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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역사를 장식한 정치적 이단아들[리뷰 한 편] 게임 ‘레플리카’, 그리고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
  • 대학신문
  • 승인 2016.09.04 04:36
  • 수정 2016.09.04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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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비디오 게임은 재미와 오락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비디오 게임은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게임이 ‘정치’나 ‘지배’를 소재로 삼아왔다. 주류 게임 장르 중에서는 주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정치와 지배 경험을 제공해왔다. 가깝게는 일본 코에이 사에서 오랫동안 발매해왔던 ‘삼국지(三國志)’ 시리즈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 시리즈 같이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게임에서부터 보다 세밀한 외교, 협상 전략과 역사적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유로파 유니버셜리스(Europa Universalis)‘ 시리즈 같은 다소 마니아적인 게임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의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government simulation game)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변하지 않는 기조 중 하나는 이 게임들 대부분이 지배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전략이나 시뮬레이션 게임의 마니아라면 자신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게임의 메커닉이 액션 게임의 그것과는 완전히 차별화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한 발짝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액션 게임의 영웅 중심주의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지배자 지향성은 유사한 정치적 맥락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치적 맥락이란 힘과 권력을 통해 타인의 생명과 재산, 심지어는 사회 구조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을 욕망하도록 은밀하게 부추기는 것이다. 그 정치적 욕망은 다분히 환상적인데,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를 성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이 오락의 영역으로 간주돼왔던 가장 큰 이유 역시 이런 환상적인 불가능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주입해 대리만족을 주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흔히 비디오 게임은 재미와 오락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비디오 게임은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생각보다 많은 게임이 ‘정치’나 ‘지배’를 소재로 삼아왔다. 주류 게임 장르 중에선 주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정치와 지배 경험을 제공해왔다. 가깝게는 일본 코에이 사에서 오랫동안 발매해왔던 ‘삼국지’ 시리즈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같이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게임에서부터 보다 세밀한 외교, 협상 전략과 역사적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시리즈 같은 다소 마니아적인 게임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의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government simulation game)이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디오 게임의 정치성과 관련된 양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는 비디오 게임 분야의 자체적인 변화와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맞물려서 이뤄진 것이다. 우선 PC, 모바일, 콘솔 등의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인디게임이 많이 출시되고 영향력이 확대됐다. 이는 무엇보다 개발자에게 수익의 대부분을 안겨줄 수 있도록 설계된 ‘스팀’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 스토어’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 등 오픈마켓 플랫폼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엔진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두 무료나 무료에 준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수많은 작은 게임 스튜디오가 만들어질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비디오 게임 내부의 자체적인 유통과 제작의 변화에 해당할 것이다.

외부적인 영향으로는 게이머들의 인식 변화가 큰 몫을 차지한 것을 들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게임들 중 일부는 이제 히어로물의 영웅중심주의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지배중심주의를 벗어나서 한 개체의 생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나 자신이 어떤 집단이나 사회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세대의 게이머들에게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게임들은 지금까지의 게임들이 정치와 지배구조를 다룬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대해, 그리고 생존의 문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게임들이 ‘팔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를 처음으로 감지했던 것은 이탈리아 기반의 급진 게임 스튜디오 ‘몰레인더스트리아’의 게임들을 접하면서부터였다. 게임학자 이안 보고스트의 저서 『설득적 게임』에 소개된 ‘맥도날드 비디오게임(McDonald's Videogame, 2006)’을 플레이해 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게임은 맥도날드를 비롯한 글로벌 패스트푸드 회사의 열대우림 파괴와 토양 오염, 환경 호르몬 사용 실태를 고발한다. 몰레인더스트리아는 개발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서 이런 문명과 산업 비판을 게릴라적인 점조직 형태로 수행해왔다.

그 뒤 한 회사원의 생존과 고립, 노동의 문제를 다룬 ‘매일 똑같은 꿈’(Every Day the Same Dream, 2009)을 계기로 이 스튜디오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플레이어는 매일 아침 일어나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아내와 인사하고, 회사에 나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동일한 업무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5가지의 일탈을 저질러야 하는데, 그 일탈을 찾는 것을 플레이어에게 과제로 부여하는 것이다. 옷을 입지 않고 출근하기부터 시작해서 운전하던 차를 버리고 걷기, 떨어지는 낙엽을 줍고 생각에 잠기기 등 여러 일탈 행동을 찾다가 마지막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회사 옥상에서 자살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게임이 마무리된다. 매우 짧은 분량의 플래시 게임이지만, 이 게임의 결말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인디게임 중에는 몰레인더스트리아의 게임처럼 독자적인 정치적 입장을 지닌 게임들이 다수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게임들이 어떤 정치적 집단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다소 우회적으로 풍자나 알레고리를 수사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게임 개발자 루카스 포프가 만든 ‘여권 주세요’(Papers, Please, 2013)는 구소련의 전체주의 시절을 연상시키는 게임이다. 공산주의 국가 아르스토츠카는 이웃한 국가 콜레치아와 6년간에 걸친 전쟁을 벌여 콜레치아의 그레스친이라는 도시를 손에 넣었다. 플레이어는 그레스친의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검사관으로 일하면서 그레스친에서 아리스토츠카로 입국하려는 다양한 사람들을 검문해야 한다. 그들 중에는 일반 여행객이나 친지를 방문하는 단순 방문자들 외에도 밀수업자, 스파이, 테러리스트도 있다. 이들이 입국검사관을 속이고 서류를 조작하는 방식은 점점 고도화되고, 이에 대응해 아리스토츠카가 플레이어에게 내리는 지령 또한 점점 복잡해진다. 입국증을 추가하고, 허가서를 덧붙여야 하며, 때로는 구금과 알몸 수색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모든 것이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행위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 자유가 부재했던 구소련과 동유럽의 국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가족 부양의 의무가 부가된 게임 내 주인공의 딱한 처지와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마구 뒤섞이면서 전체주의 사회 내에서 개인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이 게임 내에는 전체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다소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그레스친의 스트립 바에서 일하는 윤락여성은 검문소의 검색대 속으로 몰래 명함을 밀어 넣고 홍보를 하기도 하며, 매번 손수 그린 여권을 들고 와서 입국시켜 달라고 조르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도 등장한다. 계속해서 오르는 집세와 난방비, 아내와 아들의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주인공의 안쓰러운 처지도 이러한 알레고리의 효과를 돋보이게 해준다.

지금까지 이러한 정치적 이단아 같은 인디게임들은 지금까지 거의 모두 해외에서 출시된 게임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 인디게임계에도 이러한 정치적 문제작이 등장했다. 올해 여름 스팀 플랫폼에 출시된 ‘레플리카’(Replica, 2016)는 소미(Somi)라는 예명을 쓴 한국 인디게임개발자가 1인 개발한 작품으로, 매우 독특한 소재를 지니고 있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익숙한 휴대전화 시작화면을 만나게 된다. 부재중 전화가 11통, 미확인 문자가 8통이나 도착해 있다. 휴대전화에는 암호가 걸려 있고, 1234나 0000 등 흔히 설정하는 번호를 눌러보아도 잠금 화면을 풀 수가 없다. 이를 몇 번 시도할 때쯤 휴대전화 주인의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도착한다. 미리보기를 통해 딱 한 줄 내용을 읽을 수 있는데, 내일이 휴대전화 주인의 생일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급하게 휴대전화 배경화면의 날짜를 확인한 뒤, 1일을 더해 4자리 비밀번호 숫자를 입력하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이때 4885라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게 되고, 이 전화가 국가안보부로부터 걸려온 것임을 알게 된다. 휴대전화의 주인은 디키 그린리프라는 고등학생인데, 민중해방을 모토로 하는 록 페스티벌 겸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를 문제 삼은 국가안보부에 체포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디키와는 서로 모르는 같은 고등학교의 톰이라는 학생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국가안보부는 톰과 디키에게 서로의 휴대전화를 바꿔 쥐어주고 서로의 전화에서 불온한 내용을 찾아내게끔 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플레이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12개의 멀티 엔딩으로 나뉘어 게임이 진행되게 된다.

사실 국가안보부가 국가정보원의 알레고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굳이 알레고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레플리카’는 우회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정치적 감각을 대변해줄 수 있는 게임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플리카’는 매우 각별하다. 다양한 멀티 플롯과 엔딩, 퍼즐의 치밀함은 오히려 이 게임에서 부차적인 요소처럼 느껴진다. 반어법으로 가득 찬 ‘레플리카’의 수사 속에서 우리 세대는 이 게임이 던진 정치적 의미를 훌륭하게 간파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이정엽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사진제공: 소미게임즈(somigames.com)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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