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공공부문 외주화의 그늘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중순,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경희 씨는 눈물의 삭발식을 치렀다. 손경희 씨는 이 자리를 통해 한국공항공사의 청소용역업체인 ‘지앤지’ 간부들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폭언, 살인적인 업무강도 등의 인권침해 실태를 고발하고, 30년 넘게 근무해도 최저시급을 받는다며 정부의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에 따른 시중노임단가 지급과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공항공사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이유로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에 손경희 씨는 한국공항공사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지난달 30일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사실 공공부문의 외주화*에 따라 사업을 일부 위탁받은 하청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정비 외주화에 따라 사업을 넘겨받은 ‘은성PSD’에서는 지난 5월 스무 살 김 군이 구의역의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9년에는 한국도로공사의 외주화가 추진돼 소속 기간제 직원이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소속의 간접고용으로 전환되면서 즉각 임금삭감과 복리후생 감소의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는 여유인력이 없어 생리현상을 참으며 16시간씩 일하거나, 하청업체가 개인별 사용 전기량을 체크해 폭염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노동을 계속해나가야 했다. 최근엔 인천 톨게이트 업무를 위탁받은 하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톨게이트 노동자 8명이 해고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진행해온 바 있다.

 

원사업자도 책임 피할 수 없어

일련의 사건들에서 노동자 측은 공통적으로 하청업체뿐 아니라 외주를 맡긴 원사업자의 책임을 묻고 있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한국공항공사를 향해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라며 요구하고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꾸려진 진상조사단에서는 서울메트로도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가 외주화를 통해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조장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시장기능을 확대하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공기업이 인원을 줄이는 과정에서 하청업체가 공기업 출신의 인사를 고용하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공피아'(공항+마피아), ‘메피아’(메트로+마피아) 등의 낙하산 인사를 출현시킨 책임을 물었다. 이를 배경으로 등장한 용역 관리자들이 하청업체가 공기업으로부터 받는 용역 인건비 가운데 상당수를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빼돌리는 중간착취를 가해왔으며, 이에 따라 용역근로자들의 임금하락과 근로환경 악화 등의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성PSD는 매달 용역비로 약 5억 8천만원을 지급받았고 서울메트로의 'PSD 유지관리 산출내역서'에는 은성PSD 자체 채용자의 1인당 월평균 노무비를 244만원으로 설계했으나, 김 군의 월급은 고작 144만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서울메트로 출신 은성PSD 임원이 소화기 검사와 같은 쉽고 안전한 일을 맡으며 월평균 400만 원 가량의 월급과 자체 채용자들에겐 지급되지 않는 복지후생비까지 제공받았다. 이에 노동자 측은 공기업이 하청업체의 관리감독에 소홀하다고 지적하며 하청업체로부터 발생하는 노동자 권리침해와 중간착취 등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외주화 자체가 문제 vs 관리감독의 문제

낙하산 관행에 따라 하청업체 임직원으로 취업하게 된 공기업 출신 직원들의 중간착취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외주를 준 공기업 또한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배경이 된 공공부문 외주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린다.

노동계는 대체로 공공부문의 외주화와 그에 따른 노동자 간접고용의 흐름 자체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의 구조조정 논리에 따라 공공부문마저 외주화돼가면서 사회 전반에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고용불안이 심화돼 노동시장 전체가 하향평준화됐다는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지난해 산재사망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였다고 지적하며 “외주하청 경제구조의 말단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외주화를 강행한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며 공공부문의 외주화 흐름을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공익적 모범사용자로서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며 외주화를 대신해 사용자책임이 분명하고 이해관계 조정이 수월한 직접고용을 통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공공부문의 외주화로 쉽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경우 “노동자 중간착취의 문제와 공평하지 않은 대우, 그리고 국가와 서울메트로라고 하는 원청의 관리 부재, 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문제”라고 설명하며 서울메트로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외주화를 진행·관리했더라면 김 군이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신음하고 목숨을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낙하산 인사, 중간착취의 문제는 외주화에 따른 필연이 아니라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다”며 공공부문이 적극적 관리자로서 외주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부문 외주화로 외부의 전문 자원을 활용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고 시장변동에 대한 유연성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으므로 외주화의 흐름 자체는 이어가되, 현재와 같은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사업자의 하청업체 관리감독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외주화는 가능한가?

공공부문은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서비스를 항상 적절하게 공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가져야 하며, 국민이 부담하는 조세를 재원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효율성 또한 갖춰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공공부문은 위험에 대비할 유연성을 증가시키면서도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외주화를 활용해왔다. 2014년 고용노동부 공공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견·용역 등의 ‘기관 소속 외 비정규직 인력’이 11만 3,890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인력의 1/3 정도로, 외주 인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현실적인 예산제약 아래에서 외주노동자 처우악화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쉽게 외주화의 방식을 선택해왔고, 그에 따라 중간착취, 임금하락, 차별대우 등과 같은 많은 노동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은수미 전 국회의원은 “한국은 최악의 외주화가 가능한 국가”라며 “외주화를 해야 한다면 현재와 같은 불법 외주화가 아닌 노동자가 헌법과 노동법에 기초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외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노동권이 침해되지 않는 ‘좋은’ 외주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 우선 무분별한 외주화의 확대는 독이 될 수 있다. 외주업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중간착취 문제로 외주화가 꼭 자원 활용과 업무수행에 있어서의 효율성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안전업무의 외주화는 사고 발생 시 공공부문의 책임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들고, 시민의 안전이 ‘최저가 입찰’로 낙점된 민간업체에 맡겨져 안전업무의 상당부분이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실제로 안전업무의 성급한 외주화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와 같은 인재를 발생시켰고,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는 역사 운영 5개 분야를 모두 직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은수미 전 의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권리침해뿐 아니라 제공받는 시민의 안전 또한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모든 업무에 대해서는 외주화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와 원사업자가 나서 하청업체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청업체의 중간착취가 노동자 권리침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그들의 지대추구 행위를 감시할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대호 소장은 “무한 경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동인권, 근로조건, 시장실패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 공공부문 전체를 관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며 외주화의 폐해를 예방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한 공공부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장기적으로 노동력 서비스에 상응하는 직종별 보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개별 인력이 업무에 기여하는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면 외주화의 흐름 속에서도 노동권이 보호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정규직은 연공서열제로 운영되는 반면 비정규직은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고정급 체계가 적용돼 임금격차를 키우므로, 비정규직에도 제한적으로 경력을 인정해 나가는 임금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외주화: 최종제품 혹은 서비스의 공급자가 그 업무의 일부를 외부의 독립적인 업체에게 발주해 납품받는 사업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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