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안교육 프로젝트 신촌대학교

신촌대학교 윤범기 운영위원장은 "학과장이 수강생이 되고, 수강생이 학과장이 되는 선순환이 신촌대학교에 많은 학과가 유입되게 한다"고 말했다.

신촌역 4번 출구의 어느 스터디 카페에서는 수업이 한창이다. 네댓 명의 사람들이 불어로 된 가사 밑에 한국어 발음을 빼곡히 적은 종이를 보며 샹송을 따라 부른다. 옆 교실에서는 두 남녀 수강생이 ‘예의’ ‘절제’ ‘개성’ 등이 적힌 카드를 짚어가며 임산부석에 앉은 아저씨와 싸우는 상황극을 하고 있다. 학위를 주는 대학교는 아니지만, 배우고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참여 가능한 청년 대안학교, 여기는 신촌대학교다.

◇특명, 교육의 문턱을 낮춰라!=신촌대학교는 대학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한국 대학은 배우기 위한 문턱도 높지만 가르치기 위한 문턱도 굉장히 높다. 윤범기 운영위원장은 “교수가 되기 위한 자격을 갖추려면 보통 10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계속 생산하고 다음 세대로 유통하는 역할을 대학교가 신속히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직 기자가 카드뉴스에 대해 강의하고 싶다면 먼저 박사 학위를 딴 후, 시간강사를 하다 겨우 강단에 설 수 있다”며 “강의를 할 때쯤이면 이미 카드뉴스가 없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배운 지식을 나누고 싶지만 강의할 공간이 없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주로 신촌대학교 강사로 참여한다. ‘샹송으로사랑고백해볼과’의 김주연 학과장은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고 현재는 샹송 뮤직드라마 ‘마담 샹송’을 공연하고 있다”며 “내 경력으로는 강단에 서기 힘들지만 여기선 경력이 부족해도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수업들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구조에 참여했던 잠수사와 유가족, 사건을 취재한 기자 등 관계자를 불러 증언을 듣는 ‘4/16세월호학과’가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의료사고·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사건에 대해 파헤치는 ‘망각에저항할과’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학과가 꾸준히 개설된다. 또 청년들의 생활과 밀접한,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 또한 다양하게 열린다. ‘섹스는 연습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라는 주제로 섹스 칼럼니스트가 강사로 나선 학과도 있었다. 샹송으로사랑고백해볼과 수강생 신경하 씨(32)는 “독학하긴 어렵고 누군가가 조금 도와주면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많다”며 “샹송을 배우며 도서관에서 불어 기초회화 책도 찾아보는 등 신촌대학교 강의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배우고 싶은 자, 가르치고 싶은 자, 누구든 오라=신촌대학교에서는 강의를 개설하는 사람을 ‘학과장’이라고 부르는데, 청년에게 어필할 만한 컨텐츠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학과장이 될 수 있다. 19살짜리 여고생이 뷰티학과 학과장이 되기도 하고,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이 ‘입법전문가돼볼과’를 운영한다. 강의 목표와 커리큘럼을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등 정해진 절차만 밟으면 어떤 학과든 열 수 있지만, 학과장이 직접 정한 최소수강신청 인원을 채워야 강의가 열리기 때문에 실제 결정권은 수강생이 갖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또 청년들이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도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해 최대한 비용은 저렴하고 기간은 짧은 수업을 만들고자 한다. 수업료를 30만원으로 받고 실제 대학처럼 세 달짜리 커리큘럼을 짜는 등 초기엔 여러 실험을 했지만, 현재는 한 과목당 4만원에 한 달 수업으로 고정됐다. 윤 위원장은 “대학 등록금이 평균적으로 400만원 정도 되는데, 그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값인 12만 5천원에 세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을위한정치학과’를 수강하는 전미영 씨(24)는 “학원보다 훨씬 싼 수업료로 실용적이고 유연한 커리큘럼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좋은 이룸은 시간이 걸린다= 지난 4월 신촌대학교는 1주년을 맞았다. 이달 여름학기가 마감되면 5기 수료생이 배출된다. 윤범기 위원장은 “13개 강좌로 시작해 현재는 50개 정도의 수업이 열리며 수강생도 150명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신촌대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생겨났다. 자매학교 격인 ‘노량진대학교’가 만들어졌고 올해 10월 개교를 목표로 ‘이태원대학교’가 준비 중이다.

하지만 신촌대학교의 앞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수업료의 반은 학과장의 강의료로, 나머지 반은 강의실 대여료, 교구비 등으로 쓰이지만 운영위원단은 아무런 보수 없이 활동한다. 이에 윤 위원장은 “외부 지원이 없어야 커리큘럼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무엇이 더 나은 교육이 될지,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 덕분에 신촌대학교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윤 위원장은 “신촌의 모든 스터디 카페가 신촌대학교의 강의실로 쓰이는 날이 올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며 “그때까지 신촌대학교라는 이름에 대한 신뢰를 쌓을 시간이 아직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지도는 아직 낮지만 신촌대학교의 신선하고 다채로운 대안교육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신촌대학교의 작은 날개짓이 우리나라 교육계에 돌풍으로 번질 날이 기다려진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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