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2016 경제민주화 심포지엄

황승흠 교수(국민대 법대) "제헌국회의원들의 파토스는 현행헌법의 경제민주화 이념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경제민주화'는 경제 불황과 사회양극화를 비롯한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웅장했던 경제민주화의 구호는 초라해졌고, 소득양극화뿐 아니라 건강 및 교육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려고 분투 중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악영향만을 강조하는 재벌집단, 자유시장주의자들의 무조건적 거부 반응을 차치하고라도 보수와 진보의 진영 구분선에 따라, 각 진영 내부에서도 저마다 다른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때로는 그 의미가 왜곡되기도 한다. 이에 지난달 30일 공익인권법센터, 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2016년 경제민주화 심포지움’에는 경제학자, 법학자,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모여 경제민주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모색하는 한편, 한국경제를 진단하고 민주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폭넓은 논의를 주고받았다.

헌법 속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누구나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모두 제각각이다. 김형성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치되지 않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이해가 존재한다”며 경제민주화 개념의 논쟁적 성격을 지적했다. 경제민주화 개념이 논쟁적인 것은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헌법의 경제조항인 제119조를 다르게 해석하는 데서 기인한 바 크다. 제119조는 제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고 규정한 다음, 제2항에서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1항과 2항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발생한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제1항이 기본이고 ‘경제의 민주화’ 구절이 포함돼 있는 제2항은 예외적 조항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삭제할 것을 주장한다. 심지어 국가권력이 배제된 시장경제야말로 진정한 경제민주주의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패널들은 이와 같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이해라고 비판했다.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대한민국에서 재벌로 상징되는 시장 경제력은 이미 권력화됐다”며 국가의 규제 없이는 ‘자율’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의에 따라 경제민주화를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 확보’로 정의했다. 이때 시장 경제력 역시 권력화된 한국의 상황에서는, 국가의 개입 없는 시장경제를 경제민주주의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송석윤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역시 제119조 제2항을 부정하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헌법 제119조 제1항과 제2항의 관계는 상호 충돌하는 조항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고 실현하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분제가 유지됐던 봉건적 질서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될 수 없었다”고 지적하며 오늘날 경제적 양극화와 이에 따른 계층의 고착화로 대표되는 사회 전반의 재봉건화를 막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편 이병천 교수(강원대 경제학과)는 “제헌헌법에서는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의 내용이 핵심이었으며 제2항을 예외적 조항으로 보는 시각은 헌정사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것”이라며 자유시장주의자들을 비판했다. 현행 헌법의 제119조에 해당하는 제헌헌법 제84조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명시한 뒤 경제상의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던 박정희 정부 당시 제119조 제1항과 제2항이 담고 있는 내용의 편제순서가 바뀌었으므로 제1항이 기본으로, 제2항을 예외적 조항으로 간주하는 시각은 제119조에 대한 몰이해라는 지적이다.

재벌중심 한국경제, 돌파구는 어디에

이날 심포지움에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경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민주적 방법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패널들은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로 재벌을 꼽았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이근 교수(경제학부)는 “재벌이 영미금융자본에 의해 포획돼 주주자본주의가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경고했다. 이근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재벌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급상승한 외국인 지분과 오너 가족의 지배가 공존한다. 이렇게 영미식 주주자본주의가 정착하면 장기적 투자보다 주주의 배당을 중시하게 되고, 투자가 감소하면서 개별기업과 국가의 성장률이 저하된다. 또 과거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올려주기도 하는 등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 하에서는 주주들의 비용절감 압박에 의해 대기업이 글로벌 조달 체계를 찾아 나서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고, 비용절감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국내 산업 및 고용 효과가 대폭 축소된다.

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는 재벌대기업이 추격형 발전전략에서 혁신형 경제로의 전환을 방해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내부거래, 문어발식 확장이 혁신기업의 시장진입을 막고,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기술혁신과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있어서는 패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가장 치열한 대립을 보였던 부분은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에 대한 시각 차이였다. 박상인 교수는 재벌그룹을 해체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그는 “10대 재벌의 자산총액 비중이 GDP 대비 84%에 달할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다”며 “경기 후퇴로 기업이 도산하면 대규모 경제위기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센터 정승일 대표는 재벌그룹을 무조건 해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와 대자본(대기업그룹)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시키는 자유주의적 경제민주주의는 가짜 경제민주주의”라며 경제력 집중 또는 대자본의 역할을 비판만 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경제력의 집중이 효율성의 측면에서 이점을 갖는 만큼 재벌을 무조건 해체하고 약화하는 것보다는 그에 대한 다층적인 사회적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재벌그룹에 대해 금융회사 수준의 엄격한 규제를 마련해야 하며 종업원 대표 이사들이 그룹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의무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문제시되고 있는 총수 가족의 전횡적 통치를 방지하고 기업의 민주적 통치가 이뤄진다면 굳이 재벌그룹을 해체하고 축소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규범적, 실천적 차원의 논의가 오갔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경제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다수 표출됐다. 김형성 교수는 “정치세력이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경제운용의 기본방향에 있어 이념적 갈등의 편차가 큰 현실에서 경제의 민주화가 실현가능할지는 미지수”라며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87년 헌법 개정 당시 제119조의 제정과정에 참여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역시 “지금 우리 관료체제, 정치권, 언론의 태도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기업에 반하는 입법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며 회의적 입장을 밝힌 뒤 “이를 민주적인 절차로 해결하지 못하면 선동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정치권을 향해 경고했다.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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