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그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3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사경을 헤매다 지난 25일 숨을 거뒀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은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안타까운 일”이라며 ‘불법 시위’를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 역시 지난 12일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 “불법 폭력 시위가 문제”라고 못 박았다.

‘불법 시위’가 이렇게 무섭다. 불법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중태에 빠질 수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여당과 전 경찰청장의 발언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백하다. 이제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정권이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서 ‘합법적인 시위’가 가능한 지의 문제를 따져보면, 불법 시위를 향한 이들의 비난이 실제로는 시위 그 자체를 향해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집회 신고제 때문에 경찰은 실제 불법 행위가 일어나기도 전에 우려, 예상만으로도 집회를 금지, 해산시킬 수 있다. 또 경찰이 해석하는 집시법 12조에 의거해서 서울 시내 웬만한 도로에서는 모두 집회가 불가능하고, 한강 고수부지에서나 비로소 집회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집회, 시위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 분열을 초래하지 말고 평화롭게 의견을 개진하라는 말은 너무도 공허하다.

이처럼 기득권이 불법 딱지를 붙여가며, 물대포를 쏴가며 시민의 의견 표출을 통제하는 행태는 곧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에 대한 외면이다. 시민이 거리로까지 나와 호소하려는 불합리에 대한 무관심이다. 기존의 체제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부조리를 인지하고, 주목하고, 해결하려면 소음이 발생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데 기득권은 이 소음이 시끄럽다며 우리에게 조용히 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시위와 집회의 문제뿐만은 아니다. 사회 안정과 단합을 위해 조용히 할 것을 종용하는 기득권의 모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의혹에 대해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규명하고 진상을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할 입장에 있는 그가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명백히 존재하는 문제를 외면함과 동시에 문제를 밝히고 해결하려는 시도는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매도한 것이다.

지난달 5일 정의당 일부 당원이 붙인 현수막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남자 여자 편 가르기 그만했으면…친하게 지내요”라는 현수막은 수많은 젠더 이슈를 외면하고 단지 갈등의 종식을 종용할 뿐이다. 불합리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단순한 ‘편가르기’로 일축해버리고,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은폐해버리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그들은 자꾸만 우리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한다. ‘혼란’을 가중시키지 말고, ‘편가르기’해서 싸우지 말고, ‘불법’을 저지르지 말란다. 있는 문제도 없는 척하고, 시끄럽게 일을 키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란다. 침묵해서 얻는 평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일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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