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근황을 나눈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지금까지 해온 굵직굵직한 큰일을 뽐내듯 말하기도 하고 연구실 월급이 얼마인지, 지도교수님의 성향은 어떤지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나도 되물어가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상대방의 전반적인 생활을 알아갈수록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을 뿐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대방의 근황을 요약적으로 알 수는 있지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 돼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대해선 별로 알게 된 것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분위기가 더 어색해 질 것 같아 난 황급히 자리를 떴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약 시간이 더 있었다면, 혹은 대화의 방향이 잘 설정됐다면 수박 겉핥기식의 정보교환이 아닌 서로 공감도 하고 미소도 오가는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아쉬움을 삼켰다. 안타깝게도, 같은 종류의 아쉬움을 『대학신문』 졸업호를 읽고 나서도 느꼈다.

『대학신문』 졸업호를 읽으며 나는 세 명의 졸업생과 십여 명의 교수님 그리고 한 명의 행정직원을 만났다. 모두 구면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한 명쯤 있을 법한 서울대 구성원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특별한 기억을 서울대에서 품었겠지만 학교를 떠난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그들의 이야기 대부분은 누구나 상상 가능한 ‘졸업호’에 실릴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학교를 떠나는 그 누가 풀어내도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이쯤되면 졸업호는 ‘Newspaper’가 아니라 ‘Oldspaper’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년퇴직하는 행정직원 분과의 만남은 다른 분들과의 만남과 사뭇 달랐다. 첫 출근부터 퇴직을 앞둔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주셨는데, 내가 자주 접하는 학생 또는 교수님의 시각이 아닌 행정 직원의 시각에서 서울대를 바라봤기에 신선하게 다가온 점도 있었겠지만 특정 사건을 언급하며 소감을 말씀하시는 구체적인 점이 나머지 글들과 달리 호소력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 만남에서 미래의 졸업호가 더욱 참신하고 유익하게 바뀌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졸업축하그림과 ‘제XX회 후기 학위수여식 XX일 열린다’로 시작하는 졸업호 1면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교문을 나서며’ 코너에선 학업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회상이 주를 이루는 글이 아닌 좀 더 구체적으로 학교의 특정 장소나 사건에 얽힌 추억이 담긴 글을 받으면 코너의 의미를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졸업이라는 큰 주제에 맞춰 글을 받으니 독자들의 미소를 자아낼 수 있는 졸업생들의 소소한 추억이 뭉뚱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년교수 인터뷰’ 코너에선 교수님의 약력을 줄글로 풀어쓰며 군데군데 교수님의 생각을 끼워넣은 듯한 인터뷰보다는, 정년을 맞이하는 모든 교수님의 인터뷰를 포기하더라도 특정 교수님에 집중해 구체적인 사례와 철학을 담는 심층 인터뷰를 싣는 것이 어떨까? 이처럼 좀 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대학신문』이 나아간다면 떠나는 이들의 모교에서의 추억을 담아내고 새로운 시작을 당당히 맞이할 수 있게 희망을 주는 졸업호의 의미를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김세광
전기·정보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16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