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카이스트는 ‘그랜드챌린지 3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구 결과의 성공이나 상업화 여부와 상관없이 인류 지식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연구하는 학생과 교수들에게 최장 30년간 연구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재의 단기적인 성과중심 연구 지원 제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시도라는 점에서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왔다. 획일화된 기준에 따른 현행 연구지원 제도에 대한 보완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우선 선정 기준이 기존의 연구지원 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현재 핫이슈가 아닌 주제’ ‘10년 내 상업화가 불가능한 주제’ ‘기초과학 분야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연구비를 외부에서 지원받기 어려운 주제’ 등을 선정한다. 연구제안서에 연구의 필요성과 기대효과 등을 적시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실제 연구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연구의 필요성과 기대효과를 얼마나 잘 윤색한 보고서를 내느냐가 연구지원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학계에 널리 퍼져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연구비 지원 기간도 매년 2,000만원씩 최장 30년에 이른다. 기존 지원 제도의 장기 연구는 아무리 길어야 5년 정도고 대개는 3년 정도가 일반적인 상황임을 고려할 때 한 세대에 달하는 30년간의 지원이란 매우 파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한 연구자가 평생을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지원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연구 평가도 5년 동안은 연구자가 자신의 아이디어가 옳았는지 자체 검토해 스스로 결정하며, 5년 후부터는 전문가 평가가 이뤄지지만 연구의 성실도만을 평가한다.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를 걱정하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아직 제도의 도입 초기이므로 나타나는 문제는 차후 보완이 가능할 것이다.

서울대도 장기적인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2012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를 선발해 5년 동안 매년 4억원을 지원하는 ‘창의선도 연구자 사업’, 2013년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있지만 지원이 부족한 연구자를 선정해 3년간 매년 1억원을 지원하는 ‘유망선도 연구자 사업’을 차례로 도입했다. 지난 5월부터 시행된 ‘창의선도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은 연구의 도전성과 창의성을 기준으로 20명 내외의 젊은 교수를 선발해 연 3천만원에서 1억원의 지원금을 3년 단위로 최대 9년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장기적 지원에 사용되는 예산은 전체 연구비 총액 5,440억원 중 150억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 사업은 모두 근본적으로 성과 중심이라는 기존의 연구지원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과 같은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이제 단기적 연구 성과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연구지원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법인화 후 대학의 상업화 우려에 대해 기초학문 연구지원 확대를 대안으로 강조했으나 가시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은 부족한 편이었다.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및 기초학문 분야 전반의 연구 방향을 일신시킬 수 있는 중장기적인 연구지원 방식에 대한 시도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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