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글과 달콤한 공간을 요리하는 셰프
쫄깃한 글과 달콤한 공간을 요리하는 셰프
  • 최소영 기자
  • 승인 2016.09.11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푸드칼럼니스트 정동현
"일어나자 마자 무엇을 어떤 사람과 먹을지, 어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지 생각해요"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 음식이 없었던 적이 있던가. 21세기에도 예능부터 SNS까지 매체를 장악하는 음식은 여전히 맛있는 이야깃거리다. 먹방, 쿡방 열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이번엔 셰프 열풍이 불었다. 그 중 칼질해 요리하는 것을 넘어 음식을 '글로 요리'하기도 하고, 맛있는 공간도 기획하는 셰프가 있다. 셰프부터 푸드칼럼니스트, 그리고 F&B사업* 콘텐츠 기획자까지. 음식에 있어서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영역을 다져가는 정동현 씨를 따사로운 오전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요리를 해야 하는 ‘나’=한번 사는 인생 ‘맛있는’ 삶을 살고 싶었던 청년, 정동현 씨가 칼을 처음 잡은 곳은 군대였다. 연평도에서 근무한 그는 행정병이었지만 취사병으로 차출됐다. 정동현 씨는 “육지의 부대보다 규모가 작았기에 삽으로 밥을 푸는 취사병이 아닌 ‘요리’를 하는 취사병이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요리와 연을 맺게 된 정동현 씨는 연금술과 같은 요리에 매료됐다. 그는 “일정한 음식을 어떤 상태로 가열하게 되면 요리가 돼 여러 가능성을 만들어낸다”고 신비함을 설명했다. 그는 책 『셰프의 빨간노트』에서 ‘상극이던 것들이 오래 끓고 졸면서 찰떡궁합이 됐고,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제각각 자란 재료가 운명처럼 만나 멋진 하모니를 연출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도 도마 위를 울리던 경쾌한 칼질 소리를 잊지 못한 정동현 씨는 다니던 회사를 돌연 그만 두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노라며 20대 끝자락에 요리 유학을 떠났다.

좋아하는 요리를 하겠다며 떠났지만 늦깎이 요리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요리 공부를 마친 정동현 씨는 호주로 넘어갔다. 호주 멜버른의 크라운 호텔에서 시작해 레스토랑 사파와 에티하드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셰프’라는 명찰을 달고 본격적으로 팬을 잡았다.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고, 하루 12시간 넘는 중노동을 하며 수없이 손을 베이기도 했다는 정동현 씨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제때 식사하지 못했다”며 즐거움의 원천이었던 요리가 중노동이 됐던 시간들을 회고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해서 기뻤지만 동시에 괴롭기도 했다”며 “좋아하는 일이니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즐겁지만은 않았던 타지 생활을 회상했다.

‘좌충우돌과 욕설폭격 속에서 모든 게 하얗게 지워지기 일쑤였다’고 주방을 회고한 정동현 씨. 쉽지 않던 유학생활과 늦깎이 셰프로 데이고 베이며 혹독한 훈련을 거친 그는 음식에 관한 다채로운 ‘경험’이라는 맛있는 소스를 가지고 2014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글이라는 재료로 요리하다='글로 요리하는 셰프', 정동현 씨에게 붙일 수 있는 수식어다. 과거 자신의 블로그 '인생은 사막, 술은 꽃'에서부터 음식을 소재로 한 글을 써온 정동현 씨는 '글 맛' 또한 좋은 셰프로 알려져 있다. 그가 귀국하고 처음 한 일은 유학시절부터 주방에서까지 만났던 요리의 장면들을 기록해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동현 씨는 글을 쓸 기회와 공간이 많아져 '글 쓰는 셰프'가 됐다. 현재 조선일보에서 두 칼럼을 연재하는 그는 '생각하는 식탁'에서는 하나의 음식을 소재로 어떻게 먹을 것인지를 고찰하고 '허름해서 오히려' 에서는 보석 같은 작은 음식점들을 찾아내 소개하며 그 만의 '글 맛' 을 내고 있다.

정동현 씨의 글에서는 요리만큼이나 삶에 대한 그의 애정도 묻어난다. 예를 들어 한 칼럼에는 '토마토 소스엔 허례의식이 필요없으며 큰 파스타 접시와 포크, 그리고 함께할 사람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요리하는 것만큼 글을 쓰는 것 또한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정동현 씨는 "기본적으로 남이 한 것을 즐기는 것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있다"며 "요리와 글쓰기 모두 나의 생산물이기에 비교적 완전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맛을 만드는 일, 그것이 셰프의 길=음식에 관련된 이채로운 발자취를 남겨온 정동현 씨는 푸드 비지니스에도 손을 뻗었다. 그는 현재 신세계 F&B 기획팀에서 근무하며 ‘맛있는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 정동현 씨는 “각각의 음식이 가지는 속성이 인테리어, 마케팅, 공간에 알맞게 매칭돼야 음식이 더 맛있어 진다”고 설명했다. 이마트의 자체브랜드인 가정간편식 ‘피코크’(PEACOCK)를 레스토랑과 접목해 감각적으로 꾸며낸 일산 이마트타운의 ‘피코크치킨’은 그의 손 때가 탄 첫 번째 공간이다.

정동현 씨는 현재 주방이 아닌 곳에서도 ‘음식’을 만들며 요리를 하고 있다. 그는 음악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하모니카를 불게 됐다는 전제덕 씨 일화를 소개하며 “비단 직접 요리를 해야만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동현 씨는 “유통계에 취직 한 후 ‘주방이 아닌 기업에 왔으니 요리는 취미로 해야겠다’고 일기장에 썼었다”고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오히려 요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이 하는 일이 ‘맛을 만드는 일’임을 강조했다. 현재 하고 있는 맛을 기획하는 일이 좋아하는 요리와 맞닿아있어 즐겁다는 정동현 씨는 활짝 웃어 보였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지만 일하느라 잘 먹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대인들의 식문화. 한 끼를 ‘때우느니’ 차라리 먹지 않겠다는 정동현 씨는 한 끼가 갖는 고유한 문화적 가치와 소중한 체험이 있다고 말한다. ‘라면이나 먹자’가 아닌 ‘파김치와 소주를 곁들여 하루를 마무리 하는 라면’을 먹길 권하는 정동현 씨의 말대로, 오늘은 때우는 한 끼가 아닌 누리는 한 끼를 먹어보는 것이 어떨까.

*F&B사업: 음식(food)과 음료(beverage)의 합성어로 먹고 마시는 식문화산업을 일컫는다.

 

사진: 장유진 사진부장 jinyoojang03@snu.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