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말하지 않았다
진화론은 말하지 않았다
  • 대학신문
  • 승인 2016.09.04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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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후 이제 진화론은 자연과학,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 거의 모든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생명과학부 임현수 석사과정

반석이 됐다. 그러나 현재 20~21세기 사회에서 진화론만큼 많은 오해를 일으키고, 오용되고, 질타를 받은 이론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다 진화론을 우파가 먼저 선점하게 됐을까? 사회과학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가지는 이미지는 아주 거칠게 남아 버렸다. ‘약육강식의 이론, 부자의 편을 들어주고, 복지를 무시하자는 주장’ ‘유전자의 관점에서 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학문’ 인간 마음의 why question에 대한 답을 진화론에서 찾는 학문인 진화심리학도 비난받긴 마찬가지다. ‘수렵 채집기의 인간 본성들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그렇다. 아직도 많은 오해, 때론 의도적인 악용마저 당하고 있는 진화론. 많은 사람들은 ‘감히 우리 인간의 본성, 사회, 문화에 대해 이런 식의 담론을 펼치다니’ 하고 학을 떼는 듯하다. 그들의 마음속엔 ‘진화의 법칙과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가 닮았다고 인정하거나,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그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정당화한다’는 큰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거부감은 당연하다.

다윈주의의 (잘못된) 파생 사상들에 대해 가장 격한 거부를 드러냈고, 그러나 결국 실패했던 유명인사로는 마르크스를 꼽을 수 있다. 경쟁의 결과일 뿐이니 부의 불평등이 당위를 얻는다는 말은 그가 듣기엔 얼마나 역겨웠을 것인가! 마르크스는 빈곤은 단지 경제 체제의 문제에서 비롯됐을 뿐이라며 새 유토피아를 펼치려 했으나, 인간의 욕망과 동기 등 다양한 본성들을 무시한 결과는 녹록치 않았다. 우리의 타고난 본성이 ‘빈 서판’ 마냥 백지 상태일 것이라는 것은 그의 큰 패인이었으리라.

현재 우리가 수호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비록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론 자유, 기회의 평등, 관용 등의 가치들을 추구한다. 이들은 많은 인간 본성들-서로 다른 집단을 사랑하기보단 배척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단 일반화하고 편견을 가지려는-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생긴 대로’ 살 셈인가?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는 『본성이 답이다』에서 이는 마치 “암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암을 치료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며 착각을 꼬집는다. 인간사의 평범한 본성들, 이는 사실 그 자체일 뿐 우리에게 어떤 윤리나 행동 강령도 말해주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대체 왜 우리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만은 쉽게 범하게 되는지. 인류 사회가 추구할 삶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가치들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 뿐.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지우자. 진화의 법칙 그 자체는 결코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함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큰 법칙들에 대한 깨달음은 ‘인류여, 이번엔 한 번 이쪽 길로 가보자, 힘들 수 있지, 알고 있단다’ 다독이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이지,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부정한다고 당신의 존재가 없어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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