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미국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라이고 연구팀이 최초로 중력파를 직접 검출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6월에는 연구팀이 중력파를 두 번째로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1916년 자신의 논문에서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한 지 꼭 100년 만이다. 천문학자 헐스와 테일러는 서로 공전하는 두 별의 주기와 궤도반경이 감소하는 것으로써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증명한 공로로 199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적이 있다. 과학계는 중력파 발견을 2012년 힉스 입자 발견과 더불어 현대물리학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하며 중력파가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에 고무돼 있다.

 

 

중력파의 시작,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알기만을 원하는 과학자는 없다. 그는 발견에 대한 열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식을 습득한다.

그는 알기 위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위해서 알려고 한다.

-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과학은 이론과 실험이 발맞추며 발전한다. 실험만 있는 과학이나 이론만 있는 과학은 있을 수 없다. 정밀한 실험은 기존 이론을 보강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탄생시키고, 세심한 이론은 실험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이끌고 그 자신이 실험으로 뒷받침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중력파 검출 실험은 이런 과학의 발전 과정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관찰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냐는 질문에 주목하며 연구를 시작했다. 같은 자동차라도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면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실제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물리 현상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다르게 관찰된다. 일상생활의 경험에서처럼 시간과 공간이 각각 독립적이고 불변한다고 전제하면, 앞선 자동차 예시처럼 광속은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그에 따라 빛을 표현하는 물리 방정식도 그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거꾸로 물리 방정식의 형태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광속이 불변한다고 전제했다. 이 전제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연속된 시공간(space-time)을 형성한다. 또 아무리 관찰자의 운동 상태가 바뀌어도 광속은 변하지 않으므로, 관찰자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시공간은 바뀔 수 있다.

이처럼 광속의 불변성에 주목해 시공간의 개념을 재정립한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본질이 시공간의 휘어짐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었다. 당시까지 중력은 물체 사이의 관계만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이해됐기 때문에 중력이라는 힘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일례로 태양 주위를 지구가 공전하면 태양이 중력으로 지구를 잡아끈다고만 생각했지, 그런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 운동이 같다는 등가 원리를 적용했다. 피사의 사탑에서 나무공과 쇠공을 떨어뜨리면 동시에 떨어진다. 다른 방해 요소가 없으면 어떤 물체든 질량과 관계없이 똑같은 가속 운동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강궁원 책임연구원은 “아인슈타인은 중력 현상을 휘어진 시공간의 경로를 따라 물체가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현상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쉬운 예로 1차원 시간과 1차원 공간이 결합한 2차원 시공간을 동그란 고무판에 비유해 생각해보자. 고무판 가운데에 볼링공을 놓으면 2차원 고무판이 깔때기 모양으로 오목해진다. 여기에 구슬을 굴리면, 구슬이 볼링공에 의해 휘어진 고무판을 따라 공전한다. 만약 고무판이 휘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면 마치 볼링공이 구슬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는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이 결합한 인간이 사는 4차원 시공간에 똑같이 적용된다. 태양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지구가 공전하고, 지구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나무공과 쇠공이 떨어진다. 즉 질량이 있는 물질은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바꾸게 한다.

만약 질량이 있는 물질이 어떤 변화를 겪으면 시공간의 구조 또한 함께 변화를 겪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아무 물질이 없는 시공간에 중력의 변화가 생기는 가장 간단한 상황에서 자신의 방정식을 풀었고, 그것의 해로 파동방정식을 얻었다. 이는 잔잔한 호수에 돌이 떨어졌을 때 파동 형태의 물결이 이는 것처럼 중력의 변화가 시공간의 파동 형태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공간의 요동을 중력파라고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질량이 있는 물체에 의해 휘어진다. 따라서 지구는 태양으로 인해 휘어진 시공간의 경로를 따라 공전한다.

 

미세한 중력파, 빛으로 잡아내다

 

훌륭한 주장은 훌륭한 증명이 수반돼야 한다. 

- 천문학자 칼 세이건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예측에서 실제 검출까지 100년이나 걸린 것에서 알 수 있듯, 중력파를 실험으로 검출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파동인 전자기파가 맥스웰의 예측에서 헤르츠의 검출 실험까지 30년이 소요된 것과 대조적이다. 이형목 교수(물리천문학부)는 “중력파의 진폭이 작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전자기파는 전자와 상호작용을 잘 하기 때문에 핸드폰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도 검출할 수 있지만, 중력파는 그 정도로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천문학적 사건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만 실험적으로 겨우 검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도 중력파가 너무 약해서 검출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이 중력파를 예측한 지 45년이 지나서야 물리학자 조셉 웨버가 최초로 중력파 검출을 시도했다. 웨버는 아인슈타인이 원기둥 좌표계를 사용해 이론상 중력파를 예측한 논문을 토대로 원기둥 모양의 금속 바 검출기를 만들었다. 바 검출기는 금속 바 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전자 사이의 간격이 중력파가 지나갈 때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면서 발생하는 전류를 측정한다. 초기에 바 검출기는 과학계로부터 엄청난 각광을 받았고 실제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바 검출기가 검출한 중력파는 잡음이라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그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렸다. 바 검출기는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도가 좋지 못했고 그 구조상 특정 주파수의 중력파만을 검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오정근 선임연구원은 “용수철을 크게 진동시키려면 용수철이 늘어난 다음 줄어들기 직전에 때려줘야 더 크게 진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진동이 감쇄한다”며 “바 검출기도 이처럼 공명하는 주파수에 맞는 중력파가 들어왔을 때만 크게 진동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물리학자 리처드 가윈은 웨버의 통계처리법이 가짜 잡음도 인위적으로 진짜 신호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웨버의 실패에 대못을 박았다.

이후 바 검출기의 디자인을 구면(球面)으로 바꾸거나 저온으로 냉각시켜 감도를 높이려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검출기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만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레이저 간섭계는 1970년대 전후부터 가장 유망한 검출기로 관심을 받았고, 물리학자 라이너 와이스는 본격적으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검출기를 설계했다. 레이저 간섭계는 두 방향으로 갈라진 레이저가 각각 거울에 반사돼 먼 거리를 이동한 후 다시 합쳐질 때 생기는 간섭무늬를 확인하는 기기다. 갈라진 레이저의 이동 거리가 전혀 변하지 않으면 간섭무늬가 생기지 않지만, 중력파로 인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간섭무늬가 생긴다. 이렇듯 레이저 간섭계는 빛의 위상차를 재는 구조였기 때문에 더 넓은 주파수 대역에서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었다. 여기에 물리학자 킵 손과 로널드 드레버는 각각 간섭계 검출기의 이론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을 보강했다. 특히 드레버는 파브리-페로 공동(Fabry-Perot Cavity)을 도입해 레이저가 경로를 280번 정도 왕복하게 만들어 검출기가 실제 거리보다 더 긴 경로를 갖게 할 수 있었고, 거울에서 레이저가 불완전하게 산란하는 것을 막아 감도를 높일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주도로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 wave Observatory) 프로젝트는 1990년 최종적으로 미국과학재단의 승인을 받아 총 건설비용인 2억 1,100만 달러를 지원받게 됐고, 4km에 달하는 두 팔을 가진 L자 모양의 검출기는 워싱턴 주 핸퍼드와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에 건설됐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이처럼 거대한 지원을 받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라이고 프로젝트를 비판했다. 특히 물리학과 분과 프로젝트였던 라이고의 총 건설비용이 미국과학재단 천문학 분과 전체 예산의 2배에 달했기 때문에 천문학계의 반발이 심했다. 2010년까지 라이고가 중력파를 발견하지 못하고 감도를 높이는 개량 과정에 돌입했을 때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도 성공 여부에 반신반의했다.

그럼에도 미국과학재단은 라이고 프로젝트가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오정근 연구원은 “킵 손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2010년 당시 본인(킵 손)이 계산한 라이고는 아주 작은 감도 차이로 블랙홀 쌍성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많은 사람이 감도를 조금 더 올리면 되는 게임이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초기 라이고는 주변 잡음을 최소화함으로써 중력파에 대한 감도를 높였다. 이를 더 발전시킨 어드밴스드 라이고는 빛을 순환시켜 빛의 세기가 높아지고, 주변의 진동과 잡음에 영향을 덜 받는 거울이 설치됨으로써 초기 라이고보다 관측범위가 대폭 늘어날 수 있었다.

 

블랙홀의 충돌이 만든 중력파

 

우주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그것이 이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어드밴스드 라이고가 작년 9월 14일 중력파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은 가히 극적이다. 라이고는 매우 민감해서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기기가 꺼져버리고 관측 모드에서 튕겨 나오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데이터를 얻지 못하고 중간에 데이터가 비게 된다. 거기다 라이고의 감도는 장치를 켜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서 점진적으로 최대 감도에 도달하기 때문에 항상 높은 감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 9월 14일에도 오전 9시 20분에서야 핸퍼드와 리빙스턴의 검출기가 모두 최대 감도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30분 뒤인 9시 50분 중력파 신호가 포착됐다. 이는 검출기를 켜자마자 운 좋게 중력파 신호를 검출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GW150914’라고 명명된 이 신호가 중력파 신호라고 확증되기까지의 과정은 올해 2월까지 6개월이나 소요됐다. 웨버의 사례처럼 신호가 잡음일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해야 중력파 신호임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형목 교수는 “당시 아프리카에 굉장히 큰 번개가 있었는데 혹시나 라이고가 그것을 측정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며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이번 신호는 신호 대 잡음의 비가 24로 신호 자체가 상당히 깨끗했다. 또 신호가 가짜 신호로 오인될 확률도 20만 년에 한 번 꼴로 신뢰도가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중력파로 확신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는 단순한 그래프처럼 보이지만, 이를 물리 이론으로 해석하면 우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이종필 교수(건국대 상허교양대)는 이번 중력파 주파수가 우연히 가청주파수와 비슷했다는 점에서 “비유적으로 말하면 우주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마치 옆방에 있는 사람을 직접 볼 수는 없어도 옆에서 얘기하는 소리를 통해 내부의 정보를 얻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먼저 연구팀은 잡음을 제거한 신호의 파형에서 서로 공전하는 두 블랙홀이 병합할 때 나온 중력파가 검출됐음을 알아냈다. 블랙홀의 합병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덕에 중력파 검출이 가능했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두 블랙홀의 질량과 속도, 거리, 각도 같은 변수를 무작위로 대입해 20만 개의 가상 그래프를 얻은 다음, 이 중 실제 신호와 가장 가까운 그래프를 고르면 실제 신호를 만든 두 블랙홀의 운동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여기서 연구팀은 각각 태양질량의 36배와 29배인 두 블랙홀이 약 350km의 거리를 두고 광속 30%의 속도로 서로 회전하다가, 점점 회전 주기와 속도가 빨라져 광속 60%의 속도로 병합했음을 알아냈다. 이 정보에서 두 블랙홀이 충돌할 때 나온 중력파의 크기를 알 수 있었고, 중력파의 크기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계산해 두 블랙홀까지의 거리가 약 13억 광년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장소에서 검출한 신호의 시간 차이가 6.7ms라는 사실에서는 두 블랙홀이 마젤란 성운 방향에서 병합했음을 추적할 수 있었다.

위 그래프는 서로 공전하는 두 블랙홀이 병합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나온 중력파 신호다. 아래 그래프는 일반상대성이론에 무작위로 변수를 대입해 만든 20만 개의 가상 그래프 중 리빙승턴 측정값과 가장 가까운 이론상의 중력파 신호다. 새롭게 탄생한 중력파 전문학을 통해 이론상으로만 예측돼오던 천체 현상이 실체로 관측될 수 있다.

 

 

동영상 보듯 우주를 관측하는 시대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이번 중력파 최초 발견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사실상 최종적으로 증명됐다. 오정근 연구원은 “일반상대성이론은 거시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이론”이라며 “현재까지 계속 맞아오고 있었고 틀림없다는 믿음을 공고히 하던 중 거의 하나 남아있던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 중력파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중력을 전달하는 가상의 입자인 ‘중력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것이 질량을 갖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앞서 설명한 것처럼 중력파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해석하면 우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측할 수 있다. 이는 중력파 검출기가 단순히 중력파를 검출하는 기기가 아니라, 우주를 관측하는 하나의 새로운 ‘관측소’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전자기파로만 우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전자기파로 밝혀질 수 없었던 자연 현상들이 이제는 중력파로 밝혀질 수 있다. 이번에 관측된 쌍성 블랙홀도 전자기파는 방출하지 않고 중력파만 방출했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만 예측돼오던 현상이 실제로 발견될 수 있었다. 광학적으로 볼 수 없었던 블랙홀 같은 천체를 거의 그 표면과 가까운 데서 보는 수단을 발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라이고도 관측소(observatory)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중력파 천문학은 우주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가져다줌으로써 물리학과 천문학 전반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중력파를 통해 얻은 물리학적 정보를 다시 일반상대성이론에 적용하면 일반상대성이론이 어디까지 옳은지 그 한계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일반상대성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을 해결할 새로운 확장 이론이 나타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우주에는 블랙홀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큰 별이 붕괴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중성자별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같은 천문학적 질문들에도 중력파 관측소가 혜안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이론과 실험이 서로를 보완하는 과학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만약 더 많은 중력파 관측소가 함께 가동하면 더 선명하고 높은 감도로 중력파 신호를 잡을 수 있고, 중력파원의 위치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이번처럼 중력파 관측소가 둘이면 중력파원의 위치는 한 곳으로 결정되지 않고 특정 원 위에 있다는 추정만 가능하지만, 관측소가 셋 이상이면 중력파원의 위치를 한 곳으로 확실히 결정할 수 있다. 이는 다중 신호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의 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중성자별끼리 충돌하는 경우에는 중력파가 방출된 다음 시간이 지나면 전자기파도 방출된다. 이 경우 중력파 관측소가 충돌 위치를 알아내면 전파 망원경을 미리 그곳으로 돌려놓아 중성자별의 충돌을 전자기파로 관측할 수 있다. 천체 현상을 동영상 보듯이 관찰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중력파 발견 실험은 앞서 설명한 기초과학 내에서의 발전만 이끈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어떤 기술보다 높은 수준의 공학적 기술을 개발해 냈다는 의미가 있다. 레이저나 간섭계 같은 기술은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아예 새로운 기술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지금까지의 어떤 한계보다 높은 한계로 발전시켰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형목 교수는 “기술이란 좀 더 정교한 기술을 만들어 현실화시키는 문제”라고 말하며 이번 실험이 “단순히 기술의 한계치를 두세 배 늘린 것이 아니라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니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강궁원 연구원은 “중력파는 검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연구의 출발”이라며 “어떻게 응용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이번 발견에 기대감을 보였다. 중력과 시공간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그것을 기술적으로 이용할 여지가 열려있다. 먼 훗날 인간이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되는 날이 오면 이번 중력파 실험이 그 시작이라고 기억될 것이다.

 

 

메마른 한국 기초과학 연구, 단비는 언제 오나

 

국내에서는 2003년 중력파 연구 모임이 결성됐고, 라이고와는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중력파 검출기인 ‘소그로’ 제작이 계획 단계에 있다. 실제로 검출기가 작동할 수 있는지 판단하려면 일단 연구를 해봐야 기술적인 문제나 자금 지원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설령 연구에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더 정밀한 기술이나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과학 연구를 목표 지향적으로만 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형목 교수는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첨단 연구일수록 성공 가능성과 자금 지원 규모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한국에서는 건축 설계도에 따라 건축을 완성하듯 연구비 신청서를 자세히 쓴다”고 꼬집었다.

연구 지원이 부족해 아예 아이디어를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실제로 오정근 연구원은 “2010년 최신 수학 이론 중 하나를 중력파에 적용해보려고 했다가 지원이 부족해서 그만뒀는데, 얼마 전 이탈리아 그룹에서 똑같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냈다”며 “연구를 하다 보면 대단히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사람이 모자라고 지원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가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학은 수많은 실험과 이론이 맞물려 형성된 거대한 지적 구조물인데도, 원하는 문제의 답을 얻어내는 공식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 정도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이종필 교수는 성과 없는 과학 연구자들을 닦달하는 사례를 들며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사라질 연구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정부 정책을 보면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정부 정책 기조가 산업논리와 결합하면 기초과학은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기술로만 간주되고 중력파 연구는 아무 쓸모 없는 연구가 돼 버린다.

이런 한국의 상황은 기초과학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상황과 상당히 다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수백 년을 지나는 동안 기초과학 연구가 거대한 파급력을 일으킨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정근 연구원은 “1900년대 초 아인슈타인과 보어, 하이젠베르크가 일반인이 보기에는 무의미한 양자역학의 철학적 문제에 대해 엄청난 논쟁을 했는데, 그로 인한 양자역학과 전자공학의 발전으로 그 혜택은 우리 문명에 속속들이 들어와 있다”며 “선진국은 언젠가는 분명히 연구의 성과가 다른 분야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투자에 거리낌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형목 교수는 “일반인이 과학을 이해하는 속도보다 정책 입안자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속도가 더 느리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중력파 발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에 상당히 놀랐다고 답했다. 그가 이번 중력파 최초 발견 논문에 실린 1000여 명의 저자 중 14명이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일반인으로부터 이런 중요한 일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형목 교수는 연구자들 스스로 “지금 당장은 0.1%지만 나중에는 10%가 될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연구에 참여한 것”인데 “가시적인 성과보다도 지식의 창출에 같이 기여하고 동참했다는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해주는 것 자체가 최근에 와서 경험하는 성숙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과학도 하나의 세계관이자 문화로 자리 잡아 한국에서도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강궁원 연구원은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이 과학에 투자하기는 힘들다”며 급속한 경제 발전의 길을 밟은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기초과학에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경제 수준이 궤도에 오른 현재 기초과학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초과학 투자에 대한 의식이 전환되면 나중에 엄청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과학자와 정치가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기초과학 연구 성공 모델이 하나라도 빨리 나와 사람들이 그것의 파급력을 경험하면 이런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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