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권 석사과정(기계항공공학부)

‘불금’을 매주 강남역에서 지새운 것도 벌써 1년이 돼간다. 이곳은 강남역 8번 출구, 서초 삼성타운 앞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농성장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2인 1조로 함께 일했던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가 모두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이 계기가 돼 2007년 시민사회와 피해자 가족 등으로 결성된 단체다. 오랜 싸움 끝에 2014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유감을 표하며, 제3의 중재기구의 제안이 있으면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전 대법관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출범했고, 지난해 7월 조정위원회는 △삼성전자의 기부로 설립될 공익법인을 통한 보상 △옴부즈맨 위원회 설립을 통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 등의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삼성은 이를 무시한 채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발족했고, 반올림은 이에 항의해 지난해 10월부터 서초 삼성타운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나는 학부시절 반올림과 인연으로 매주 금요일 농성장 ‘밤 지킴이’로서 연대하고 있다.

농성이라는 것을 처음 해본 내게 천막 안에서 본 바깥세상은 생경한 듯 익숙했다. 천막 위로 ‘불금’을 게우는 취객들, 담배를 달라거나 홍보물을 발로 차는 사람도 있었다.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가와 사정을 묻거나, 간식을 주고 가기도 하고, 후원하기도 했다. 그사이 언론은 반올림을 ‘모든 걸 다’ 내놓은 삼성에게 ‘생떼’나 쓰는 단체로 내몰았다. 이들은 반올림에 사실 확인을 위한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했다. 조정위원회의 권고로 설립될 공익 법인에 반올림이 개입하려는 게 목적이라거나, 반올림이 300억을 탐내고 있다는 ‘소설’들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쉽사리 받아들여지고, 반올림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도했다. 모든 게 내게는 처음 겪은 일들이었지만 약자들의 싸움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비난, 또 지지까지 모든 게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얼마 전 고 황유미, 이숙영 씨와 함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3명이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경제지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 판결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법적으로도 종지부를 찍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이미 한 번 종지부를 찍었던 그 언론들이 다시 마침표를 찍던 날, 폐암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노동자 2인은 마침표가 무색하게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았다. 판결 자체도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에게 질병의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우는 현행법과 영업 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회사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를 되짚었을 뿐이다. 반올림 농성장에는 사망한 노동자 76명을 기리기 위한 화분과 솟대가 놓여있으며,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을 얻었다는 제보만 200명이 넘는다. 여전히 산재 신청과 불인정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합의를 깨고 나간 삼성의 좁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보상이 이뤄지고 있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올림이 300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이유다.

나는 ‘삼성을 싫어하는 전문시위꾼’도 아니고 ‘300억’ 콩고물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금’을 강남역에서 보내는 이유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반올림’을 바라기 때문이다. 함께 ‘반올림’하고 싶다면 언제든 강남역 8번 출구로 오시라.

최영권 석사과정 기계항공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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