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석, 우리 집안은 큰댁, 작은댁 그리고 우리 집 순서로 차례를 지내왔다. 어머니는 차례상 준비로 바쁜시기에 다른 친척집엔 가시기 힘든 경우가 많아 나 혼자 친척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주로 다른 친척의 차를 얻어 타곤 했다. 이번 추석도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나는 추석 당일 집 앞에 온 사촌형의 차 트렁크에 준비한 선물들을 실은 후 차에 탔다.

친척집을 찾아가 인사드리고 선물을 건넨 후 차례를 지낸 뒤 다음 장소로 가서 그것을 반복하는 그런 매년 추석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던 올 추석의 한 장면. 그러나 그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틀린 그림찾기의 정답처럼 작년 추석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숨어있었다. 바로 가는 곳 마다 내 손에 들려있던 선물세트였다. 작년만 해도 내 손에 들려있던 것은 구천 원짜리 양말 세트였지만 올해 내 손에 들려있던 것은 삼만 원짜리 참치 햄 세트였다. 지갑 사정이 작년에 비해 나아져 올 추석엔 조금 더 비싼 선물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친척집을 돌면서 예전에 비해 조금은 더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작은댁에서 차례를 지낸 후 마지막 순서인 우리 집으로 가기 전, 나는 사촌형 차를 함께 타고 오신 작은아버지께 차 트렁크에 선물이 있으니 저희 집에서 차례를 다 지내고 난 뒤 사촌형이 댁으로 모셔 드릴 때 꼭 챙겨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작은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며 “너 나 갈 때 배웅 안 나올 거냐?”라고 대답하셨다. 가벼운 어조였지만 난 순간 당황하면서 “아니 트렁크에 있는 거 또 꺼내기 번거롭지 않습니까?”라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이내 그 대화는 같이 있던 다른 친척들의 세상살이 이야기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 순간에는 그렇게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당황했던 것은 친척들에게 줬던 그 선물에 담긴 진짜 의도를 들켜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 나는 다른 때와는 달리 가는 곳마다 선물을 빨리 주려는 마음에 다급해져 있었다. 그 다급함 탓에 차례를 다 끝내고 나서 천천히 선물을 드려도 될 것을 앞의 경우처럼 괜히 서두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다급함은 친척들에게 우리 가족에게 도움을 줬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다는 그런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친척들에게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내가 선물에 담아 전했던 것은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선물을 사러 마트에 갔던 추석 전날, 입구부터 줄지어있던 다양한 선물세트의 모습들 속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내용물이 아니라 상자 구석에 붙어있는 가격표였다. 나는 선물을 고른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저울 한 쪽에 자존심을 얹어놓고 다른 한 쪽엔 가격이란 이름의 추를 올리고 내리며 그 무게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가격의 선물을 사야 우리 가족이 친척들에게 얕보이지 않을까. 그런 마음만 있었을 뿐 선물을 통해 감사를 전한다는 마음 따윈 없었다.

다가올 내년 설에 나는 어김없이 선물을 고를 것이다. 그때까진 선물 상자에 알량한 내 자존심이 아니라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을 선물뿐 아니라 직접 말에 담아 전하고 싶다. 친척들과 선물만 주고받고 그냥 서둘러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실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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