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은 노동자인가? 작곡가는 노동자인가? 대학원생은 노동자인가? 언젠가부터 ‘○○은 과연 노동자인가?’라는 의문을 종종 던진다. 최근 학내에서 불거진 이른바 ‘비학생조교’ 계약 해지 논란을 지켜보면서도 그랬다. 이들은 서울대학교에 소속된 노동자인가?

지난 겨울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문화예술계와 그 언저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기사 주제는 예술에 대한 국가 지원이었는데, 그들과 얘기하며 이러한 지원이 예술인들이 작업을 해나가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예술인은 대개 아주 적은 소득을 올리고 여러 직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연금, 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다.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생활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 때문에 국가의 재정지원은 예술인들이 몇 달간이나마 온전히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공공지원 정책의 변화가 언제나 예술계의 뜨거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예술가라는 특수한 직업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예술가들은 원래 가난하지 않느냐고, 가난을 감수하고 자기 작품에 매달리는 별종들 아니냐고.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왜 정부가 유독 그들을 지원해야 할까? 충분히 가능하고 정당한 질문이다. 국가는 문화 정책의 주체로서 문화예술을 보호하고 진흥할 의무가 있지만, 그것이 곧 예술인들을 부조해야 할 책임은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어느 직업군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데 쓰인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임금 노동’의 영역 바깥에 있게 됨으로써 떠안게 되는 삶의 위험과 불안정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규칙하게 일거리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사용자나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가 아니므로 실업급여를 받기도 힘들다. 일을 할 때 계약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문화예술계에 일반화된 구두계약 관행은 종종 예술가들을 ‘불공정 계약’이나 ‘열정페이’의 피해자로 만든다. 산재보험 가입률도 26%에 불과해 예술 활동을 하다 크게 다치는 일이 생겨도 뒷감당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은 과연 노동자인가’라고 자꾸만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통상적인 노동 바깥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취약하고, 안과 밖의 처우에 절벽처럼 아득한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엄연히 문화산업의 한 부분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예술인들의 처지는 학습지 교사, AS기사, 골프장 캐디 등 이른바 50~230만명에 이르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그것과 닮았다. 비록 완전히 포개지진 않지만, 임금 노동의 바깥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3권 등의 권리와 사회안전망의 보호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점에서는 한가지다. 특수고용직은 사용자나 조직에 대한 종속성이 훨씬 더 강해 무늬만 자영업자지 사실상 노동자로 인정될 여지가 많다. 그러나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근로기준법)라는 정의와 사법부의 엄격한 해석에 따라 이들은 여전히 노동과 비(非)노동의 경계에서 유령처럼 맴돈다.

250여 명의 비학생조교 또한 법의 경계 또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비학생조교는 학위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서 임금을 목적으로 교육과 학사업무를 보조한다. 고등교육법상 조교는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는 자라는 것이 노동부의 유권해석이므로 비학생조교는 조교가 아닌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본부는 그럼에도 이들이 일반 직원과 업무가 확연히 구분되기에 학생이든 아니든 조교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비학생조교의 법적 지위를 두고 양측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사업무든 행정업무든 비학생조교가 대학 사회의 일정한 노동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의 노동을 노동으로, 자신을 대학의 노동자로 봐달라고 요구하나 본부는 완강히 거부한다. 다시 묻는다. 그들은 노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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