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팥쥐 엄마의 속사정

 

콩쥐에게

콩쥐야,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펜을 들었어. 내일이 우리 딸 결혼식이구나. 딸을 시집보내는 ‘어미 맘’이란 것이 다 같겠지만, 왜 이리 마음이 아리고, 지나 온 세월들이 아쉽고, 쓰린지…. 내일은 활짝 웃었으면 좋겠구나.

 

그 때 기억나? 엄마가 팥쥐를 데리고 너희 집 대문을 들어서던 그 겨울날. 너의 큰 눈망울 속에 숨어 있던 두려움과 외로움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엄마는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싶었어. 너의 여린 모습에서 그토록 잊고 싶었던 오래 전 내 모습을 보아 버렸거든. 내가 그리 붙잡고 싶었던 내 엄마의 뒷모습이 아련한 영상이 되어 머리 속에 떠오르더라. 어린 아이의 외로움이란 것… 세상에 아무 보호막 없이 홀로 있는 속수무책의 무기력함이란 것을 엄마는 잘 알고 있었거든. 달려가서 아무 말 없이 너를 꼭 안아 주고 싶었어. 근데 그러지 못 했어. 엄마가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그 때, 내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있는 팥쥐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져 왔거든.

 

그 느낌이란… 그랬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하지만,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두려워졌어. 여린 너의 눈망울과 나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있는 팥쥐의 떨리는 그 손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그 순간 얼마나 세상 밖으로 도망가고 싶었던지. 그 때였나 봐. 이 엄마가 모질고 표독스러운 아줌마가 되어버린 것이. 절대 너를 나처럼 여리게 키우지 않겠다는 것과 팥쥐에게 엄마란 존재의 반을 잃어버린 느낌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내 남은 삶을 살아갈 방법으로 보였거든. 내가 힘들어하던 시기에, 나의 고통의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며 세상에 대한 ‘악’을 배워갔던 팥쥐에게 다시 따뜻함을 주고 싶었어. 팥쥐때문에 차마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없었지만, 어린 너에게 혼자라는 무기력한 외로움을 이겨낼 힘을 주고 싶었어. 그것들이 엄마에게 전부였어.

 

콩쥐야. 이런 엄마에게도 한때는 ‘커리어우먼’이란 당찬 꿈이 있었어. 겉만 그럴 듯한 꿈이라고 웃겠지만, 사회에 맞서서 자기 꿈을 이루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 그런데 엄마는 그러지 못 했어. 그때 나는 너무 여렸거든. 팥쥐 아빠란 사람을 만나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어두운 상처를 가진 팥쥐 아빠란 사람을 엄마는 감당할 수 없었어. 결국 뒤돌아서지도 못하고, 그냥 비껴서 떠나왔어. 하지만 맞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세상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더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면서 꿈조차 잊고 살게 되었거든.

▲ © 강정호 기자
 

콩쥐야, 어린 날에 대한 아쉬움과 잊혀진 꿈들에 대한 미련, 모진 계모라고 욕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가슴 한 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어. 하지만 집 밖으로만 나돌던 팥쥐와 눈물방울이 끊이지 않던 네가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라 줘서 이젠 웃을 수 있어. 엄마의 작은 바람은 너와 팥쥐가 엄마와 같이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았으면 하는 거야. 그리고 인생에서 따뜻한 가정과 꿈꾸는 삶의 소중함을 아는 거지. 그 두 가지는 서로 양보하면서 조화되는 거야. 그리고 그 속에 항상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콩쥐야. 내일 너의 결혼식장에서 엄마는 너를 꼭 안아 주고 싶다. 세상에 멍들어 표독해진 나에게 여린 미소를 잃지 않았던 너에게 항상 감사한다. 오늘까지 숨쉴 원동력이 되어준 너와 팥쥐를 위해 이제 웃으려고 해. 콩쥐야, 오늘밤 좋은 꿈꾸고. 내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되길 바랄게. 우리 딸!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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