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노인의 터전, 자원순환의 시작점, 고물상에 가다
폐지 노인의 터전, 자원순환의 시작점, 고물상에 가다
  • 정채현 기자
  • 승인 2016.10.09 06: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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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관악구 고물상 르포

마을버스 관악02가 출발하는 낙성대역 4번 출구 정거장 맞은편 골목. 김치찌개 전문점, 일식당 등 음식점이 즐비한 길가에 자그마한 고물상이 자리잡고 있다. 파리 떼가 가장 먼저 반기는 그곳에 깡통, 플라스틱, 폐지가 산처럼 높이 쌓였다. 한 노인이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양의 신문지, 골판지, 빈 캔을 모아 손수레에 여러 번 줄로 감아 들고 찾아왔다. ‘성신자원’이라고 쓰인 간판을 단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던 사장이 노인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바닥에 깔린 큼직한 철판은 저울이다. 노인이 철판에 고물을 내려놓자 컨테이너 박스 앞에 붙어있는 빨간 형광판이 무게를 알려준다. 돈을 받고 사장과 짧게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던 노인은 다시 폐지를 주우러 걸음을 재촉했다.

이 밖에도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관악구청으로 들어가기 전 골목에 ‘오광자원’, 봉천역 근처 ‘양지자원’, 서림동 주민센터 맞은편엔 ‘광성고물상’이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3년 8월 기준 전국에 있는 고물상 수는 약 1만 2천개며, 관악구에는 약 30개의 사업장이 위치해 있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고물상은 등굣길 곳곳에 숨어있었다. 수많은 폐지 노인의 생업의 터전이자 우리나라 자원재활용의 일부를 책임지는 고물상을 『대학신문』이 찾아가봤다.

 

고물 속에서 피고 지는 하루

고물상의 하루는 아침 6시 반에 시작해 오후 6시 반에 끝난다. 새벽녘과 문닫기 직전이 고물을 팔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이다. 하루에 200명 정도가 오간다는 광성고물상 사장 A씨는 “방문하는 사람 중 생업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들과 부수입으로 건설 현장에서 쓰고 남은 철근 등을 파는 인부들이 반반 정도 된다”고 말했다. 고물상에선 이들이 모아온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무게를 달아 값을 쳐준다. 고물상이 취급하는 재활용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같은 플라스틱이라도 ‘물랭이’라고 부르는 말랑말랑한 플라스틱과 ‘따데기’라는 이름의 딱딱한 플라스틱을 나눈다. 흔히 ‘철류’라고 사람들이 두루뭉술하게 부르는 것도 고철, 동, 신주, 양은 등으로 구분해야 해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분류법을 배우는 데만도 오래 걸린다. 가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종이류는 kg당 80원에 사 90원에 팔고, 고철은 100원에 사 120원에 되판다. 성신자원 송순영 사장은 “양은이 이윤이 제일 많이 남아 냄비류가 들어올 때가 가장 반갑다”고 말했다. 성신자원과 달리 양지자원과 광성고물상은 각각 2명, 3명의 직원을 둬, 계약한 가정집, 빌딩, 학교 등에 가 재활용품을 직접 모은다. 광성고물상은 이른 아침에 서울대 식당에서 모아둔 폐지를 수거하기도 한다.

양지자원에 산처럼 쌓였던 플라스틱이 중간상 트럭에 실리고 있다.

전선을 피복과 구리선으로, 에어컨 실외기는 플라스틱과 철로 분리하는 등 수집한 재활용품을 종류에 따라 분해·분리하고 운반하기 쉽게 압축하는 것이 고물상의 주요 일과다. 그러나 고물상이 모든 재활용품을 받는 것은 아니다. 부피가 너무 크거나 관리가 힘든 고물은 받지 않는다. 성신자원 사무실 창문 옆에는 ‘TV, 장판, 바퀴가방 안 받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성신자원 전상문 사장은 “TV는 부피가 커서 놓아둘 공간이 부족하고 장판은 분리하는 과정이 까다로운 데 비해 값이 싸 인건비도 안 나온다”며 “바퀴가방은 압축하는 과정에서 바퀴가 깨져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수집한 고물은 중간상이 매입해 납품상이나 공장에 납품한다. 넓은 부지가 필요한 중간상은 보통 광명시 등 서울시보다는 땅값이 싼 시외에 위치해 있다. 송순영 사장은 “보름에 한 번 꼴로 중간상이 온다”며 “한 번 중간상에 팔면 보통 200~300만원 정도 받지만 비철이 많이 들어있을 때는 500만원까지 받는다”고 밝혔다. 양지자원 사장 B씨는 "양이 많이 나오는 파지는 매일 600kg씩, 고철은 1주일에 한 번 3톤, 비철은 한 달에 한 번 2톤 정도를 중간상이 직접 와 가져간다"고 말했다.

 

고물상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고물상을 운영하는 사장, 방문객 등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고물상 주인들은 처음부터 고물상으로 생계를 꾸린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B씨는 운영하던 회계 학원이 파산하자 고물상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15년 전 새시공사 업체를 운영했었다는 송순영 사장은 “공사 대금을 주로 현찰이 아닌 어음으로 받았기 때문에 IMF가 일어나고 돌려받을 수 없었다”며 “그래서 현찰을 만질 수 있는 고물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송순영 사장이 남편과 운영하는 성신자원은 직원을 따로 두지 않기 때문에 고물 수집의 대부분을 방문객에게 의존한다. 그녀는 고물상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단골 고객들과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고물상에 찾아온 할머니를 위해 먹을거리를 내오더니 “단골과는 공생하는 관계”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하루에 성신자원을 방문하는 30명의 사람들 중 대다수인 폐지 줍는 노인들이 그들의 단골이다.

한 노인이 성신자원에 재활용픔을 팔고 고물 수집을 위해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노인들은 장시간 노동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으며 폐지를 줍는다. 관악구청 맞은편 건물 쓰레기봉투에서 폐지를 찾던 75세 할머니는 “한짐 가득 싣고 가도 천원짜리 몇 장밖에 못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10시간 폐지를 주우러 돌아다니지만 수입은 월 15만원도 안 된다”고 했다. 폐지 매매가는 노동 강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최종 구매 업체가 정한 가격에서 중간 유통업자들의 이익을 뺀 값으로 결정된다. 이렇게 하향식으로 결정된 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동이 없다. 1995년에 kg당 신문지 값이 100원, 골판지 값이 70원이었던 가격은 평균 1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지난 20년간의 물가 상승 폭을 생각한다면 거의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폐지 가격은 사실상 감소한 것과 다름없다.

생계를 위해 고물을 파는 사람들만 고물상을 찾는 것은 아니다. 양백자 씨(77)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신림6동 골목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모은다. 한 번 폐지를 가져가면 2천~3천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 두세 번씩 고물상을 오간다. 양백자 씨는 큰아들에게 생활비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장 폐지 수집을 그만둔다 해도 경제적 타격을 입진 않는다. 그는 “아들이 폐지줍는 일을 싫어하지만 운동 삼아 한다”며 “이렇게 번 돈으로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자에게 용돈을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물상, 절벽에 내몰리다

고물상들은 입을 모아 ‘요즘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B씨는 “경기가 나빠져 건설 자재 포장지조차도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요새는 월세 200만원, 임대료, 인건비를 부담하기도 빠듯해 적자가 나는 달이 많다”고 말했다. A씨는 고물상에게 적용되는 세제혜택이 줄어들어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건을 산 증빙기록이 정확히 남는 다른 업종과 달리, 몇 천원 단위로 고물을 사는 고물상들은 매입기록을 남기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는 고물상들이 실제 매입하는 금액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록이 없어도 매입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제도를 시행한다. 하지만 2013년 세수 증대를 위해 재활용폐자원의 매입액에 대한 세금공제율을 5.7%에서 2.9%로 점차 낮추는 세법이 통과됐다. 이에 고물상들은 세금 부담이 2013년에 비해 약 63%가 증가하는 등 엄청난 증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A씨는 “공제율이 떨어지며 내가 아는 봉천동의 고물상 두 개가 문을 닫았다”며 “세금이 오른 만큼 고물을 싸게 사야하지만 그렇다고 노인들 사정을 뻔히 아는데 매입가를 낮출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물상의 입지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현행법도 영업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법) 제76조에 따르면 일반 주거지역 안에 고물상을 세울 수 없다. 국토법에 따라 상업·주거지역 내의 고물상들은 불법 영업에 해당해 구청은 고물상에 퇴거 명령을 하거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자원재활용연대 봉주헌 대표는 “고물상이 자원순환관련시설로 명칭이 바뀌었는데도 관련 부처는 국토법, 건축법 등 법령을 정비하지 않고 있다”며 “전국 고물상들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의 행정단속과 민원신고 등에 의해 불안정한 사업 환경을 감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토법 제정 이후 고물상으로 사업자등록을 받으려면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해 등록에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논문 「재활용인들의 시장경제적 자원순환: 고물상의 경험을 중심으로」(강재성, 2016)에선 고물상 업주들의 입장에서 사업자등록의 문제는 가게를 처분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해 사유재산을 사실상 묶어버리며,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진입과 철수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현실적인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자원 순환의 한 축 담당해

한국의 자원재활용 비율은 약 61%로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연 고물상은 이 수치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자원재활용연대의 추정에 따르면, 전체 재활용품 중 25%는 정부 계약을 통해 운영되는 생활자원회수센터를 경유하고, 30%는 아파트, 공장 등 대단위 배출업소에서 처리되며, 나머지 45%는 영세 고물상이 처리한다. 강재성 씨(인류학과 석사과정 졸업)는 “대부분의 통계자료는 최종 업체만 다루기 때문에 고물상의 기여도는 잠정적으로 추정될 뿐”이라며 “영세 고물상은 최종업체를 거치는 재활용품이 최초로 진입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재활용률 기여도가 크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청소행정과 김성진 주무관 또한 “지자체 시설만으로 재활용품을 처리하기에 양이 너무 많지만 민간에서 고물상이 그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고물상은 우리나라 자원 순환의 한 축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고물상은 ‘고물영업법’에서 따온 말이다. 1993년에 폐지된 이 법에서는 미술품·의복·귀금속·가구·서적·철물류 등을 고물로, 고물을 사고파는 상인과 업체를 고물상으로 규정했다. 과거 ‘오래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했던 고물상은 이제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이라고 인식되며 동네에서 쫓아내달라는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고물상은 그저 악취나는 쓰레기산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겐 엄연한 삶의 터전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고물이 수집인과 고물상의 손을 거쳐 새로운 제품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애벌레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나비로 탈바꿈하는 모습과 닮았다. 재활용품이 나비가 되기 위해 쉬어가는 그곳에서, 그들은 오늘도 인고의 시간을 함께 감내하고 있다.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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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 2016-10-10 22:12:16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