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일상의 개혁을 꿈꾸다
페미니즘, 일상의 개혁을 꿈꾸다
  • 이경인 기자
  • 승인 2016.09.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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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 페미니즘의 현재와 제3물결페미니즘

 


최근 온라인상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 한다면, 여성혐오 논쟁을 빼놓을 수 없다.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남성혐오라는 조어까지 생겨나며 연일 혐오를 주요한 논점으로 하는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여성혐오 문제는 얼핏 혐오라는 감정에 관한 것으로만 읽힐 수 있지만, 사실은 불공정한 젠더 권력에 대한 구조적 비판을 제기하는 사상이자 운동인 페미니즘의 핵심과도 직결되는 이슈다. 이 여성혐오 논란을 규명하는 데서 한국의 특수한 젠더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학신문』 에서는 여성혐오 논란을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 페미니즘이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국면에 주목한다. 더불어 제3물결페미니즘의 담론을 검토하며 페미니즘 전반이 맞이하고 있는 변화를 짚는다.

 

여성혐오, 감정 너머 구조의 문제

최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대결로 요약된다. 이 둘의 층위가 같은 것인지를 비교함으로써 여성혐오의 사회적, 구조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손희정 연구위원(연세대 젠더연구소)은 “남성에 대한 혐오 역시 당연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남충, 김치남과 같은 신조어, 메갈리아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남성에 대한 공격적 게시물에는 정서적 의미로서의 혐오가 수반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남성이 행하는 여성혐오는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여성들의 남성혐오는 사실상 공포와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라며 여성혐오가 남성혐오와 같은 층위에서 비교될 수 없는 구조적인 개념임을 확실히 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2010)로 유명한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타자화의 과정이라고 여성혐오를 규정했다. 김수아 강의부교수(기초교육원) 역시 “여성혐오의 본 용어인 미소지니(misogyny)는 정서적인 반응으로서의 혐오는 물론이고 권력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라 설명한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남성과 여성 간의 지배 관계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인식과 행위를 포괄하는 것으로, 단순한 혐오 발언(hate speech) 이상의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특정한 방향으로 여성성을 규정하며, 이에 의해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멸시, 비하, 신격화의 대상이 된다. 규정된 여성성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는 사회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된다.

이 구조적 문제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는 불공정한 젠더 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주요한 의제다. 정유성 교수(서강대 교육학과)는 “페미니즘이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남성 중심 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이자 당연시되는 이 체제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라며 이를 쟁점화하는 여성혐오 이슈는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한국 여성혐오 논쟁의 특수한 배경에 군대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1999년에 헌법재판소에서 군가산점제 위헌 판정을 내리면서 여성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이 쏟아졌다”며 “대한민국에서는 남자만 군대를 가야 한다는 차이에서부터 양성 간의 이분법적 대립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남녀의 적대적 관계가 만들어진다”면서 “군대 문제와 여성주의가 상황과 구조 모두 매우 닮아 있음을 인지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여성혐오라는 말의 등장 뒤에 정치적, 경제적 맥락이 있음에 주목한다. 그는 “IMF 이후로 노동시장이 다시 남성 위주로 개편됐고 이는 여성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면서 “공무원 선발 과정에 군가산점이 있었고 그래서 여성들이 군가산점 폐지 헌법 소원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혐오 논란의 불을 지핀 군가산점 폐지의 이면에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경제구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유성 교수는 “2015년부터 여성혐오 문제가 대두하는 배경으로 헬조선론으로 대표되는 청년층의 박탈감을 들 수 있다”며 자신을 지탱하는 사회적 기반이 무너진다는 두려움이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점은 이 새롭지 않은 문제가 왜 갑작스레 논의의 중심에 섰는지다. 홍찬숙 책임연구위원(여성연구소)은 온라인 공간의 고유한 특성을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한다. 그는 “온라인은 완전히 익명이기 때문에 표현의 한계가 없다”며 “온라인에서는 혐오 발언에 대한 검열이 없고 그렇기에 터부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일베’로 이어지는 여성혐오 담론의 생산은 온라인을 무대로 하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늘 존재해왔던 여성혐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데는 여성들의 노력도 컸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혐오란 말의 유행은 피해자로서의 여성뿐만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고 있는 스스로의 현실과 맞서 싸우려는 주체화된 여성들의 움직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연하다고만 여겨졌던 것을 문제시하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한국에 다시 한 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었음을 시사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끊이지 않는 역사

페미니즘이 여성혐오 이슈와 함께 비로소 대중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맞지만, 사실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개화기 신여성의 모습에서도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고,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도 여성 단체의 역할은 지대했다. 조선정 교수(영어영문학과)는 “페미니즘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연속성”이라며 페미니즘을 둘러싼 최근의 사태가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급성장한 시기를 되짚자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여성의 인권 신장을 목표로 하는 여러 법과 제도가 갖춰졌다. 1995년의 여성발전 기본법과 2005년의 호주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김수아 교수는 “제도권 진입에만 노력하는 것을 비판하는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난 것도 90년대”라며 “영페미니스트들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차별이 확실한데 제도나 법과 같이 너무 큰 것만 이야기되는 상황에 불만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투표권 투쟁에서 급진페미니즘의 등장까지 서구의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물론 서구의 페미니즘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구의 페미니즘이 백인 부르주아 여성을 기반으로 시작했다는 데서 이를 한국에 그대로 대입할 때 발생하는 이질성이 존재하고, 서구와 한국을 단순히 비교하기에는 시기적 차이나 역사적 배경의 차이 역시 대단히 크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 역시 “서구의 제1물결페미니즘은 보통 투표권 투쟁을 가리키는데 우리나라는 제1물결로서의 투표권 운동이 없었다”며 서구의 페미니즘과 한국의 페미니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페미니즘 담론이 다시 폭발한 것도 한국만의 특수한 젠더 구조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이해될 수 있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여성혐오라는 말이 서구의 미소지니 개념을 포함하면서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같이 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많은 대중이 한국에도 여성과 남성의 젠더 관계에서 명백한 차별이 있음을 깨달은 결과로 여성혐오가 대중적 용어로 채택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주의 사이트를 표방한 메갈리아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자칭하는 여러 대중들이 있었다.

메갈리아는 남성 중심의 인터넷 사이트가 사용하는 여성혐오의 문법을 그대로 모방하는 미러링이라는 방식을 채택해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메갈리아는 서구권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활용했던 언어를 활용하고 있다”며 “메갈리아의 주장이 정치적 레즈비어니즘과 연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란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만의 사회를 꾸려야 한다는 사상으로, 젠더 구조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닌 새로운 차별 구조를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꾸준한 논란을 일으켰다. 메갈리아가 그 정당성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을 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레즈비어니즘의 문법은 젠더 구조에 무감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홍찬숙 연구위원은 “메갈리아가 이전까지는 이슈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구조적인 부분을 정면돌파했다고 생각한다”며 메갈리아를 통해서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젠더 구조에 대한 터부를 깼다는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라 평가했다.

다수의 대중이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 역시 최근의 새로운 현상이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이를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의 연결 관계를 밝히는 파퓰러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는 “이전까지는 페미니즘이 대중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만이 있었지만 요즘엔 대중문화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는 역전이 일어난다”며 “대중이 자신의 불안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온라인 매체와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이 자신이 겪는 차별을 언어화할 수 있는 체계를 스스로 형성해내고 그 결과로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일련의 흐름이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일종의 낙인이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흥미로운 현상”이라며 “자기 정체화를 통해 대중들 스스로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했다.

 

여성의 해체, 경계를 허문 새로운 페미니즘

근래에 페미니즘은 비단 한국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담론의 성격과 방향, 논의 범위가 다양하고 새롭게 바뀌는 변화를 겪어왔다. 개인성, 다양성, 상호교차성 등의 다양한 성격으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페미니즘은 대략 삼십여 년 전부터 포스트페미니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페미니즘과 같이 온라인과 대중문화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조선정 교수는 “온라인페미니즘과 파퓰러페미니즘이 지금의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주요한 두 축”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그리고 대중과 대중문화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페미니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포스트페미니즘의 주요한 논의는 페미니즘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섹스의 구분마저도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며 섹슈얼리티로서의 성 역시 해체해야 함을 주장한 미국의 여성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대표적인 학자다. 조선정 교수는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로든 젠더로든 하나의 여성이란 집단을 상정하는 순간 페미니즘은 인식론적인 허구에 매몰되기 쉽다고 주장했다”며 “여성이라는 범주를 전제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역사적으로 진행된 여성의 재현을 올바르게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버틀러 이론의 주요한 논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디스 버틀러 이후에 지속된 포스트페미니즘 논의는 이전의 페미니즘 담론을 무화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조선정 교수는 “포스트페미니즘은 그 이름에서부터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이 끝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포스트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특성인 연속성과 복수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 이전의 페미니즘이 여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힘을 잃은 것이다. 조 교수는 “이 포스트페미니즘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서 제3물결페미니즘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제3물결페미니즘은 포스트페미니즘 논의와는 다르게 페미니즘이 연속성과 다양성을 가지며 발전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다만 이전까지는 정치적, 구조적 틀에 매몰돼 있던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개인적인 고민으로까지 확장시켰다는 데서 제3물결이라는 구분이 지어지는 것이다. 홍찬숙 연구위원은 “제2물결페미니즘에서도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이 있었지만 이는 개인의 문제가 사실은 정치적인 구조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는 말”이라며 “제3물결페미니즘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정말 개인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성의 강조가 정치성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라는 축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틀을 논하자는 것, 단순한 남성 대 여성의 젠더 구조를 넘어선 논의를 진행하자는 것이 제3물결페미니즘의 핵심이다. 조선정 교수는 “주디스 버틀러가 여성을 해체함으로써 동성애를 비롯한 퀴어의 계보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며 여성과 남성이라는 축만 존재했던 페미니즘이 다른 성소수자를 포함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을 새로운 페미니즘 논의의 진보된 부분이라 평했다.

제3물결페미니즘은 이외에도 여러 틀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홍찬숙 연구위원은 “범주나 경계란 것이 정말 명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제3물결페미니즘의 굉장히 중요한 모멘트”라며 제3물결페미니즘의 주요한 특성으로 상호교차성을 들었다.

케이트 본스타인은 트렌스젠더의 성적 권리를 주장하며 성소수자로서의 트랜스젠더가 젠더 구조에 편입될 것을 주장하는 트랜스페미니즘을 주창했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는 자신의 저서 『경계없는 페미니즘』(2003)을 통해서 인종, 계급, 국가와 같은 경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성을 양분하는 단일한 구분선은 없음을 강조하며 백인부르주아여성이라는 개념을 해체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차이 위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는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경우도 기존의 페미니즘에 내재돼 있던 인종적 구분을 탈피하는 주장을 펼쳐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도 젠더 구조를 구성하는 기존의 틀이 해체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과 대중문화에 힘입어 집단으로서의 여성을 넘어선 개인적인 수준의 담론이 많아지고 있다. 퀴어 논의가 활발해진 것에서는 젠더 구조를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성대결로 보는 것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꼬리표가 붙는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자기변명으로 시작하는 숱한 주장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자기규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보여준다. 지금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각자 다른 위치에서 자기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 사람을 만났다.

 

연세대 젠더연구소 손희정 연구위원

Q. 언제부터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게 됐나?

A. 20대 초중반쯤으로 기억한다. 석사 때부터 영화학을 전공하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됐다. 이전부터 여자로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성차별이나 성희롱과 같은 여러 경험들이 있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겪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씨네 21」에서 페미니즘 영화비평을 여럿 읽게 됐고, 페미니스트 선배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지금껏 겪어왔던 여러 답답한 경험들을 언어화할 수 있게 됐다.

Q.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그것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페미니즘은 정의와 관련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 사회에 대의제 민주주의가 등장했을 때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전제가 있었는데, 여기서의 ‘모든’이 백인 비장애인 부르주아 남성만을 가리켰다. 이 ‘모든’ 인간이라는 보편 인간의 범위를 확장시키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넓히는 게 페미니즘이라 생각한다.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기본 가치인 셈이다. 페미니즘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운동만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이걸 넘어서서 페미니즘 운동은 여러 소수자들을 위한 운동의 기본 모델을 만들어왔다. 페미니즘은 보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 권순민 편집장(고려대 사회학과·13)

Q. 남성으로서 언제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

A. 사실 예전에는 안티 페미니스트에 가까웠다. 학내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실린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잘못됐다 생각했고, 글을 비판하는 내용을 SNS에 올린 이후 많은 사람들과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했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총학생회 활동이 끝나고 ‘석순’에 지원한 것도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었다.

Q.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A. 인식론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태생적인 한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지정성별이 남성인 사람은 딛고 서 있는 판 자체가 다르다. 여성들은 하루하루 겪는 삶의 문제와 페미니즘이 직결돼 있는 셈이니 여성과 남성의 경험적 차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말부터가 젠더의 구분, 섹슈얼리티의 구분을 강화하는 말이다. 이 구분을 벗어나는 게 페미니즘의 테제 중 하나니까 궁극적으로는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화용 씨(디자인학부·11)

Q. 지금까지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해 왔나?

A. 지금까지 꾸준히 여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는데, 기존에 나와 있는 그 어떤 정당도 여성을 대변해준다거나 관련한 정책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로 사람을 모집한 정도지만 페미당당이란 정당을 만들었다. 좀 더 가시적인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강남역 사건 이후인데, 이때 근조 리본을 두른 거울을 들고 행진하는 ‘거울 행동’이라는 추모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연락이 닿아 공동으로 진행을 했는데, 이후에도 같이 넥슨 김자연 성우 사태와 관련한 시위를 진행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A. 하나 꼽으라면 페미니스트 파티를 들고 싶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클럽이나 파티를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클럽에서는 추행이 너무 당연하게 일어난다. 이걸 불편해하면 왜 옷을 그렇게 입었느냐, 왜 여길 왔느냐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래서 여자가 엄청 많아서 감히 남자가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파티를 만들고 싶었다. 여자가 디제잉을 하고, 여자가 기획하고, 여자들끼리 재밌게 놀 수 있는 파티를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어떤 분은 이렇게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고까지 말씀하셨다. 사생활에서도 추행의 걱정을 느껴야 했던 여성분들이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게, 뭔가 가시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페미니즘은 단순한 ‘여성’주의를 넘어서는 소수자에 대한 담론이자 기성의 비대칭적인 젠더 구조에 도전하는 혁명적인 담론이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는 지금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관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 페미니즘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임을 의미한다. 더불어 손희정 연구위원은 “페미니즘은 과정체”라고 말했다. 지금의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의 완성형이 아니며, 페미니즘은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젠더 구조의 혁명이라는 목표를 향해 페미니즘은 꾸준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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