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옵스: 더 라인(2012)은 충격적인 반전으로 이용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 게임이다. 갑자기 강력한 모래 태풍이 발생한 두바이. 그 곳에는 시민들과 미국 육군이 남아있었고, 통신마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파견한다. 그러나 이 특수부대는 두바이에 진입한 이후부터 오랫동안 갇혀있던 충격으로 미쳐버린 두바이 주둔 미 육군과 일부 주민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고, 결국 긴급한 상황에서 국제 협약으로 금지된 백린탄까지 사용해가며 두바이 주둔 부대장을 만나기 위해 전진했다. 그러나 온갖 희생을 겪으며 두바이 주둔 부대장을 만나기 전, 게임은 이용자에게 서서히 진실을 공개한다. 특수부대의 지휘관인 주인공은 이미 착란 상태에 빠져 있으며, 두바이에 진입한 이후 발생한 다양한 기묘한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사소한 오해와 주인공의 착란 때문이었다고. 특수부대가 ‘적’으로 규정하고 사살해왔던 미 육군과 주민들 역시 대부분 무고한 희생자였다고. 엔딩에 거의 도달하기 전 게임은 로딩 메시지를 통해, 흔히 게임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이 정의를 위해 ‘적’을 사살하며 진군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용자를 조롱한다.                       ‘This is all your fault. Do you feel like a hero yet?’

주인공이 정의의 대변자이며 악을 파괴하는 영웅으로 묘사되던 과거와 달리 최근 문화 콘텐츠는 절대적인 정의와 스스로의 정당성을 향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배트맨, 슈퍼맨과 같이 강철의 의지로 악을 분쇄하는 영웅이었던 캐릭터들이 최근 스스로의 내적 고민과 달성해야 하는 정의의 비절대성,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고뇌하고 상처받는 모습으로 주로 그려진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을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냉전이 끝나며 절대적인 정의, 절대 선,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혼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명확한 적이 있었기에 쉽게 나와 우리를 정당화하고 남과 저들을 악으로 치부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적과 아군이 뒤섞이고 심지어 적이 아군으로 돌변하는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자연스러워서 할 필요가 없었던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를 이해하고 나의 행동을 정당화 하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는 현실이 어쩌면 문화 콘텐츠들을 통해 반영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에서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보다는, 타인의 정당성까지 공격하여 무너뜨리려는 모습이 더 흔히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리즘이나 인터넷을 통한 혐오와 같이 집단적 현상만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용기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비웃고, 타인의 주장을 대안 없이 논박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정의와 정당성의 혼란은 나와 다른 존재를 공격함으로써 스스로를 찾으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과 행동이 옳은지 끊임없이 자성하는 태도로 겸손하게 타인과 주변을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하나 없건만, 실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정반대인 것 같다.

냉전 이후 절대적 정의가 존재할 것이라는 인식의 타파는 어쩌면 우리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겸손하게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그런 사회로의 시작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우리는 또 다시 나의 인식만을 기준으로 타인을 공격하고 비난한다. 그렇게 찾은, 타인에 대한 혐오와 비난을 통해 획득한 나의 정의와 정당성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 그것 역시 다른 이들에게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인데.

이상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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