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에커치-『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641쪽, 28,000원)

밤이라는 시간이 갖는 어떤 전형성이 있다. 일단 밤은 공포와 연결된다. 귀신 이야기의 모든 무대는 밤이고, 강도나 살인과 같은 범죄도 대부분 밤에 일어난다. 하지만 밤이 공포로만 비유되는 것은 아니다. 밤은 축제의 시간이기도 하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 섹스를 즐기는 연인들의 이야기 역시 대부분 밤을 무대로 한다. 로저 에커치 교수(미국 버지니아공대 역사학과)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는 이 모순적인 밤에 관한 역사를 총망라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근대 이전, 전기가 발명되기도 전의 깜깜한 밤을 유럽인들이 어떻게 보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얼굴까지 까맣게 칠하고 어둠을 틈타 약탈을 행한 도둑,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코를 골며 자다 미친 개로 오해받아 총에 맞은 술주정뱅이의 이야기는 유럽의 밤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 유럽 도시국가 대부분은 법으로 밤에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금지했고, 통행금지 규정을 만들거나 경비견이 도시 안팎을 돌아다니게 했다. 한편 밤의 공포는 사람들의 사적인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유럽 사람 대부분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밤을 보냈다. 마을의 아낙네들은 안전한 장소에 모여 바느질을 하며 수다를 떨었고, 귀족들은 불꽃놀이나 조명장치를 활용한 연극을 즐기기도 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밤은 공포의 시간인 동시에 여가의 시간이었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는 이 책을 두고 “요약될 수 없는, 경험해야만 하는 책”이라 평했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편지, 속담집에서 삼류 소설책까지 밤이라는 테마로 엮이는 모든 사료가 총망라됐기 때문에 이를 요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이 책에는 대표적이거나 중대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될 리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소한 사건들이 반복된다. 역사가 승자와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흔한 믿음에 비춰볼 때, 이 책이 논하는 역사란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쓸모없는 것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저자는 당대 사람들이 밤을 향유한 태도를 이해하는 것은 당대의 삶 전반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이것이 지금의 우리와도 맞닿아 있다는 확장된 결론을 제시한다.

에커치 교수는 자유연애와 혼전성교를 규제하던 엄격한 법이 밤의 빈번한 일탈로 인해 점차 느슨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역사를 추론해 본다. 인공조명의 사용 범위가 어떻게 넓어져갔는지의 과정은 인간의 일 능률이 발전하는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단어 생성의 기원을 파헤쳐 볼 수도 있다. ‘curfew̓(통행금지)가 불을 덮으라는 뜻의 불어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 ‘nightman̓(오물 청소부)의 배경에 밤마다 몰래 투기되는 배설물로 가득했던 유럽의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꽤나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잠의 역사 역시 당대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재의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탈리아의 속담 중에 ‘푹 자는 것이 보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에도 숙면은 중요한 과제였다. 사람들은 잠을 잘 자기 위해 이불을 불에 달군 돌로 덥히거나 저녁을 덜 먹어 소화 부담을 줄이는 등의 노력을 했다. 첫잠 때는 오른쪽으로 눕고 그다음에는 왼쪽으로 누워야 잠이 잘 온다는 유럽의 숱한 의학 서적들도 잠을 정복하기 위한 유럽인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의 잠에 관한 폭넓은 서술은 과거를 짚어보는 것이 미래를 엿보는 힌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웰빙이 떠오르고 그중에서도 ‘잘 자는 법’에 관심이 많아진 현대인에게 이 책은 잠에 관한 다각도의 관점을 제시한다. 월터 브라운 교수(미국 브라운대 의학과)가 “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제약회사나 대학의 연구소가 아니라 일개 역사가로부터 나왔다”고 감탄한 것도 그 유구한 역사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는 게 밤인데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전부 낮이지 않느냐는 한 역사가의 의문에서 출발한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거시적 사건 중심의 역사 구성에 반기를 들고 역사는 유의미한 사건의 나열이라는 명제를 해체한다. 자칫 무의미해 보이는 사소한 이야기들이 한데 뭉쳐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완성되고, 그 흐름은 현재, 더 나아가서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역사 서술의 문법을 비틀었음에도 역사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로의 열쇠라는 명제를 다시금 되새기는 셈이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밤이라는 시간이 가진 모순만큼이나 역설적인 방법으로 역사에 대해 논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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