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프랑스 오통마을 체험기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개발의 불균형에 따라 이촌향도가 심화돼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겪어왔다. 도시는 인구 집중, 교통난, 환경문제 등의 문제로,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했다. 이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통해 문제를 보완하고자 농촌에 생태마을을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운영상의 미숙함 때문에, 혹은 운영 철학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지속가능한 도농상생의 열쇠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유럽도 2차 세계대전 후 극심한 이농으로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겪었다. 이때 프랑스 정부는 ‘농촌에서 휴가를, 농촌에서 민박을’을 외치며 주민 스스로 농촌 관광을 주도하도록 함으로써 농촌 공동체를 유지하고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 역사의 노하우를 보여주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이 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쉬며 교우(交友)하는 생태 체험으로 알려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오통마을’(Le Tilleul Othon)을 찾아갔다.

 

도시 아이들이 숨을 돌리는 곳, 아퀘이으 페이장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두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달리면 말의 고장 노르망디에 자리 잡은 오통마을이 있다. 이곳은 내륙 안쪽에 깊숙이 위치하고 있어 마을 주민을 빼고는 이방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기차역에 내려서 택시를 기다리던 중 그곳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한 젊은이가 여기에 오는 외국인은 거의 못 봤다며 놀라워하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봤다. 기자는 오통마을에 가려 한다고 대답했고, 알렉스라는 그 젊은이는 마침 자기 집이 그 쪽이라면서 친구와 함께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렇게 오통마을로 향하는 길은 예정에 없었던 히치하이킹으로 시작됐다.

차창 너머로는 추수를 마친 황금빛 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곳곳에 노르망디 전통 양식의 농가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드문드문 소나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오통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오통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알렉스 씨(33)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승마장에서 말을 탔다며 “노르망디 지역은 오래전부터 아랍 왕들이 개인 소유의 말들을 풀어놓고 키울 정도로 말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내린 곳은 오통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La Chaumiere aux Poneys’라는 농장. 이 농장은 ‘접대 농민’이라는 의미의 ‘아퀘이으 페이장'(Accueil Paysan)이라고 불리는 농가 중 하나다. 아퀘이으 페이장은 농촌 교육체험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으로 프랑스 전역에 400여 곳 있다. 농촌 공동화를 막고, 농업활동을 도시민들과 공유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자는 의미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오통마을의 농촌 교육체험 특징은 아퀘이으 페이장을 중심으로 농촌 자생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촌체험을 운영해 도시 아이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자연스러운 농촌 사랑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승마체험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서 농가체험, 자연활동, 레크레이션 관련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차에서 내려 나무로 된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 뿌베르 씨(42)가 반갑게 맞아주며 농장 안을 안내해줬다. 농장 안은 넓은 마당과 함께 아이들이 숙박하는 숙박시설과 가족들 대상의 민박집 한 채, 식당과 주방, 승마장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농장 한 켠에는 수영장과 함께 아이들의 캠핑을 위한 원추형 천막인 티피(Tipi)가 두어 개 자리잡고 있었다. 농장 곳곳에서는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는 시설도 찾아볼 수 있다. 뿌베르 씨는 건물 지붕들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돼 있고, 이 에너지를 활용해서 샤워실의 물을 데운다고 귀띔했다.

 

자연과 함께 생(生)을 체험하는 아이들

농장에서는 승마체험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서 농가체험, 자연활동, 레크레이션 관련 활동을 통해 농가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도시아이들의 농가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농가체험으로는 가축 돌보기, 조랑말 사육, 농가식품 만들기 체험 등이 운영되고 있고 자연활동으로는 자전거나 승마 등을 통해 농가 주변의 계곡이나 호수 등을 방문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레크레이션 활동을 위해서는 수영장과 미술활동이 가능한 아뜰리에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녁시간에는 음악이나 연극 등의 공연 혹은 캠프파이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농장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장원에 토끼와 당나귀, 양 등을 풀어놓아 아이들이 동물들에게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가축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동물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떤 모습으로 자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방학에는 방학 체험캠프(Stage de Vacances)가 1~2주간 열리고, 학기 중에는 도시 아이들을 상대로 농촌 현장학습 캠프(Classe Verte)이 5일간 열린다. 7월과 8월에는 원추형 천막인 티피(Tipi)를 활용한 캠핑 프로그램도 별도로 열려 승마뿐 아니라 피크닉, 당나귀 타기 등의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며칠 동안 농장에서 함께 먹고, 자고, 뛰놀며 지내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뿌베르 씨는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아이들이 사회라는 조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협동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통마을 생태 체험의 특징적 면모는 ‘자기 음식 직접 만들어보기’ 활동에서 드러난다.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들은 자기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보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음식을 스스로 조리하여 저녁상에 올린다. 기자 또한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직접 나무에서 프룬을 한 바구니 따오는 체험을 했다. 뿌베르 씨는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빵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먹거리가 되는지에 대해서 어른들은 잘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라며 “아이들 스스로 밀가루를 반죽하고 빚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우리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La Chaumiere aux Poneys’ 농장 사립문 앞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

 

아이들이 농촌 교육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정원에 풀어져 있는 동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뛰놀고 있다.

오통마을의 농촌 교육체험 농장을 운영하는 뿌베르 씨는 ‘체험’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체험이란 사진 찍고 명승지 돌아다니며 신기한 광경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손도 돕고, 그곳의 생산물로 자기가 먹는 음식도 만들어보면서 생태적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그는 십수년간 운영돼온 오통마을의 생태체험이 지금까지 지속가능했던 것은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생태체험 프로그램의 교육효과가 농촌체험 운영자와 인근의 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논의돼 농촌체험 효과를 배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지역 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해 인근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짜고, 이에 따라 현장체험학습으로 수업을 하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생태체험의 비결은?

오통마을이 지향해온 생태학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오통마을의 생태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하고, 이를 위해 도시에서 일부러 찾아 올 정도로 자녀들의 자연체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이 많다. 국가 차원에서도 농촌관광육성을 위해 수십년째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를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지방행정단위인 코뮨에서는 농가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을 브랜드화하여 네트워크로 추진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농가와 농촌이 받게 되는 이익도 상당하다. 농가는 생태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수입을 얻고, 이를 다시 생태체험 프로그램 준비에, 혹은 가축 사육이나 작물 재배 등 농장 운영에 투자할 수 있다. 또한 생태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지도교사, 승마 지도요원, 요리사 등을 고용함으로써 농촌의 고용창출과 소득향상을 꾀할 수 있다. 실제로 오통마을에서 나고 자라 지도교사를 매년 방학마다 하고 있다는 액셀 씨(21)는 “어렸을 때 이곳에 캠프와 승마 체험을 하러 많이 왔었다”며 “내가 좋아했던 체험을 지금 더 많은 아이들에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 매년 교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촌향도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해결책, 그리고 도시와 농촌 간 상생의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프랑스의 오통마을은 농촌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적 가치의 추구와 도농 간 상생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우리나라도 농촌 지역에 생태마을 유치를 늘려가고 있지만 생태적 가치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문을 닫는 곳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란 점에서 프랑스 오통마을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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