문제가 될 것들을 찾아내고, 이 과정에서 상상력이란 힘을 동원한다. 상상의 끝이 가닿을 미래, 그 새로운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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