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 부편집장

지난 여름방학, 찜통 같던 무더위를 피해 우리나라에서 8,000km가량 떨어진 북유럽에 다녀왔다. 그곳은 등 뒤로 내리쬐는 햇볕은 따듯하지만, 귓가에 스치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했다. 발밑에 떨어지는 그림자는 빙글빙글 돌지만 하루 종일 어둠이 없었다. 낮 시간이 유달리 길어서 그런지 밤이 늦어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어디를 가도 동양인은 나와 친구뿐이었지만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스톡홀름에 도착한 날 숙소가 위치한 감라스탄에 가는 길, 벽 이곳저곳엔 포스터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들의 앞머리엔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포스터의 내용을 짐작했다. 도착한 숙소의 리셉션에서는 사람들에게 ‘gay map’을 나눠줬고, 스톡홀름의 홍대 격인 쇠데르말름 중심거리의 가게들 현관에는 무지개색의 페인트를 칠했다. 하루 종일 쏘다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스톡홀름 국립미술관에는 무지개 만국기가 걸려있었고 밤새 신나는 음악과 조명이 반짝거렸다.

스웨덴의 놀이공원인 그로나룬드에서는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인 라이오넬 리치의 공연이 있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사람이 많은 만큼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귀가 터질 만큼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던 핀란드의 한 술집에는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노인도 함께였다. 아무도 그들을 흘겨보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나는 음악과 분위기를 즐겼다.

노르웨이의 옷가게에선 옷을 입어본 우리에게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한 여자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어떤 항구마을에선 여자, 남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를 맞으며 ‘stopp vold mot kvinner’(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지하라)를 크게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에는 ‘jeg tror dig’(나는 너를 믿는다)가 쓰인 종이가 들려있었다.

굉장히 새롭고 신기한 경험들이었고 한편으로는 나도 편견과 차별에 익숙해져 있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열심히 붙인 포스터나 현수막은 밤새 찢어졌을 수도 있다. 집을 나온 장애인은 무사히 공연장이나 술집에 이동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길을 걷는 외국인은 사람들의 눈빛과 수군거림을 느껴야 했을 것이고, 자신이 당하는 폭력에 저항하면 ‘여자는 집에나 붙어있으라’는 말들을 듣게 될 뿐이다.

실제로 최근 광진구의 인권조례안은 수많은 사람의 반발로 ‘성적지향’ 부분을 삭제하게 됐다. 개강 후 진행되고 있는 캠퍼스의 시설개선공사는 휠체어가 다니기 어렵게 만들어지는 중이며, 한때 여성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소라넷은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조심해야 하고,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곳의 정책이나 사상을 무조건 따르자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사회적 약자로 인식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는 강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같이 즐겁고, 안전하고, 평화롭고 또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생활규범인 ‘얀테의 법칙’을 배운다. ‘첫째,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넷째, 네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사람일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 ‘여덟째, 다른 사람들을 비웃지마라’ 등에서 자신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요시 하는 그들의 생각이 잘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열한 번째, ‘당신에 대해서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라’에서 보이듯 우리도 다른 것을 알되 서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