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호 강사(경제학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매년 찾아오던 태풍이 모조리 이웃 일본으로 가버렸다. 예년에 무더위를 간간히 식혀주던 비마저 올해에는 내리지 않아 찜통 같았다. 1994년 이래 가장 더웠다던 여름, 밤낮으로 에어콘을 틀며 우리는 엄청날 것으로 우려되는 전기요금에 공포를 느꼈고, 심각히 생각해본 적이 없던 요금체계의 합리성을 새삼 따져보게 됐다. 상품 가격 결정의 공정성을 사유하며 우리 모두는 경제철학자가 됐다. 경제학은 가치의 과학이고, 항상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재화 가격의 공정성만큼 중요한 이슈가 상품 생산에 필요한 각각의 생산요소 가격 결정의 공정성이다. 그 가격은 각 생산요소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소득이니, 곧 소득 분배의 형평성이다.

지난 8월 초순, 존 베이츠 클라아크가 정식화하고 현대경제학의 표준이 된 소득분배의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미국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아버지인 클라아크에 대한 독해를 작년 말에 시작해, 봄학기, 여름계절학기 빽빽한 일정으로 수업하면서 논문 쓰고 발표하려니 시간이 부족했다. 좋은 저널에 게재되기 위해서는 향후 보정이 많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그래도 무리해서 논문 초고라도 발표하고 나니, 작년말 한국경제학회의 「경제학연구」에 게재한 ‘파레토효율과 평등’과 함께 에머리 케이 헌트가 규정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세 가지 핵심 테제 중 두 가지를 직접 다룬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바둑으로 말하면 일단 중요한 포석이 이루어진 셈이다.

지난 5월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책을 구입해 6월 초순에 읽었었다. 장편을 구성하는 3편의 중편 중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느낌은 “이게 뭐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어 「몽고반점」을 읽으니 전율이 느껴졌다. 전자는 무채색, 후자는 강렬한 유채색으로 “아!”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의 「나무불꽃」을 읽으면서 “철학적 작품이구나, 어떤 큰 상이라도 받을만 하다!”고 경탄했다. 6월 하순에는 함께 주문했던 『소년이 온다』를 읽었는데, 두 소설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보완됨을 봤다. 한강이 소설에 대한 파편적 독해에서 감지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글들의 연쇄를 통해 보여주듯 나도 한 편 한 편의 논문과 책을 통해 경제학을 조금씩 새롭게 써나갈 수 있기를!

그렇다면 내가 경제학자로서의 소명으로 글을 통해 세상에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학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영국 유학시절 지도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된 존 러스킨은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에서 인간을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기계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기반 위에 인간적인 참된 경제학을 세우고자 했다. 클라아크도 『부의 철학』에서 러스킨을 따라 경제학의 주요 원리들을 새로 쓰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국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마샬도 『경제학원리』에서 러스킨을 눈부시게 빛나고, 고상한 시적 비전을 가진 천재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근대 경제학의 초석을 다진 사상가들은 자기 자신이 부유하게 됨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수 대중에 부가 널리 퍼져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가 말하듯 경제학자의 사유는 모든 인간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소산이다. 그러니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경제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슬로건은 당연히 “경제학은 사람중심”이어야 하는데, 현대 경제학이 그러하지 못 해 나온 것일 뿐이다. 경제학은 구체적으로 실재하고 현존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지식이다. 러스킨이 강조하듯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 시작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경제학의 이상이 실현된다. 그 사랑은 본질적으로 선톡이다.

김석호 강사 경제학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