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의 시선으로 건국절 논란의 속내를 파헤치다
역사학의 시선으로 건국절 논란의 속내를 파헤치다
  • 권우용 기자
  • 승인 2016.09.11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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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건국절 논란, 학계의 목소리를 듣다

지난 8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68주년’ 발언과 17일 여당의 법제화 주장으로 건국절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모든 사람에게 생일이 있듯이 우리나라의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이라며 “8·15는 광복절이자 건국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반헌법적 주장”이라고 말하며 건국절 제정에 거세게 반발했다.

건국절 논란은 2006년 8월 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뉴라이트계 이영훈 교수(경제학부)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기고문으로 역사학계에서 처음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단’을 설립하자 역사학계를 넘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건국절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졌다. 그러나 그간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역사학계의 해석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여전히 진영 논리 싸움만 거듭 반복해온 실정이다.

과연 건국절을 지정하는 것은 역사학적으로 타당한 일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 시점은 정확히 언제인가. 또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가능한가. 건국절 논란 이면에 가려진 여러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된 역사학계의 여러 쟁점을 살펴봤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1919년?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건국절 논란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장은 1948년 건국설과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1919년 건국설이다. 각 입장은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달렸다.

1948년설은 대한민국 건국 기점을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로 본다. 한국은 1945년 해방됐지만 사실상 미 군정이 남한을 통치하고 있었고, 194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부를 세워 유엔의 승인과 함께 통치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완범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는 “임시정부는 국민과 주권과 영토를 밝힌 헌법을 제정하긴 했지만 사실상 영토를 갖지 못했고 한 번도 나라를 제대로 통치해보지 못했다”며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같은 근거에 따르면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는 이름 그대로 임시일 뿐이고, 정식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된다.

하지만 1919년설은 이런 논리가 임시정부와 1948년 정부의 연속성을 무시한다고 본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했고, 이미 정부 조직형태와 헌법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이유로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은 대한국민이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명시했으며, 현행 헌법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948년 9월 1일 대한민국 정부 공보부에서 발행한 관보 제1호의 발간연도도 대한민국 30년으로 표기됐고, 이승만 전 대통령 역시 1949년 개천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31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1919년설은 1948년 수립된 정부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를 직접 계승하므로 1919년이 대한민국 건국 기점이라고 본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한제국을 건국의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학설도 제기된다. 1897년 고종이 국호를 고쳐 만든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유래했으므로 대한민국 건립 시점은 대한제국이라는 주장이다. 대한제국설은 대한제국 건설 주체가 이미 ‘민’과 ‘국’이 하나 된 나라를 뜻하는 ‘민국’을 지향하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이 ‘대한’을 그대로 두고 정치 체제를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꾼 대한제국의 후신이라고 본다.

이처럼 역사학계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이 언제인지 일치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또 학계는 굳이 일치된 의견을 내놓아야 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이완범 교수는 “역사에서 유일한 의견이 있다는 것에 반대한다”며 다양한 의견이 병존하는 것이 오히려 학문적으로 풍부한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건국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1948년설과 1919년설 모두 어느 특정한 날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와 달리 한 국가의 건국 시점을 아예 정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이 관점은 국가는 정부와 같은 기구의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 역사, 문화, 영토, 민족 등 종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즉 국가라는 개념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므로 그중 일부의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해서 국가가 건국됐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따르면 건국이라는 단어는 몇몇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붙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가 끊임없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정부 수립이나 헌법 제정이 건국 과정의 일부가 될 수는 있지만, 어느 하나만을 국한해 건국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박명림 교수(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는 미국의 예를 들며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건국이라는 큰 개념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나 ‘건국 헌법’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건국일’은 지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건국을 단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독립기념일도, 독립 전쟁도, 헌법 제정도, 연방 결성도 모두 건국이라는 거대한 과정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따로 하루를 건국 시점으로 지정하지 않고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축하할 뿐이다. 프랑스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치체제를 바꾼 날을 건국일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일로 지정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 교수는 “프랑스의 건국일이 언제냐, 영국의 건국일이 언제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며 “나라의 생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국을 일련의 과정으로 보는 관점에 따르면, 하나의 사건만을 건국 시점으로 지정하는 행위는 나머지 사건을 건국 과정에서 배제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가가 나서서 임시정부 수립일과 정부 수립일 중 하나를 선택해 대한민국 건국절로 고정해버리면 선택된 특정한 사건을 제외한 수많은 건국 과정들은 아예 건국 역사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하면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부분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3·1절, 광복절, 제헌절 모두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라며 “1948년만 건국절, 1919년만 건국절이고 다른 것은 배타적으로 건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배제하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3·1운동이나 임시정부 수립, 건국 강령, 정부 수립 모두 건국을 구성하는 것이므로 이 중 하나만을 건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건국절이라는 용어 자체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건국절 논란, 역사 아닌 정치 문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학계에서 건국 시점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고, 건국절이라는 용어 자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신주백 HK연구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는 논문 「정부수립과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광복·건국의 연속과 단절」에서 “건국절을 제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공식 기억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고 역사해석을 완전히 달리해야 하는 문제”라며 국경일을 제정할 때는 “충분하고 명백한 역사적 근거 내지는 역사적 이유가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국경일을 제정하면 역사 해석에 선택을 강요하게 되고 학술 담론은 소모적인 정치 논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최창렬 교수(용인대 교양학부)는 “국가가 나서서 임시정부는 건국이 아니라고 말하면 결국에는 이념 논리에 빠지게 된다”며 건국절 지정은 “학계 토론에 맡길 일을 진영 논리화해 사회를 분열, 갈등으로 몰아가는 기폭제”라고 우려했다.

학계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해 정치 진영 논리에 빠지는 대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는 역사적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시준 교수(단국대 사학과)는 “정치인들이 권력으로 역사 지식을 누르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논란이 생긴다”며 “(학술적) 논의가 있으려면 진지하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보 교수(연세대 사학과)는 “다양한 계열의 민족해방운동과 통일운동,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미래의 한반도 통일정부 수립을 모두 중시하고, 그 모두를 건국의 과정으로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며 폭넓은 학술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작년 국정 교과서 논란에서부터 올해 건국절 논란까지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김성보 교수는 “역사를 미래를 위한 거울로 삼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발상” 때문에 역사 해석이 정치 논리에 휩싸인다고 꼬집었다. 건국절 논란이 무엇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 해외문화홍보원 코리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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