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사회부장

언젠가 군대 동기와 동성애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정의당 지지자로 사회적 이슈에 대체로 진보적 입장을 취했지만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우리는 평소 학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 관행이나 정치적 반대파를 곧잘 ‘종북’으로 몰아가는 극우 세력 등에 대해 함께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래서 이 친구가 확고한 반(反)동성애 입장을 드러냈을 때 무척 의아했다. 내게는 누군가의 성적 지향을 ‘반대’하고 억압하려는 것이야말로 인권·평등이라는 진보적 가치에 반하는 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수에 의한 차별에 반대한다는 대의와 ‘동성애 반대’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에게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르게 타고난 성적 지향이 아닌 소수가 향유하는 퇴폐적 성 문화에 가까웠다. 따라서 동성애를 용인하는 것은 사회에 악하고 해로운 성욕과 관습을 만연케 하자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다. 동성애가 ‘비정상적’이라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동성 커플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 행위는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중세신학부터 시작된 아주 고전적인 논증이다. 그의 주장은 동성애를 인정할 경우 자라나는 아이들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되고, 그럼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붕괴해 혼란이 일어난다는 전형적인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논리로 완성됐다.

이 대화를 떠올린 계기는 지난달 28일 교내 기독교 단체들이 개최한 반동성애 행사다. ‘서울대 베리타스 포럼’이라는 점잖은 이름에다 포스터에도 ‘인권 가이드라인과 대학 공동체성 문제’ 같은 온건한 문구뿐이었지만, 실제 오간 얘기들은 그보다 과격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서울대 구성원은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인권 가이드라인의 평등권 조항이다. 발제를 맡은 조영길 변호사는 이것이 초래할(?) “동성 간 성행위 폭증과 에이즈 폭증 등 재앙과 같은 각종 폐해들의 확대”를 우려했다. 박동열 교수(불어교육과) 또한 “동성애자인 학생에게 동성애로부터 이탈할 것을 권유하거나 상담하는” 등의 교육의 자율성이 제한된다고 말했다. 수동연세요양병원 염안섭 원장은 “의학적으로 분명한 동성애와 에이즈의 밀접한 연관성 등 동성애의 폐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학문적 자유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행사의 참가자들이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을 정리하면 무척이나 기괴한 주장이 된다. 인권 가이드라인의 평등권 조항이 기독교인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이는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할 자유라는 것이다. 또 이들이 표현의 자유는 “다른 구성원의 권리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토대로 한다”는 조항에도 반대를 표했다는 점까지 보면, 교내 반동성애 기독교 단체들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자유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명백하다. 동성애는 도덕적·사회적·의학적 차원에서 극심한 해악이므로 반동성애 운동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 2항을 들먹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명백히 반헌법적이자 반지성적이다. 그들은 37조 2항을 언급할 때 제한할 수 있다는 것만 강조할 뿐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핵심을 빠뜨리곤 한다. 스스로의 성적 지향에 따라서 살아갈 권리와 자유는 본질적이다. 그런데 성 소수자 모임에서 활동한 학생을 징계하고 감시한 의혹을 받은 어느 학교처럼, 반동성애 논리는 이러한 본질적 내용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또한 중세신학의 논증이나 수십 년 전 논파된 학문적 편견에 근거한 반지성주의도 반동성애 입장을 존중하기 어려운 이유다.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견해는 학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에이즈의 원인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지 동성 간 성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기독교 단체의 동성애 반대는 정당성과 합리성의 외피를 썼지만 기실 ‘동성애=악’이라는 종교적 전제를 바탕으로 소수자를 차별하겠다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맹목적 신앙과 인간에 대한 혐오를 ‘논증’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모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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