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편집장

학보사 기자의 일상은 꽤나 바쁘다. 토요일엔 신문 조판으로 밤을 새우고 일요일엔 전날 채우지 못한 잠 때문에 뻗어 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지난주엔 웬일인지 마감이 일찍 끝나 오랜만에 상쾌한 일요일을 맞이했다.

근처 대형서점에 갔다. ‘새로 나온 책’ 가판대에서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한 명』을 발견했다. 5월에도 분명 소설 하나가 새로 나왔던 것 같은데 벌써 또 신작이 나오다니 이 작가는 참 부지런도하구나 놀라며 한 권을 집어 슬쩍 넘겨본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한 명』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 자신이 위안부였던 과거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조용히 살아온 할머니다.

80년 전 마을 강가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학대와 고문을 당했던 그녀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에 그녀를 기다리던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끔찍하고 아픈 기억은 그녀를 웅크리게 만들고, 자신의 과거가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가족들을 피해 허름한 재개발 예정지에서 이름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랬던 할머니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계기는 이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뉴스였다. 이제야말로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에 지금껏 숨겨왔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러 그녀는 떠난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마지막 한 명을 만나러 또 다른 한 명이 버스에 오른다. 그렇게 그녀는, 현재로 한 발자국 내딛는다.

책을 덮고 나서 문득 김학순 할머니가 생각난 것은, 그녀가 마주했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의 벽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은 할머니의 노력으로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이야기가 됐다.

반대로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에 속에 갇혀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네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1948년 건국’을 언급하며 갑자기 생뚱맞은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인지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집권세력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나 과거를 미화하고 권력을 놓치지 않고 싶을까 살짝 놀란다. 섬나라의 총리는 지구 반대편, 세계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배관공 차림으로 하수관에서 튀어나오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다음 올림픽에도 정권을 잡으려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쳐라 말한다. 벌써부터 4년 후를 생각하다니 대단한 선견지명이다.

그런 두 사람이 위안부 문제를 곧 마무리 짓는다고 한다.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지출하면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에게는 1억원,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2천만원의 피해보상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이것으로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고 한다.

그들은 계속 시제를 착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업에 집착하고, 미래의 일을 질투하고 소망할 뿐이다. 과거를 이리저리 재단하다 미래를 핑계로 눈앞의 현실을 놓치고 말았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눈앞에 살아있는 40명의 할머니들과, 그리고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화해’와 ‘치유’를 해야 할지 묻지 않았다. 말할 수 없이 무서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 238명의 할머니들처럼 그들은 현재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그들은 지금의 이야기를 이제 그만 잊고 찬란한 과거와 미래를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사실 과거도, 미래도 결국 지금 현실에 달려있는 것인데.

장준하는 해방 후 임시정부 사람들과 함께 1945년 11월, 꿈에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광복으로 기쁨에 겨운 동포들 대신 그들을 맞이한 건 텅 빈 비행장과 미군 장갑차였다. 그는 『돌베개』에서 그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전한다. ‘나의 조국이 이렇게 황량한 것이었는가. 우리가 갈망한 고토가 이렇게 차가운 것인가. 나는 소처럼 발에 힘을 주어 땅을 비벼대었다’

현재가 사라진 지금,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황량하고 차가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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