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혜 박사과정 뇌인지과학과

아기가 태어나 말과 글을 배우고 숫자를 배운다. 그리고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국어, 수학, 과학 같은 과목들을 배운다. 거대한 지식 덩어리를 몇몇 학문 체계로 나눠 익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과목을 온전히 소화하고 지식이 꽤 깊어지다 보면 결국 다른 범주로 나뉘었던 어떤 분야와 다시 마주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예컨대 과학이 깊어지면 진리를 고민하는 철학과 만나고, 음악이 깊어지면 현의 진동비를 계산하는 수학과 만난다.

서울대는 종합대학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다양한 학과로 편제돼 있고, 전공별로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강의들이 개설돼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대개 아무런 장벽 없이 자신의 전공 외의 다른 동네를 기웃거릴 수 있다. 학부 시절 학교가 내게 준 커다란 선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하나의 분야에 어느 정도 진입한 뒤에 거기서 파생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전공의 힘을 빌려야 했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온갖 서적이 있고 전문적인 강의가 열리는 학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소중하다. 타 분야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낯선 곳을 홀로 걸어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때 갈 길을 함께 고민할 사람이 있다면 물리적인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 심적인 부담감도 훨씬 경감된다. 내가 학교에서 만난 많은 선생님은 서투르지만 이것저것 해보려는 학부생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또한 여러 학내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과 서로 다른 시선에서 토의하며 발전했다.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는 지금도 그 내용이 학문적으로 깊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러 학문 간의 융합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이 꽤 축적된 요즈음 사회 분위기는 융합과 창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초학제적 연구의 목표는 지식을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향은 우리 정부의 연구 사업 관련 계획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먼저 개인 하나하나가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근본이 탄탄해야 통합적 사고를 하고 다른 분야로 뻗어 나갈 여유가 있다. 그 다음이 융합과 창조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활발하게 소통할 때 혁신적인 가치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학교에 늘 고맙다. 이제 막 학식을 갖춰가는 학부 시절의 나에게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였고, 오랜 시간을 앉아 자습했던 중도 3열은 거의 우리 집이었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힌 선생님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학과를 넘나들며 강의를 수강했던 것도 주옥같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친구들과 각자의 전공 지식을 기반으로 생각을 자유롭게 터놓고 얘기했던 많은 시간이 의미 있게 남았는데, 깊이는 다를지라도 그것은 분명 학제 간 소통을 통한 융합형 인재를 요구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와 일치하는 움직임이었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또 하나의 학위를 위해 달리고 있는 연구자로서, 많은 학우가 훌륭한 배움의 터전에서 성장하여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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