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섭 교수 국어국문학과

한글날을 앞두고 지난 10월 5일에 ‘우리말 샘’(‘말샘’)이 개통됐다. ‘말샘’은 국립국어원이 2010년부터 준비해 온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이다. 기존 ‘표준국어대사전’(‘표준’)과 비교하자면, ‘표준’에서는 표준어 중심으로 표제어를 제한하는 데 비해 ‘말샘’에서는 표준어, 비표준어를 막론하고 실제 사용되는 한국어를 수록한다. 또 ‘표준’은 본래 종이사전이어서 인터넷에서 서비스하더라도 편집과 검색에 제약이 큰데, ‘말샘’은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사전이어서 이런 제약에서 훨씬 자유롭다. 그래서 사용자 누구나 사전 내용을 수정하고 증보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형으로 운용된다.

예를 들어 최근의 유행어 ‘딸바보’는 ‘표준’에는 실릴 수 없지만 ‘말샘’에는 이미 등재돼 있다. “딸 앞에서 바보가 될 정도로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를 이르는 말.” 벌써 한 이용자가 ‘썸 타다’를 ‘말샘’에 등재하고 예문까지 딸린 뜻풀이를 해 놓았다. “(←something 타다)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내다. 썸만 타다 끝나는 대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전수하는 썸 타는 기술 콘텐츠도 실려.... 「연합뉴스」(2012년 10월)”

‘말샘’은 다양한 각도의 국어 학습과 생생한 글쓰기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말샘’은 용어 만들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위의 ‘딸바보’와 ‘썸 타다’는 유행어지만, 실제 ‘말샘’의 표제어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전문용어다. (‘말샘’의 표제어는 총 100만 개인데, 그중 50만은 ‘표준’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머지 50만 개는 ‘말샘’에서 추가한 것인데 그 70%, 즉 35만 개가 전문용어다)

용어 문제와 관련해 필자는 강의에서 한 국어학자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자주 언급한다. “우리나라 바다에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현상이 있는데 거기에 이름이 없다. 우리는 이름 없는 사물과 일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명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 학자는 이런 예도 들고 있다.“공장에서 카펫을 만들 때 굵은 실을 V자 모양으로 잘라 카펫바닥에 박는데, 우리나라 어느 공장에서 V자의 양쪽 키를 똑같이 맞추지 못해 카펫 표면이 거칠었다. 기술자들이 오랫동안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 현상의 이름이 ‘J-cut’이라는 것을 알고서야 ‘제이컷’을 없애는 회의를 시작하게 됐고 결국 문제 해결에 이르렀다.”(남영신,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모세의 기적 현상’은 나중에 ‘바다 갈라짐’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뉴스에서는 흔히 ‘모세의 기적’을 앞에 내세우고 ‘바다 갈라짐’은 설명으로 끼워 넣고 있다. 새 용어가 기존 용어의 기득권을 극복할 정도의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제이컷’의 예에서는 현상이 있어도 이름이 없으면 환기나 개념화가 쉽지 않아 대상을 초점 맞춰 다루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에 있는 우리에게 전문 용어의 다듬기는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한 가지 예로서, 이전에 의학계에서 외국어와 궁벽한 한자어가 많이 섞인 수만 개의 의학 용어를 가지고 교육하고, 연구하고, 소통했을 때 겪었을 어려움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의학 용어를 다듬어 온 한 원로 학자는 ‘말샘’이 특히 학술 용어의 발전에 기여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방형 지식 대사전을 보다 확대시켜 모든 용어 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우리말 전문용어 큰 사전’ 같은 원대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은희철, 「전문용어 정비와 표준화의 실제 방향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새국어생활』)

‘말샘’은 지금 막 출발했다. 필자는 대학의 학생과 연구자들이 이 사전에서 한국어로 된 용어를 발전시키는 데 활발하게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사전은 제안과 수정의 이력을 공개하므로 참여자의 이름은 그의 논리와 지향과 창의와 함께 기록돼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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