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풀뿌리 시민단체 관악사회복지

지난달 3일 마을버스 관악02가 지나가는 길목인 낙성대공원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관악구의 민간복지단체인 ‘관악사회복지’가 운영 기금을 마련하고 단체를 홍보하는 행사였다. 올해 설립 21주년을 맞은 관악사회복지는 관악구 13개 동에서 한창 재개발이 추진되던 1995년 출범했다. 70년대부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난곡동에 모여 야학, 탁아방 등을 통해 빈민 운동에 힘쓴 대학생과 종교 활동가들은 90년대 대규모 재개발의 외풍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독재 정권에 의해 중단됐던 지방자치제 재시행을 맞아 ‘복지는 시혜가 아닌 권리’라는 생각으로 지역사회 현장에 직접 개입해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관악사회복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관악사회복지는 주민 공동체 조직, 청소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숨가쁘게 활동하며 상임활동가 6명, 주민 활동가 100명, 후원회원 500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햇살’같은 복지 활동가로 성장하길 ‘꿈꾼’다=성격을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관악사회복지의 가장 큰 목표는 ‘주민들을 복지활동가로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사회복지가 ‘시혜’라는 개념이 강하다. 반면 관악사회복지는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활동가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현재 운영되는 청년 모임, 노인 모임 등의 주민 모임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봉사 프로젝트를 직접 제안한다.

예컨대 1998년 만들어진 청소년 모임 ‘햇살’의 한 회원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보고 임종이 가까운 노인들의 삶을 책으로 쓰자는 제의를 했다. 이에 동네 노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자서전을 대신 쓰는 작업을 1년 간 진행한 끝에 2013년 『할머니, 인생이 뭐예요?』라는 책을출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햇살 강석 대표는 “어르신에게 네일아트를 해주거나 아이들에게 교육 봉사를 하는 팀들도 있다”며 “이웃들에게 소소한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2년 결성된 대학생·직장인 모임 ‘꿈꾼이’는 매주 토요일 동네 경로당에서 체조, 명상을 같이 하며 그들의 건강과 여가를 돌본다. 꿈꾼이의 회원들은 노인들이 상시적으로 모일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해 2012년엔 노인들의 휴식공간인 ‘은빛사랑방’이 개소되기도 했다.

◇이웃사랑방, 관악사회복지의 분신=관악구 곳곳에 존재하며 주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이웃사랑방’은 관악사회복지의 자랑거리다. 관악사회복지 조성호 상임활동가는 “단체 사무실은 한 곳이지만 각 사랑방은 마을의 또 다른 ‘관악사회복지’가 돼 개인과 마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사랑방은 2002년 삼성동에 1호점이 만들어진 이후 신원동, 미성동에 잇따라 개점했다. 삼성동 이웃사랑방은 매주 화요일, 토요일에 음식물의 생산·유통·판매·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남는 음식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푸드뱅크 역할을 한다. 또한 옷, 책, 가방 등을 기증받아 10명의 주민활동가가 이를 판매하는데, 매달 이용객이 5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관악사회복지와의 인연을 8년째 이어오고 있는 삼성동 이웃사랑방 전성현 대표는 “단순히 되파는 것뿐만 아니라 기증받은 물품을 리폼해서 팔기 때문에 재활용품이어도 인기가 많다”며 “이러한 ‘되살림 활동’을 통해 습득한 기술로 ‘헌옷으로 동전 지갑 만들기’ 등의 강좌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최소한의 사랑방 운영비를 제외한 수익은 조손 가정 후원 등으로 전액 기부된다. 전성현 대표는 “여태껏 아내, 엄마로서 살았지만 관악사회복지를 접한 지금은 주민 활동가, 선생님 등 여러 타이틀이 생겼다”며 “무보수로 일하지만 출근길에 10명 넘는 주민들과 인사할 만큼 많은 사람을 알게 됐고 이들과 함께 일하며 협동과 나눔의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악사회복지에서 운영하는 삼성동 이웃사랑방에선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물품을 리폼해 판매한다.

◇관악의 푸르고 울창한 숲이 되길=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악사회복지는 지역복지운동의 모범사례로 사회복지 교과서에 소개될 만큼 관악에 굳건히 뿌리내렸다. 설립 초기엔 한 명도 없던 노인 회원이 지금은 약 200명으로 늘었다. 전 대표는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노인들은 관악사회복지에서 친환경 먹거리 판매나 바자회 등을 통한 수입으로 더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쑥고개 꼭대기에 자리잡은 관악사회복지 사무실은 항상 분주하다. 기자가 지난 목요일에 만난 6명의 상임활동가들은 점심시간도 아껴가며 회의를 거듭했다. 조성호 상임활동가는 “관악구 주민이 약 53만명인데 관악사회복지의 후원 인원은 그 중 0.1% 정도 되는 500명”이라며 “더 많은 주민들이 동참하고 지지해주면 큰 변화를 일굴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낮은 곳에서 일구는 숲’이라는 슬로건처럼 복지의 가지를 울창하게 뻗어 관악 주민들이 언제나 쉬고 기댈 수 있는 숲이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 관악사회복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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