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쿠바 아바나의 사람들을 만나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공식 방문한 이후 수도인 아바나는 8월의 뙤약볕에도 건설현장과 여러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한편으론 도시에 깃든 체 게바라의 이미지, 세금을 걷으러 다니는 경찰들과 아침마다 붐비는 물품배급소는 쿠바의 독특한 정체성을 숨김없이 나타냈다. 아바나의 쿠바인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쿠바의 오늘날과 앞으로의 쿠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쿠바식 민박인 까사를 관리하는 엔젤(22, 까사 관리인)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쿠바 동부에서 아바나로 왔다. 밴드 콜드플레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언젠가 그들이 쿠바에 순회공연을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비자를 얻기 어려워 다른 나라로 여행가긴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Q.“앞으로의 쿠바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A.“앞으로 쿠바는 바뀔 거고 난 그 변화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 무엇보다 인터넷! 공용 와이파이가 생긴 지 2년밖에 안됐어. 그 와이파이도 엄청 느리고. 쿠바와 관련된 국제분쟁도 줄어들고 국민들에게 좀 더 저렴하게 식품이 제공됐으면 좋겠어.”

먼저 질문지를 받아든 코코넛좌판 사장님은 곧 뒤편에 앉아있던 친구들에게 향했다. 네 명의 쿠바노들은 상의하면서 인터뷰 질문지를 함께 답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Q.“쿠바의 좋은 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A.“쿠바 혁명*이지! 혁명은 여러 압력을 잠재웠고 쿠바인들의 연합을 유지시켰어.”

*쿠바 혁명: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쿠바는 독립 이후에도 미국자본에 종속된 사탕수수 단일작물재배 경제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독재정권의 부패에 항거한 여러 차례의 민중봉기도 미국의 비호로 진압됐다. 1956년 12월 2일 그란마 호로 상륙한 후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의 17명이 시작한 게릴라운동은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정권을 축출하며 민주주의 혁명을 이뤘다. 1960년 후반 이후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미국 기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단행하며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공언해 쿠바라는 사회주의국가가 등장했다.

 

올드아바나 쪽에서 만난 주안(54)은 마주치는 모든 관광객을 체 게바라가 왔었던 술집으로 안내했다. 콤비인 줄리와 함께 그들은 칵테일을 권하고 특정 식당으로 손님들을 이끌었다. 담배 몇 개비를 신세지더니 줄리는 아들 사진을 꺼내며 우유 값으로 10달러만 달라고 졸랐다. 물론 볼 일이 끝나자 이들은 바람같이 사라졌다. 흡사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떼아르디에 부부와 비슷했다.

Q.“여기가 어디죠?”

A.“여기! 여기가 62년도에 체 게바라가 왔던 자리야. 심지어 산타클라라에선 두 걸음 갈 때마다 체 게바라야. 거기서 체 게바라는 신과 같은 존재지. 와서 종을 쳐봐봐. 체 게바라가 일하던 자리라니까!”

 

혁명박물관(museo de revolucion) 앞에서 만난 윌페르도(40, 인력거꾼)는 이번이 두 번째로 한국 손님을 태우는 것이라며 신기해했다. 아바나에선 한국 사람은커녕 아시아인도 보기 힘들었다. 많은 쿠바인들은 한국 여자를 보면 먼저 치나(중국인 여자) 혹은 재빤(일본인)이라고 부르며 뚫어져라 쳐다봤다.  

Q.“혁명 후의 쿠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알다시피 사회주의에는 장단점이 있어. 모두가 법 앞에 동등해졌지만 국가가 정해놓은 것들을 따라야 하는 경향이 강하지. 사람마다 한 가지 직업만 가져야 한다든지 1달, 3달, 1년 단위로 세금을 낸다든지 하는 것들. 무엇보다 쿠바 정치에 대해 물어보면 ‘음? 난 잘 모른다’면서 대답을 피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그래도 쿠바인들은 진솔하기 때문에 너의 질문에 늘 솔직하게 답변해주려 했을 거야.”

 

아바나 동쪽 바닷가엔 산호세(San Jose)라는 기념품센터가 있다. 기념품의 절반은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했다. 학생인 록사나(19, 오른쪽)와 판매원인 케일라(23, 왼쪽)는 각양각색의 그림들 앞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Q.“쿠바 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앞으로의 쿠바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A.(록사나)“우린 쿠바 혁명에 대해 더 읽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더불어 여당이 교체되거나 미국과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볼 수 있다면 좋겠어.”

(케일라)“나도 쿠바 혁명을 좋게 생각해. 쿠바 혁명의 성취는 계속되고 있어. 하지만 복지를 위해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해. 예컨대 미국과의 관계 같은 것들. 경제, 특히 이중화폐제도*도 심각한 문제지.”

*이중화폐제도: 쿠바에선 월급과 기본적인 서비스에 대해 국립화폐(CUP)를 사용하는 한편 수입제품과 관광 서비스 등에는 태환화폐(CUC)를 따로 사용하고 있다. 헷갈리는 이중환율과 벌어지는 빈부격차 등의 문제로 2013년 정부차원에서 이 제도의 철폐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바나에는 종종 굵고 긴 레게머리를 한 아프리칸 쿠바노(흑인 쿠바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85%가 가톨릭인 쿠바에서도 이들은 산테리아(Santeria)라는 종교를 따른다. 산테리아는 쿠바 땅에 노예로 끌려온 나이지리아 요루바 부족의 혼합주의와 가톨릭 신앙이 결합해 여러 신을 모시면서도 주술적 면모를 띤쿠바 고유의 종교다.

산테리아를 믿는 쿠바인들은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생활규범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 광장에서 만난 로베르토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당분간 물고기를 먹거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웃어보였다. 그중에는 비가 안 와도 종교를 이유로 밤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 아프리칸 쿠바노들도 있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827@snu.kr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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