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제8회 외국어 연극제 「육감만족」 ’­「희한한 한쌍」, 「미스 사라 샘슨」

▲ © 김동인 기자
 

올해로 8회를 맞이한 외국어 연극제가 지난 달 24일 막을 내렸다. 관악 내의 여러 동아리들이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는 요즘, 공연 한 편 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속사정까지 상세히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국어 연극제’는 학내의 연례 행사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6편의 연극이 한꺼번에 준비된다는 점에서도 주위의 이목을 끌 만하다. 또 이번 ‘제8회 외국어 연극제 「육감만족」’은 유난히도 공연장 사정이 좋지 않았던 올 가을, ‘한 달간 공연장 마련’이라는 매우 난감한 산을 넘어 올려진 공연이다. 1990년대 이후 학내 주요 화두였던 ‘대학 문화의 실종’ 혹은 ‘부재’라는 매우 역설적인 주제가 이 ‘척박한’ 관악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 한번 생각해 볼만한 시점이다. 더불어 그 해결의 실마리와 ‘연극’의 접점 또한 고민해 본다.

 

외국어 연극제는 접하기 어려웠던

외국작품을 학내에서 마주하는 기획

 

여섯 편의 참가작 중 영어영문학과의 「희한한 한쌍」(The odd couple, 닐 사이먼 작)과 독어독문학과의 「미스 사라 샘슨」(Miss sara sampson, 레싱 작) 두 편에 한정된 감상을 쓰기에 앞서, 우선 방학 내내 힘들게 준비했을 ‘제8회 외국어 연극제 「육감만족」’의 공연 참가자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어 연극제와의 첫 번째 조우였고, 필자가 접해 왔던 관악 내 극회와는 연극에 대한 관점이나 상황, 여건 등 여러 부분에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것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닐 사이먼의 극들은 다양한 군상들의 우스꽝스러운 단면을 풍자하고,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희한한 한쌍」 또한 마찬가지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모여 각자의 결혼 생활이 가진 문제를 거침없이 털어놓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때로는 바보스럽고 때로는 쿨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 내는 모습을 그린 극이다. 연극은 매우 가볍고 유쾌하다. 팜플렛의 한 글귀가 지적하듯이 미국 문화 특유의 유머가 줄 수도 있는 어색함을, 연극은 배우들의 순발력과 강한 장면 연출력으로 소화해 낸다.

 

대학이 당면한 여러 문제를 다루고

대학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아야

 

그러나 연극이 주는 가장 큰 아쉬움은 남성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것으로 바꾸어 그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계다. 극 중 35세 가량의 기혼 여성들이 그녀들의 아지트에 매주 모여 담배를 피우고 게임을 하며 내내 뱉어내는 이야기들이란, 주로 스포츠나 성적인 욕구, 그 해소, 성적 잣대를 통한 이성에 대한 평가, 배우자의 바가지에 대한 불평 등이다. 단지 남성과 여성을 ‘트랜스’ 했을 뿐,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여성적 경험’은 연극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30대의 자유분방함을 외치는 그녀들은 어딘가 억지스러웠고, 더불어 자신이 ‘20대 초반의 한국 대학생’임을 극복해내지 못한 몇몇 배우들의 모습은 “왜 하필 이 극이 ‘대학’ 공연장에서 공연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한편, 18세기 독일의 첫 시민비극이라는 「미스 사라 샘슨」은 특유의 상투적인 내러티브, 지나치게 교훈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연극 곳곳의 장치를 통해 고전의 향기를 살릴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자막 제공과 함께 제공되는 원어 연극의 특성 역시 시선의 분산이라는 단점과 동시에, 원작 고유의 표현과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그러나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연극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으며,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극에 집중하기에는 초보 연기자들의 기술적인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극 중 모든 불행의 원인인 멜레폰트의 자결 장면을 없애고, 사라를 죽음으로 이끈 악녀 마우드가 사라의 아버지 손에 죽는 것으로 수정된 결말은, 사라가 가져야 할 강인함에 대비되어 ‘비극성’을 낳아야 할 등장인물들의 나약함을 감소시킨다. 이는 결과적으로 캐릭터 간의 차별성을 떨어뜨려, 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고전을 재현하기에 앞서 ‘현대적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다른 예술과 달리 연극이 가지는 ‘해석의 힘’ 때문일 것이다. 「미스 사라 샘슨」이 ‘외국어 연극제’에 ‘선택’된 이유를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었더라면, 공연을 본 관객들은 ‘신기함’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번역 등의 문제를 이유로 학내ㆍ외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외국 희곡 작품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은 외국어 연극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하나의 선물이다. 그러나 준비팀 내부에서도 고민하고 있듯이 공연의 질을 높이는 것은 ‘외국어 연극제’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외국어 연극제 측이 기획의도로 내걸었던 모집단위 광역화로 인한 학내 공동체의 와해와 진지한 대학문화의 실종, 기초학문의 위기라는 주된 문제의식 또한 아직까지는 각 공연에서 느끼기 힘들다. 커튼콜에서 벌어진 한 공연의 해프닝처럼 공연무대를 사적인 용도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는 연극을 보러 온 관객에 대한 에티켓이 아니며,  외국어 연극제가 ‘학과 내부나 공연팀의 축제’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관악에서 연극공연 한편을 올린다는 것. 그것은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공연준비에 쏟아 붓는 땀과 눈물, 노력이야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그 한번을 위하여 지출되는 예산도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연극이 대학생들의 ‘그저 조금 비싼 취미’로 사라져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와 절실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대학로의 많은 소극장들도 줄지어 문을 닫는 요즘, 상업적 목적이 배제된 대학극이 공연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가슴 뿌듯한 일인가. ‘외국어 연극제’는 이미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장점과 가능성이 많다. 그 독특함을 살려 여러 과제들을 해결하고 하나의 대학문화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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