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제12회 인디애니페스트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에 어른들도 빠져든 지 오래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발칙하고 무궁무진한 상상력, 그리고 폭넓은 공감대로 애니메이션은 어른들을 웃게 하기도, 울리기도 한다. 바야흐로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지만 이런 흥행의 물결 속에서 독자적인 제작방식으로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뽐내는 독립애니메이션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에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매년 모이는 곳이 있다. 올해로 12회를 맞이한 ‘인디애니페스트’가 바로 그 현장이다.

한국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짚으며 다양한 성향과 기법의 독립애니메이션을 소개해 온 인디애니페스트는 독립, 실험, 열정, 비전의 가치를 내세우며 2005년부터 매년 가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의 축제를 열고 있다. 12회 동안의 슬로건을 보면 인디애니페스트의 발전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걸음마를 갓 뗀 3회 ‘말문을 트다’, 실험과 열정으로 무장한 7회 ‘무한 별 짓거리’를 거쳐 올해는 ‘개척’이라는 가치가 더해진 슬로건 ‘오프로드’를 내걸었다. 나기용 집행위원장은 “불모지에서 시작해 창작자가 관객을 찾아 다니며 하나의 장을 개척해나간 독립애니메이션과 ‘오프로드’가 닮아 있다”고 이번 슬로건을 설명했다.

인디애니페스트에 출품된 다수의 애니메이션은 특별한 대사 없이 다양한 기법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한다. 「블라인드 아이즈」(후 이판 감독)는 이미지의 변형을 통해 장면을 전환하는 메타모포시스 기법으로 여성과 남성이 하나의 몸에서 교체되는 장면을 연출해 성 정체성에 관한 개인적인 혼돈을 그려낸다. 「Voyant」(위위 감독)는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카메라로 설정해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을 인형을 조금씩 변형시키며 한 장면씩 촬영해 움직이는 퍼핏 기법을 통해 사실감 있게 담아냈다. 감독 특유의 개성이 영상의 색깔을 결정짓기도 한다. 개막작 「붉은 거북」(미카엘 두독 데 비트 감독)은 이름 모를 섬에 난파된 남자의 이야기를 대사 없이 감독만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으로 그려내 외로움, 절망, 상실감, 유대와 사랑까지 다채로운 감정선을 살펴볼 수 있었다. 관객 최복희 씨(26)는 “작품을 해체하며 소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난파된 한 남자의 일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개막작 붉은 거북 상영 후 미카엘 두독 데 비트 감독과 원격 대화의 자리가 마련됐다.

올해 인디애니페스트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이채로운 작품을 찾아 나서기 위해 ‘아시아로’ 부문을 신설했다.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24개국에서 총 315편의 애니메이션이 접수됐고 그 중 아시아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굴곡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각국의 이야기 35편이 상영됐다.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당신의 담장 안」(오메르 샤론, 다니엘라 슈니처 감독)은 이스라엘의 복잡하게 뒤섞인 사회상과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암울한 미래 도시 ‘쉬코아’를 배경으로 한 「쉬코아」(이샨 슈크라)는 인도에서 제작됐다. 이는 정치 경력과 사랑 사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한 남성을 다루며 실사를 바탕으로 한 프레임 위에 선과 색을 덧입히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제작돼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송경원 심사위원은 「쉬코아」에‘독특한 상상력과 연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인도 애니메이션의 넓은 저변을 짐작할 수 있었다’는 평을 남겼다. 관객 이선아 씨(23)는 “인도, 요르단, 이스라엘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시아 각국의 애니메이션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새롭고 즐거웠다”고 관람소감을 말했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영화만 상영하고 그치는 것이 아닌 독립애니메이터들의 만남의 장이자 교류의 장의 역할을 해왔다. 2010년부터 시작된 ‘릴레이 애니메이션’에선 독립애니메이터들의 공동작업이 이뤄진다. 올해는 평화를 주제로 12명의 감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부터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캐릭터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작품까지 서로 다른 모습의 평화를 그려냈다. 토요일 밤 진행된 ‘인디애니의 밤’에선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술잔을 들고 좋아하는 감독에게 찾아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직접 듣는가 하면, 당일 처음 본 사람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긴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감각적인 묘사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 「O」를 연출한 오수형 감독을 만나고 싶어 ‘인디애니의 밤’에 참석했다는 박진혁 씨(20)는 “독창적인 표현력과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는지 묻고 싶다”며 감독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감독들의 은인을 받으러 돌아다니던 김지수 씨(계원예대 애니메이션학과)는 “인디애니페스트처럼 밀도 있는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는 드물다”며 “내년에 작품을 직접 출품해 볼 예정”이라고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올해 인디애니페스트는 애니메이션의 ‘오프로드’를 걷겠다며 앞장섰다. 길이 아닌 길을 개척해나가며 흔적을 남기겠다는 제12회 인디애니페스트. 많은 이들이 걸어온 그 흔적들이 훗날 독립애니메이션의 길이 되길 기대해본다.

 

사진: 인디애니페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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