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기자

작년, 그러니까 스물 둘의 여름에서야 처음으로 ‘난쏘공’을 끝까지 읽었다. 그 전까지 작품에 대해 접했던 건 몇몇 대사, 그리고 언어영역 문제집에 종종 실리던 발췌문이 전부였기에 ‘왠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짧지만 강렬하고 단단한 문장들은 그 선입견을 가볍게 부수면서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자주 인용되는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문장도, 달나라를 외치는 대사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리고 이는 지난 5년간 유성기업 노조의 투쟁의 역사를 요약하는 한 문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료를 찾을수록 그동안 벌어진 일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고, 숨겨진 사실들은 계속 나왔다. 일단 현장에 나가면 더 잘 알게 될 거라, 말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 거라 막연한 생각으로 발길을 옮겼다.

폭염이 내리쬐는 7월의 노숙농성 현장에 도착했다. 편한 옷에 긴 팔토시를 두르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채, 얇은 돗자리 위에 간신히 누워 나무 그늘로만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은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노조파괴 사과를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열 발짝 떨어진 곳에 현대자동차의 직원 예닐곱 명이 서 있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선진 노사 관계’ ‘선진 기업 문화’ 등의 의도를 알 수 없는 가슴띠를 번듯한 양복 위에 두르고 있었다. 무료하게 서 있는 한 명을 붙잡고 이 곳에 서 계신 이유가 뭔지 물었다. 그는 관리자 격으로 보이는 남자를 가리키며 대답을 피했다. 그가 지목했던 남자에게 물었다. “저 분들은 왜 서 계신 건가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더 알 수 없는 기분이 됐다.

지난 8월 27일은 한광호 씨의 생일이었다. 그 다음날 그를 기리는 생신제가 열렸다. 분향소 한구석에는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린 나무가 설치되었고, 조합원과 그 가족, 시민들은 한광호 씨가 즐겨듣던 노래를 부르며 그를 기렸다. 노래가 끝나자 한광호 씨와 함께 유성기업에서 일했던 그의 형이 마이크를 잡았다. 명절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던 동생에 대한 기억을 풀어낼 때까지만 해도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나 ‘나는 개다’라고 외친 후에야 공장에 들여보냈다는, 충격적이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취재를 갈수록 더 잘 알 수 있고, 더 많이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취재가 거듭될수록 무력감은 커져갔다. 기껏해야 두어 번 현장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는 것으로 지난 5년간의 투쟁에 대해 느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조용히 바랄 뿐이다. 시끄럽지도, 강렬하지도 않지만, 잠시 서 사진촬영을 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길을 묵묵히 지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은 ‘날마다 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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