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 교수(인류학과)

추석이 얼마 전에 지나갔다. 인류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추석은 명절이 가졌던 본연의 축제 기능을 상실한 채 유지만 되고 있어서 안쓰럽게 보이기도 한다. 추석을 비롯한 세시 명절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엄숙함과 축제적 난장성을 제공해 준다. 끝없이 흘러가는 듯이 보이는 시간을 잘라서 놀이와 엄숙함을 제공하고 리듬을 부여하여 시간과 사람들 사이에 유의미한 가교를 연결한다. 세시 명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과 쉼, 놀이, 노동과 축제라는 두 대립하는 행위가 리듬을 타고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

추석의 기원을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기록상으로만 보더라도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신라인들이 요즈음 한국인들처럼 추석에 유교식 제사를 지냈을 리가 없지만, 당시에도 추석은 의례와 축제를 제공해 생활에 리듬을 부여하는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여름을 보내고 막 가을 문턱에 들어서는 시기에 맞게 되는 추석은 수확 의례의 의미와 노동을 놀이로 보상받는 축제로서 의미가 있었다.

현대 한국인들이 과거로부터 넘겨받아 유지하고 있는 설과 추석이라는 명절은 현재 이상하게도 공동체적 축제성은 상실하고 엄숙한 종교적 기능만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제사가 중심이 되면서 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놀이를 하고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공동체를 향유하던 축제적 기능이 소멸된 것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세속화의 길을 걸어가는데 명절은 종교적인 의미만을 가지게 되는 의문시되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일 년에서 설에서 대보름으로 이어진 15일은 지역적 차이는 있지만 대표적인 휴식과 여가, 유흥과 놀이의 축제 시간이었다. 설이나 대보름이 봄을 맞이하는 봄 축제적 성격이 강했다면 단오는 여름을 맞이하는 여름 축제였다. 파종을 끝낸 뒤에 맞이하는 단오는 특히나 서울이나 평양을 비롯한 도시에서 여성들까지 즐길 수 있는 축제 공간을 제공했다. 가을의 수확 의례인 추석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씨름이나 활쏘기를 비롯한 다양한 놀이를 통해 노동의 피곤을 씻어냈다. 한국의 명절 중에서 축제성을 가장 강하게 가진 명절은 단오였다. 특히 서울에서 단오는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온 시민이 즐겨 참여한 축제였다. 설이나 추석에 비해서 단오는 종교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축제다웠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전쟁과 급격한 인구 이동은 전통의 단절을 가져왔고, 단오라는 축제도 함께 소실됐다.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현대화 속에서도 전통 명절과 축제는 확고하게 결합돼 있다. 종교적 엄숙함과 축제적 난장성이 명절을 통해 구현되다가 세속화 과정을 통해 축제성이 더욱 부각이 된 것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축제적 성격이 탈락됐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종교적 성격마저 명절에서 소멸돼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개인화, 개별화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역 공동체가 약한 한국 사회가 여러 혼란 속에서 친족과 가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발달시켰는데, 가족·친족 이데올로기와 현대화가 결합되면서 설과 추석이 가족과 친족을 강화하는 제사 중심의 명절로 변화된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족과 친족도 개별화시켰고, 그 결과로 설과 추석에서 종교성마저 상실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명절에 기반을 둔 축제를 지금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을까? 민속인류학자로서 내가 수업 시간마다 듣는 학생들의 대표적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한국 현대화는 민속 전통에 대한 계몽적 비판 위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민속 문화의 가치는 매우 낮게 평가돼 있다. 학자들의 구제적 학술 행위를 통해 사회의 기억에서나 겨우 살아 있는 명절 축제가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진행되는 민속 전통에 대한 관심 증가와 어떤 방식으로 결부될지가 전통 명절의 축제성 부활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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