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옥열 석사과정 정치학과

인터넷에 ‘How grad school is just like kindergarten’으로 돌아다니는 그림이 한 장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대학원생과 유치원생의 공통점: 하루 종일 자도 괜찮다, 성적표가 없다. 점심으로 (학회에서) 쿠키가 나온다. 울고 싶어 한다, 주로 하는 일: 잘라내기와 붙여넣기’ 등이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는 그저 웃어넘겼지만 대학원에서 1년을 보내고 나니, 마음 편히 웃을 수만은 없는 그림이 됐다. 그 중 가위로 종이를 오려 붙이고 있는 유치원생 옆에서 ctrl+ c, v를 누른 듯 복사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대학원생의 얼굴에 자꾸만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내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필요하며, 단어와 조사 하나하나에 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했다. 그러자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얼핏 들은’ 말들은 더 이상 내뱉을 수 없게 됐고 내 말에 확신이 사라지며 첫 학기를 침묵으로 보내고 말았다. 이 침묵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참조하기’였다. 내 생각 대신에 권위 있는 학자들의 의견을 빌리고, 이를 다시 구성했다. 그러나 가득 찬 각주와 긴 참고문헌 목록으로 완성된 페이퍼도 결국은 그저 잘 정리된 참고서를 만드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나만의 글을 만들기 위해 기존 학자들과 다른 ‘새로움’을 찾아내야 하는 일은 고됐고, 앞으로도 매번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 아마 이는 학업을 이어나가는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의 고민이라 생각된다.

결국 내가 느낀 이 무게는 ‘책임’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은 말이 됐고 그 말은 곧 문장이 돼 나를 나타내는 한 장의 기록이 됐다. 말 한 마디, 글 한 자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말이 가지는 무게이자 곧 책임감이었다. 이는 스무 살 성인이 돼 느꼈던 책임감과는 분명히 달랐으며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연구자의 덕목이리라. 무게에 짓눌려 침묵하거나 확신을 만들어가는 것, 이 둘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 배워가고 내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 어떠한 말일지라도 나만의 언어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고 내 말에 귀기울여주는 사람들은 그 무엇에 대한 믿음도 아닌 내가 만들어갈 그 길을 믿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침묵 대신 나만의 언어로 길을 만들어가기로 선택한 이상, 이는 결국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지켜나가야 될 소신일 것이다.

만약 내가 앞에서 말한 ‘대학원생과 유치원생의 공통점’이라는 그림을 수정할 수 있다면, ‘대학원생과 유치원생의 차이점: 참조와 창조’를 추가하고 싶다. 유치원생처럼 대상을 똑같이 오려붙이는 일이 아닌 새롭게 내 주장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대학원생이 유치원생과 다를 수 있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가 한 주장에 책임을 지고 철저한 문헌연구로 주장의 뿌리를 다지는 것은 책임 없는 주장들만 퍼져나가는 우리 사회에서 책임 있는 하나의 인격이 되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내 이름이 적힌 논문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리며, 멀게만 느껴지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연구실에서 넘어가지 않는 논문들을 붙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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