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 뮤지컬을 돌아본다

한국 뮤지컬 산업은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한 해 200편 이상의 공연이 올라가고, 3천억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뮤지컬은 소수의 ‘덕후’들만이 즐기는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뮤지컬은 어렵거나 비싸다는, 혹은 과장된 연기와 소재가 한정돼 있다는 높은 진입장벽 안에 둘러싸여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한국 뮤지컬 산업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그 매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뮤알못'을 위한 한국 뮤지컬 족집게 과외

한국형 뮤지컬의 탄생, 「살짜기 옵서예」

한국 뮤지컬사에 가장 처음 찍힌 발자국을 떠올려 보자면 예그린 악단이 1966년 올린 공연 「살짜기 옵서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전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한 이 최초의 창작 뮤지컬에 원종원 평론가는 “뮤지컬 시장이 형성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공연될 때마다 객석이 꽉 찰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나흘간의 공연으로 1만 6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막을 올린 「살짜기 옵서예」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패티 김과 곽규석이 주인공을 맡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각각 6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됐다.

「살짜기 옵서예」의 흥행은 당시 침체돼 있던 공연계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일부 연극인들은 1950~60년대 실험극, 부조리극의 유행으로 대중과의 괴리가 생긴 연극계를 대중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원종원 평론가는 “그러나 「살짜기 옵서예」 이전의 뮤지컬들은 엄밀히 말해 뮤지컬이 아니라 오히려 연극에 음악이 가미된 것”이라고 평했다. 「더 뮤지컬」 박병성 편집장 또한 “이전의 음악극들은 노래, 춤, 음악이 혼합된 종합예술극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그린 악단은 미국적인 장르인 뮤지컬에 국악과 전통 창법을 접목시키는 독자적 시도로 한국형 뮤지컬을 탄생시켰다.

공연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살짜기 옵서예」는 여전히 한국 뮤지컬계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원종원 평론가는 “우리가 저작권을 갖는 최초의 작품으로 여타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창작 뮤지컬이 빠르게 성장한 계기가 됐다”고 이 작품의 의의를 밝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뮤지컬협회에서 주최하는 ‘서울뮤지컬페스티벌’에서는 예그린 악단의 이름을 딴 ‘예그린 어워드’가 열려 그 해 최고의 창작뮤지컬을 가린다. 2013년에는 보다 세련되게 각색된 살짜기 옵서예가 47년 만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사진제공: 『뮤지컬감상법』(2003), 박용재, 대원사 출판사

 

한국 뮤지컬 산업의 도약,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주인공 크리스틴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The Phantom of the Opera’와 ‘Think of me’는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4대 뮤지컬,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로 불리며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음악과 거대한 샹들리에를 이용한 파격적인 무대연출은 전 세계의 관객을 매료시켰고 우리나라 관객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1년 12월 한국에서 초연의 막을 올린「오페라의 유령」은 35여 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한국 뮤지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살짜기 옵서예」 이후 극단들은 해외 뮤지컬을 번안해 무대에 올렸다. 그러나 원종원 평론가는 “이는 정식으로 수입된 것이 아니라 무단으로 번안한 이른바 ‘해적판’ 뮤지컬”이라며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선스를 통해 수입된「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계의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성황리에 공연됐다. 박병성 편집장은 “당시 한 해 뮤지컬 규모가 140억 원 정도였는데「오페라의 유령」이 연 매출 190억 원을 달성했다”며 "한 작품의 매출액이 한 해 시장 전체의 규모보다 커진 것"이라고 이 작품이 얼마나 시장에 큰 충격을 던져줬는지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오페라의 유령」은 6개월 동안 공연돼 유래 없는 장기공연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유리 평론가는 “당시는 장기공연을 할 수 없는 여건이었는데 제작사의 노력 끝에 6개월 동안 LG아트센터를 대관할 수 있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유래 없는 매출을 기록한 덕분에 한국 뮤지컬 산업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박병성 편집장은 “대중문화 붐이 일어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으로 ‘뮤지컬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그러다보니 투자가 몰리고 시장이 팽창돼 지금의 뮤지컬 산업이 형성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시카고」 「맘마미아」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등장하며 한국 뮤지컬 시장은 매해 약 17%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규모가 껑충 뛰어 올라 성장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론 장기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라이선스 중심으로만 산업이 팽창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뮤지컬 전용 극장의 등장

 

2006년 개관한 샤롯데씨어터는 뮤지컬 전용 극장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전용 극장의 중요성은 장기공연이 가능하고 뮤지컬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시설과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복합 공연장에서 한두 달 정도 짧게 공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뮤지컬은 막대한 제작비 대비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다. 또한 공연 산업의 최대 호황기인 연말에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벌리는 뮤지컬이 극장을 차지하는 바람에 순수 공연 예술 작품이 무대에 올라갈 기회를 뺏기기도 한다. 원종원 평론가는 “복합 공연장에 뮤지컬이 올라가는 것은 발레, 오페라 등의 순수 공연 예술과 뮤지컬 모두에 피해가 간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용 극장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리 평론가는 “2000년대 들어 활발하게 조성된 뮤지컬 인프라가 한국 뮤지컬 산업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전용 극장은 샤롯데씨어터, 충무아트센터,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디큐브 아트센터, 광림아트센터 BBHC홀 등이 있다. 실제로 이들 공연장에서는 한 공연이 길게는 6개월 동안 올라가며 오랫동안 쉴 틈 없이 공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용 극장이 뮤지컬을 즐기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엔 의문이 남아있다. 원종원 평론가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전용 극장은 1,000석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관객과 무대의 근접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크기”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뮤지컬 전용 극장은 대부분 1,200석 이상이며 1,400석이 넘는 경우도 있다. 원종원 평론가는 “무대 좌우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백스테이지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공연장,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 바로 아래 있지 않아 객석과 무대 사이에서 관람에 방해를 주는 공연장들이 많다”며 “시설적인 배려가 있어야 진정한 뮤지컬 전용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케스트라 피트: 반주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숨어 있는 공간

 

「프랑켄슈타인」, 창작 뮤지컬도 돈이 될 수 있다

 

2014년 가장 화제가 된 뮤지컬을 꼽아보자면 단연 「프랑켄슈타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충무아트홀이 제작한 대형 창작 뮤지컬인「프랑켄슈타인」은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에 유준상-이건명-류정한, 괴물에 박은태-한지상을 캐스팅해 개막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불러 모았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뮤지컬은 기대에 부응해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1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고, 그 해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뮤지컬 상’을 수상했다.

「프랑켄슈타인」이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창작 뮤지컬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라이선스 시장과 대조적으로 창작 뮤지컬 시장엔 「명성황후」(1995) 이후 이렇다 할 대형 창작 뮤지컬이 나오지 않았다. 원종원 평론가는 “돈벌이가 되는 대형 극장에선 대부분 라이선스 뮤지컬이 공연되고 창작 뮤지컬은 100석 규모의 소극장에만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이유리 평론가는 “전체 시장 매출 중 라이선스가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완성도 있는 대형 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제작진이 육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이 보장된 라이선스 뮤지컬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수출까지 성공시킨「프랑켄슈타인」은 창작 뮤지컬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후 주로 라이선스 작품들을 들여오던 메이저 제작사들이 창작 뮤지컬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시컴퍼니는 지난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리랑」을, EMK는 올해 초 사상 최대 제작비 250억원을 들인 「마타하리」를 선보였다. 박병성 편집장은 “창작 뮤지컬은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든다”며 “따라서 티켓 가격을 낮춰 대중화시킬 여지도 있다”는 긍정적인 조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유리 평론가는 “아직 한국 시장에 창작 뮤지컬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없다”며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더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2. 뮤지컬 산업과 팬들

◇20~30대 덕후들, 이들이 형성한 문화=뮤지컬이 산업화된 지 불과 15년 만에 3000억 규모로 성장한 것은 충성도 높은 팬들 덕분이다. 박병성 편집장은 “관광객이나 노인들이 주 소비자층인 미국, 영국과는 달리 한국 시장의 주 소비자층은 20~30대 관객”이라며 젊은 관객들이 지탱하는 한국 뮤지컬 산업에 대해 설명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4년 발표한 ‘뮤지컬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보다 여성의 관람횟수가 높았고, 연령별 관람 비율에서 20~30대가 기타 연령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뮤지컬 관람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한 극을 여러 번 보는 ‘회전문 관객’이 많다는 점이다. 「마마 돈 크라이」의 지난해 관객 중 79%가 재관람자, 즉 회전문 관객이기도 했다. 트위터 닉네임 ‘굴러가는 곰’ 씨는 한 뮤지컬을 여러 번 보는 이유로 “원 캐스트-언더스터디* 체제로 가는 대신 멀티 캐스팅을 선택한 한국 뮤지컬계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배우들의 조합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배우의 연기 스타일과 페어별 호흡을 보기 위해 회전문을 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마마 돈 크라이」의 회전문 관객이었던 윤예지 씨는 “극에 상상의 여지를 남겨둬 여러 번 보면서 그 틈을 채워 나가는 것이 매력”이라며 “배우에 따라 해석도 다르기 때문에 그 다른 점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덕질’을 하는 젊은 관객들이 많은 산업 구조는 ‘시체관극’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시체관극이란 공연을 볼 때 시체처럼 꼼짝 않고 조용히 관람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정현수 씨는 “런던에서는 극을 보는 도중에 뭘 먹거나 맥주를 마신 채 공연을 보러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는 관광객 위주로 발달한 미국이나 영국의 뮤지컬 산업과는 달리 고정된 팬층이 주 관람객이 되다보니 생겨난 문화다. 윤예지 씨는 “덕후일수록 관극 경험도 많고 그 시간에 집중하고 싶어해 ‘관크’*에 더 예민한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공연이 끝난 후 커뮤니티나 SNS에 그날의 관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기도 한다.

◇회전문 관객, 양날의 검=고정된 관객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편으론 더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유리 평론가는 “인구수도 적고 일부 20~30대 관객 말고는 공연을 잘 보지 않아 내수 시장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제한된 소비자층에 비해 제작되는 작품 수는 과도하게 많다. 예컨대 브로드웨이에서 한 해에 올라가는 공연이 30편정도인 반면 한국은 서울에서만 200편 정도가 올라간다. 이른바 과잉공급 상태인 것이다. 박병성 편집장은 “한정된 관객층에 과잉공급을 하다 보니 스타를 내세워 팬들을 모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제작사들은 스타들의 몸값을 감당하느라 티켓 가격을 높이거나 VIP 좌석을 늘리게 되고, 자연스레 관객층은 이를 기꺼이 감당할 소수의 팬덤으로 한정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티켓이 비싸져 일반인 관람객들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진데 반해, 스타 마케팅에 제작비를 치중하느라 작품의 질을 높이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관객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윤예지 씨는 “제작자들이 홍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봐주는 고정 관객층을 믿고 안전한 길로만 간다”며 “사람들이 뮤지컬에 갖는 선입견을 넘어서는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올리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더욱 넓고 깊은 뮤지컬계를 위해=넓은 관객층을 확보해 한국 뮤지컬계가 발전하려면 우선 스타 캐스팅에만 의존하는 제작자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최연수 씨는 “캐스팅에 제작비를 쏟는 대신 완성도를 보완하고 새로운 소재를 발굴한다면 공연의 질도 높이고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종원 평론가는 “프리뷰(pre-view) 공연 기간을 대폭 늘려 관객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후 한층 완성도 있는 공연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창작 뮤지컬을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박병성 편집장은 “한국에서 관객층을 확대하는 것이 어렵다면 해외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작 뮤지컬의 저작권은 국내 창작자들에게 있기 때문에 해외로의 수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현수 씨는 “음악도 좋고 참신한 스토리를 가진 창작 뮤지컬이 계속 생겨난다면 해외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창작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유리 평론가는 “실력 있는 전문 작곡가와 연출가를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언더스터디: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타로 투입되는 배우

*관크: ‘관객 크리티컬(critical)’의 준말로 공연 중 다른 관객에 의한 관람 방해

 

3.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HJ컬쳐’ 한승원 대표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힘을 믿다”

2014년 초연을 올린 「빈센트 반 고흐」 이후 뚝심 있게 창작 뮤지컬만을 올리는 HJ컬쳐 한승원 대표. 메이저 기획사가 해외 유수의 작품을 바탕으로 화려한 스타 캐스팅을 통해 작품을 홍보하는 상황에서 그는 “작품이 스타가 되는 제작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고 HJ컬쳐의 출발점을 회상했다. 그래서 HJ컬쳐는 창작 뮤지컬을 하되, 모두가 다 아는 소재를 선택해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이런 전략을 잘 보여주듯 고흐를 시작으로 살리에르, 라흐마니노프 등 유명한 예술가를 내세운 창작 뮤지컬들이 만들어졌다. 이 ‘예술가 시리즈’는 실제로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빈센트 반 고흐」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HJ컬쳐에서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소재를 찾고 대본 개발에 착수한 후 작곡가를 섭외해 음악을 붙인다. 이후 스태프를 모집하고 배우를 선발하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공연이 올라가기 전 밑그림을 그리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다. 한 대표는 “실제로 공연이 실행되는 프로덕션 단계 이후에도 공연을 평가받고 손익을 정산하는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가 남아 있다”며 “이 단계를 통해서 공연이 다음에도 또 올라와도 될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 지가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HJ컬쳐가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소재, 대본, 음악이다. 소재, 대본, 음악이 이야기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작품이 스타가 되는 제작사가 되기로 한 만큼 한 대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지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관객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스튜디오 뮤지컬’ 고은령 대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위해”

공연이 좋아서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뮤지컬계에 뛰어든 고은령 대표는 화려한 뮤지컬 이면에 있는 소외계층에게 주목했다. 팟캐스트가 뜨기 시작한 2012년, 그는 공연계 청년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대표는 “자리가 없는 그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우리 방송의 제목 ‘자리주삼’이 탄생했다”고 회상했다.

라디오 방송인 자리주삼의 메인 코너는 귀로 듣는 뮤지컬인 ‘오디오 뮤지컬’이다. 이밖에 오디오 뮤지컬 출연 배우들과의 토크쇼 ‘잡수다’, 예술계 취업 지망생들을 위한 미니 강연 ‘조한성의 무엇이든 물어주삼’, 신인들의 노래를 모아 담아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스신소’(스튜디오 뮤지컬이 신인을 소개합니다) 등이 자리주삼의 주요 코너들이다. 고 대표는 “방송을 듣고 신인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우리 쪽으로 연락처를 묻는 경우도 있었다”고 뿌듯하게 설명했다.

자리 없는 신인 배우, 티켓값이 비싸 좋은 공연을 보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시작한 스튜디오 뮤지컬은 시각장애인에게까지 손길을 넓혔다. 이들을 위해 스튜디오 뮤지컬은 화려한 볼거리 없이 귀로 듣기만 해도 무대가 생생히 떠오르도록 극을 각색한다. 고 대표는 “장면 해설이 너무 길어서 지루하진 않은지, 어떤 음향이 들어가야 장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등을 고민한다”고 설명하며 “현장성이 없는 대신 다양한 효과음을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장애물 없이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를 지향하는 스튜디오 뮤지컬은 또 다시 경계를 넓혀가려고 한다. 고 대표는 “지금은 시각장애인에 집중하고 있지만 좀 더 관심을 확장해서 소외계층 누구나, 마음의 장벽을 가진 사람마저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서경대 뮤지컬학과 “목표는 한국 뮤지컬의 주역”

사진제공: 서경대 뮤지컬학과

서경대 뮤지컬학과 학생들의 공연은 아마추어 공연이지만 공연을 올릴 때마다 뮤지컬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특히 지난 학기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500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공연됐다. 기획팀 오혜리 씨(서경대 뮤지컬학과·14)는 “공연이 점점 인기가 많아지면서 뮤지컬을 즐기는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보시는 편”이라며 뿌듯해했다.

올해로 개설된 지 5년째인 서경대 뮤지컬학과는 탄탄한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매 학기 정기공연을 올리고 있다. 뮤지컬학과의 학생들은 6개의 공연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배우와 스태프가 분리된 전문 프로덕션과 달리, 이곳엔 ‘올배우 올스탭’ 제도가 있다. 연출부 원미래 씨(13)는 “연출, 무대감독, 무대디자인 등 총 10개의 파트로 나뉘고, 각자 원하는 파트에 지원하게 된다”며 “다른 파트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공연마다 파트 변동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공연제작에 관여된 모든 과정을 경험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음향팀 김연준 씨(14)는 “스태프 일을 배우면서 그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고 기술도 익힐 수 있는 기회”라고 의의를 밝혔다.

프리 프로덕션은 평균 14주 정도의 연습 기간을 가진다. 이 기간 동안은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꽉 채워진 일정표에 따라 진행된다. 연출부 김병훈 씨(11)는 “공연을 통해 뮤지컬 배우가 갖춰야 할 노래, 연기, 춤 각 영역 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며 “교수님들과 함께 새벽 3~4시까지 땀 흘리며 연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은 함께 뮤지컬계를 누빌 미래의 동료를 만나고 인연을 두텁게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사진제공: 서경대 뮤지컬학과

 

 

사진: 조수지 문화부장 s4kribb@snu.kr,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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