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기술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

게임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안 해본 게임이 없어 급기야는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A씨, 코딩에 대해서 아는 것 하나 없지만 아이디어는 넘쳐흐르는 B씨, 공돌이는 아니지만 내 손으로 만든 로봇을 꿈꾸는 C씨. 서울대에는 이들이 환영받을 수 있는 동아리들이 있다. 게임 만드는 동아리 ‘SNUGDC’부터 로봇 제작 동아리 ‘시그마 인텔리전스’, 애플리케이션 제작 동아리 ‘앱이로드’까지,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고 싶은 당신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줄 이들을 만났다.

게임의 던전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 게임 개발 동아리 ‘SNUGDC’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족히 20분은 나와야 하는 서울대입구역 도로변에 한 동아리방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콘솔게임 CD로 채워진 책장, 각종 게임 포스터와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게임 덕후들의 던전’이라는 기운을 뿜어내는 방에서 게임 만드는 사람들 SNUGDC를 만났다.

활동 회원이 40명 정도인 SNUGDC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학과, 연령, 성별을 자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내로라하는 게임 마니아라는 점. 2012년부터 1년 동안 게임을 100개 이상 모았다는 송용재 씨(기계항공공학부·11)는 “‘문명’ 같은 경우 이틀 동안 28.5시간을 플레이하는 기록을 세우고 총 400시간 정도 플레이했다”고 자신의 ‘덕후력’을 뽐냈다. 하지만 모은 게임이 300개를 넘어가고 문명을 1,000시간 넘게 플레이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곳에서 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미는 축이다.

‘덕질’을 좀 더 생산적으로 하기 위해, 게임 제작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또는 단지 심심해서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이들은 매 학기 팀을 이뤄 게임을 제작한다.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바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다.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기획안을 내면 그 기획안에 끌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팀을 꾸린다. 팀장의 취향이나 아이디어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게임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소재는 매우 중요하다.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만나 팀이 꾸려지면 구체적인 기획안이 완성되고, 방학 동안 회의와 합숙을 거듭하며 하나의 게임이 완성된다.

‘메이드 인 SNUGDC’ 게임의 매력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실험적인 소재에서 나온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각국을 위협하는 게임이나, 공대생이 여러 가지 부품으로 조합된 몬스터를 해치우고 그 부품으로 새로운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 던전을 돌파하는 게임 등 민감하거나 독창적인 게임도 마음껏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배포된 ‘홈 어론’은 누적 다운로드 수가 10만 건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자취방에 동물 친구들을 초대한다는 단순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은 이유에 대해 부회장 김용욱 씨(환경재료과학과·14)는 “대학생을 겨냥해 ‘자취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40인의 취향에 따라 40개의 각기 다른 게임이 만들어지는 이곳에선 누구든 마음껏 아이디어와 상상력의 세계를 펼칠 수 있다. 회장 원지호 씨(경제학부·14)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로 게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개인의 아이디어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강제적이지 않은데도 거의 모든 구성원이 게임 제작에 참여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본인의 입맛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 ‘취향저격’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SNUGDC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로봇? 예술작품? 우린 둘 다 해!

- 로봇 개발 동아리 ‘시그마 인텔리전스’

윗공대 302동에는 ‘마방’이 있다. 마법의 방이냐고? 바로 로봇 개발 동아리 시그마 인텔리전스(시그마)의 동아리방, 줄여서 마방이다. 마왕이라 불리는 회장을 필두로 약 30명의 시그마 회원들은 마방에서 기상천외한 기능과 형태를 가진 로봇들을 뚝딱 만들어내고 있다.

지식을 모두 합해보자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시작한 시그마에는 다양한 분야의 능력자들이 모여들었다. 소련의 로켓 ‘소유스’의 도면만큼 정교하게 기계를 설계해 일반 컴퓨터로는 그의 도면 파일을 열 수 없을 정도인 기계 설비의 달인부터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동아리에 전해주는 로봇계의 신문물 사절단까지. 무궁무진한 재능과 가능성을 지닌 이들은 시그마에 모여 함께 로봇을 만들어간다.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뭉쳐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수식을 완성한다. 이렇게 기계 설비가 어느 정도 준비되면 거기에 맞는 회로와 부품을 통해 완성품을 만들어간다.

내 손으로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 찬 그들은 ‘과연 이게 정말로 될까?’라는 의문이 드는 아이디어들도 척척 실현해낸다. 기존 원형 바퀴가 가진 방향전환의 한계에서 출발한 ‘RAMMUS’는 기계의 구동부가 구형의 바퀴 안에 들어간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바퀴가 구형이기 때문에 심지어 제자리에서 도는 것까지 모든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시그마는 사람을 대신해 일한다는 로봇의 본래 의미에 충실해 인명 구조 로봇, 원격탐사를 위한 수륙양용 탐사 로봇 등 다양한 기능의 로봇을 탄생시켰다.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시그마의 도전은 색다른 방향으로도 흘러갔다. 올해 초 ‘T 해커톤’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무제’는 로봇이라기엔 다소 독특한 형태를 가졌다. 널따랗고 하얀 스케치북 같은 모양새를 가진 작품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 LED 조명이 글씨에 해당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개발에 참여한 부회장 박재연 씨(전기정보공학부·15)는 “작품 위에 사용자가 어떤 글씨를 쓰느냐에 따라 다른 형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무제’라고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로봇보다는 공학을 이용한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미디어 아트’라고 불린다. 박재연 씨는 “미대 학생들이 동아리에 합류하면서 로봇을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단지 기능만 첨가하기보다는 로봇의 목적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외형을 디자인한다”고 덧붙였다.

시그마에서는 로봇을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매년 전시회를 열어 로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 박재연 씨는 “로봇이나 예술작품 모두 만드는 사람이 전달하려는 의도에 따라 전기기술 혹은 붓과 물감을 통해 그 의도를 구현한 것”이라며 공학과 예술이 결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이들의 결과물은 ‘만들고자’하는 사람들에 의해 작동되길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불편함’은 우리의 빛

- 앱 개발 동아리 ‘앱이로드’

(사진제공: '앱이로드')

총면적 120만평의 드넓은 관악캠퍼스엔 20개 가까운 학생식당(학식)이 있고, 각 식당은 매일 서로 다른 메뉴를 제공한다. 3,000원짜리 학식이라도 좀 더 맛있는 메뉴를 즐기고 싶은 굶주린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오늘 뭐 먹지?”라는 중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학식을 모두 돌아다니지 않고도 어떤 메뉴가 나오는지 알 수는 없을까?

애플리케이션(앱) 제작 동아리 ‘앱이로드’는 이렇듯 거창한 목표의식에 연연하는 대신 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사소한 불편함을 소소하게 해결해주는 앱을 개발해왔다. 학내 모든 학식 메뉴를 총망라한 ‘학식은 나의 빛’(학나빛), 학나빛의 카페 버전인 ‘에스:프레소’, 서울대 모든 시설의 전화번호와 홈페이지를 연결해주는 ‘11샤’ 등의 앱이 그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서울대생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일상생활에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한 앱도 있다. ‘Dutch’는 계산 기능은 물론 최소 금액 단위를 지정하거나 이전에 계산했던 기록이 남아 더치페이를 더 편리하게 해주고, ‘버티샤’는 디데이를 설정해 일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려준다.

앱이로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코딩을 배우고 배운 것을 적용해 앱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회장 조경제 씨(수리과학부·15)는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보니 앱도 많이 접하게 됐고, 앱을 제작하며 코딩을 배워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한 번 배워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뭉친 동아리답게 앱이로드에는 코딩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초심자도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조경제 씨는 “코딩과 관련 없는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팀당 10명으로 꾸려진 4팀 중 한 팀만 실제로 앱을 개발하고, 나머지 3팀은 파이선 등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스터디 모임이다. 코딩을 배우다 앱 개발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제작팀으로 옮겨 개발에 착수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동아리방이 없어 교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하는 이들이지만 배움을 향한 열정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조경제 씨는 “빌린 교실에서 파이선 공부하다가 밤이 늦어 경비 아저씨께 쫓겨나다시피 학교를 나선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점으로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컴퓨터 언어가 내 휴대폰으로 옮겨지는 순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어엿한 앱으로 나타나는 것”을 꼽았다.

조경제 씨는 “모두 취미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거창한 목표는 없다”고 말하며 “그러나 스스로가 학교를 다니며 겪은 불편함을 직접 해결하려다 보니 서울대생들이 공유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앱이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앱이로드는 취미·교양 분과의 동아리”라고 겸손하게 말한 이들의 목적은 획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앱을 만드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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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자 모인 이들은 꾸준히 활동하며 창작물을 선보이고 있다. 연령, 학번, 학과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을 환영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 세 동아리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밤낮 없는 열정으로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족하게 해주길 기대해 본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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