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스페인 유토피아 마을 ‘마리날레다’ 르포

한국 사회는 유토피아(Utopia)와 거리가 한참 멀다. 4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 국 사회는 전체 국민 소득의 44.9%를 상위 10%가 차지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소득 양극화가 심한 나라로 꼽혔다. 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성인남녀 1,655명 상대로 조사한 결과 78.6%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답했다.자본을 가진 소수는 행복하지만 국민 대다수의 자유는 억압받으며 이 때문에 너도나도 탈출을 꿈꾸는 헬조선의 풍경이다.

유토피아는 애초에 없는 것이라고 위안 삼을 수도 있다. 그리스어로 ‘없는’(ou-)과 ‘장소’(toppos)가 결합된 유토피아는 사실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의 세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정말 유토피아는 없는 것일까?

오랫동안 몇몇 학자들과 언론이 유토피아라고 불러온 한 마을이 있다. 무상주거·실업률 제로·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다고 알려진 스페인의 어느 마을. 그곳에선 진정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대학신문』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작은 마을 ‘마리날레다’(Marinaleda)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하얀 시청에서 빨간 반바지 시장을 만나다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

오랫동안 산적 소굴이었을 정도로 스페인의 깊숙한 내륙에 위치한 마리날레다는 기자들을 제외하고 이방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시골 마을이다. 대도시 세비야(Sevilla)를 오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대 다닐 뿐이다. 마을이 유명세를 탄 이후 호기심 많은 여행객들이 언저리까지 갔다가 차편이 없어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마을 에레라(Herrera)의 기차역에서 내려 서쪽으로 차를 타고 마리날레다 마을을 관통하는 간선도로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여정에선 멀리서 말이 방목된 채 풀을 뜯고 있는 시골 기차역과 넓게 펼쳐진 올리브 농장을 볼 수 있다. 마을에 도착해 자유를 뜻하는 간선도로 ‘리베르타드’(Libertad)로를 따라 걸으면 길쭉한 형태의 마리날레다 마을 전체를 둘러보게 된다. 마을은 두 지구로 나뉘는데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마타레돈다 지구와 마을이 확장돼가며 형성된 마리날레다 지구다.

마을로 가는 길에 걱정이 앞섰다. 스페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마리날레다에 대해 물으니 하나같이 ‘이상한 공산주의 마을’이라고 했다. 한 예로 2012년 8월 7일 마리날레다 마을 사람들은 시장의 지휘 아래 대형유통업체 까르푸의 한 스페인 매장을 털었고 유명세를 탔다. 이들은 생필품을 카트에 잔뜩 싣고 나온 뒤 그 길로 물품을 노숙자와 빈곤층에게 나눠줬다.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 선언으로서 범법 행위를 서슴지 않는 마을. 그것이 마리날레다가 많은 외부인들에게 주는 첫인상이다.

마타레돈다 지구의 중심에서 마을을 상징하는 강렬한 문양이 눈에 띄는 하얀색 시청 건물에 들어섰다. 작업복에 흙이 잔뜩 묻은 노동자들로 가득한 건물 안에서 무작정 기다린 끝에 마을 최초의 시장이자 35년 동안 연임한, 유일한 시장인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이하 고르디요 시장)을 만났다. 체 게바라를 존경한다는 이 혁명가는 집안에서 입을 법한 빨간 반바지 차림으로 다정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마을 담장 곳곳에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한 그래피티를 볼 수 있다. 총을 부러뜨리는 그림엔 폭력과 군국주의에 대한 해방 선언이 표현돼있다.

정부를 이긴 가난한 마을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의 마리날레다가 정부와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시작한 데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됐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마리날레다는 원래 농부들이 사는 가난하고 척박한 마을이었다. 여기에 프랑코 독재정권이 예로부터 아나키즘적인 분위기가 짙었던 안달루시아 지역민을 방치해버렸고, 프랑코가 늙어 죽기까지 36년의 긴 시간이 지나자 지역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고르디요 시장은 “실업율이 절반을 넘었고 일용직 소작농들의 빈곤도 심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리날레다의 문양. 국가 권력을 거부하는 마을 사람들은 스페인 국기를 다는 대신 각각 농촌,평화,투쟁을 상징하는 삼색의 문양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궁지에 몰린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폭발하기 직전이었고,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스페인의 돈키호테’로 불리는 고르디요다. 1979년 혁명가의 기질이 가득했던 청년 고르디요는 ‘안달루시아 사람들아, 일어나라’고 외치며 급진적인 투쟁을 주도했다. 마리날레다 주민 700여 명이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9일 동안 극한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가 속한 정당의 당원들을 중심으로 정부 관사, 농장, 기차역, 귀족 소유지를 점거하기도 했다.

이에 스페인 전역에서 투쟁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고 고르디요와 마을 사람들은 끝내 승리했다. 1991년 정부가 부유한 귀족이었던 인판타도 공작에게 보상금을 쥐어준 뒤 그의 소유지인 1200헥타르의 우모소 농장을 마리날레다 사람들에게 내어줬던 것이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이 농지는 지금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일궈오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 걸고 구속과 고문을 당한 끝에 얻어낸 ‘일할 터전’인 것이다.

투쟁은 마을 사람들의 사이에서 자긍심을 주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평생 마리날레다에서 살아온 줄리안 로메로 카르모나 씨(52)는 “굶주림 투쟁(단식 투쟁)은 시골의 잡일을 하면서 적은 급료를 받는 나 같은 사람이 정부와 싸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르지오 고메즈 레이스 씨(30)는 “가족들이 투쟁에 참여했던 것을 기억한다”며 “힘든 일이었지만 결실이 많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누구나 집을 얻는다고요?

시청에서 만난 한 젊은 부부는 시골 마리날레다에 신혼집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수를 차지하는 토박이 주민들과 달리 마을에 온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아내 엘리자베스 씨(27)는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부지가 무료고, 일하지 않는 사람도 1700유로만 내면 된다”며 마리날레다를 보금자리로 택한 이유를 말했다. 부부는 “여기서 네 번째 줄에 집을 짓고 있다”며 손으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주민들이 직접 카시타를 짓고 있다. 자신이 살 집은 스스로 짓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웃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도와주곤 한다.

이처럼 마리날레다는 무상 주거를 실현해왔다. 시청 맞은편엔 하얀 집들이 줄지어 있으며 집을 짓는 중인 공사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현재까지 350채 정도 지어졌으며 매년 늘어나는 셀프 하우스 ‘카시타’다. 집이 필요한 마을 사람들 누구나 토지를 제공받아 그 곳에 자신의 힘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 사람들은 건축 과정에서 드는 벽돌과 모르타르를 안달루시아 지방정부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으며 사는 동안 매달 15유로씩 내면 된다. 세상에 없던 매력적인 주거 정책에 이끌려 이웃 마을 주민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차츰 장기 거주자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할 정도로 카시타의 인기가 높다.

이러한 마을의 상황은 스페인 사회 전체가 부동산 문제의 늪에 빠져있는 것과 대조된다. EU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과도하게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던 스페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2008년 이후 4년 만에 주택가격이 23% 폭락했다. 현재 스페인 주택 약 70만여 채가 주인 없이 텅 비어있고 대출금을 갚지 못한 이들이 자살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마을은 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인 주택의 상품화에 반대하며 전혀 다른 구조가 가능함을 증명해내고 있다. 주민들은 승인을 받을 경우 집을 개조해 작은 가게를 낼 자유와 자식에게 집을 상속할 자유를 갖지만 집과 토지 자체의 매매는 모두 불가능하다. 고르디요는 “자본주의는 주거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임을 잊었다”고 비판했다. ‘집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다’는 원칙이 마리날레다 마을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무관심으로 인해 극심한 빈곤 상태에 빠졌던 마을은 살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때로 그들은 법을 어겼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죽음 직전으로 내몬 국가의 폭력에 맞선 항거였고 진정한 자유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제 마을은 자본 논리의 제약을 받는 삶을 거부하며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실험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마을의 반항적인 실험이 어디까지 번져나갈지 궁금해졌고, 마리날레다 지구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1930호에서 이어집니다.)

카시타의 모습. 모두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주민들은 원색으로 페인트칠을 하거나 화단을 꾸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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