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과 일본의 영장류 연구

올해는 붉은 원숭이의 해다. 그런데 붉은 원숭이라는 원숭이가 정말 있을까? 머릿속의 이미지처럼 온 몸이 붉게 타오르는 원숭이는 없지만 몸 일부가 붉은 색을 띄는 ‘Rhesus macaque’ 라는 학명을 가진 붉은 털 원숭이는 있다. 이 붉은 털 원숭이는 활발하게 연구에 활용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Rh 혈액형도 붉은 털 원숭이의 혈액 연구를 통해 알려졌으며 백신, 뇌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붉은 털 원숭이를 포함한 영장류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우며 인간과 같이 고등한 사고, 인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영장류에 대한 연구는 행동, 인지, 생태적인 측면에서 영장류 그 자체에 대해 연구되거나 병리적, 생리학적인 모델동물의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영장류 연구에 있어 그 역사와 성과로 일본, 네덜란드, 미국, 독일, 영국 등 5개국이 유명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본은 유일하게 자국 내에 영장류가 자생하는 나라며 국가적으로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의 영장류 연구

침팬지 '파루'가 터치스크린 화면에서 더 신선한 채소를 찾는 문제를 손가락으로 클릭해서 풀고있다.

 

일본의 많은 영장류 연구 시설 중에서도 츠쿠바 영장류 연구센터와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츠쿠바 영장류 센터는 생리의학적인 연구가 활발하고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는 침팬지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 중 영장류 자체에 대한 연구로 활발한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했다.

일본 영장류 연구의 시작은 세계 2차대전 이후 1948년 영장류학자 이마니시 킨지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일본 규슈 고지마 섬의 야생 원숭이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 사회의 진화적인 원리를 밝혀내고자 했고 그의 연구에 자극받은 많은 학자들이 인간 본성의 기원에 대해 밝히고자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에 1959년에 영장류 연구 및 동물원을 위한 일본 원숭이 센터가 아이치현 이누야마시에 설립됐고, 이곳의 영장류를 보다 전문적인 시설에서 연구하기 위해서 1967년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가 설립됐다.

새롭게 지어진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는 현장조사뿐 아니라 영장류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 연구소는 진화와 계통, 생태와 사회적 행동, 인지 과학, 뇌신경과학, 세포 및 분자 생물학 5개 부로 나뉘어 운영된다. 토모나가 마사키 교수(교토대 영장류 연구소 사고언어분야)는 “현대 영장류 연구에서는 인지, 행동, 현장조사 같은 것이 각각 이뤄지기보다 이 모두를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음 설립에서부터 영장류를 통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유리라 연구원(교토대 영장류연구소 박사 수료, 교토대대학원 교육학연구과)의 통역과 안내에 따라 무균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후 실험시설로 들어갔다. 연구소 침팬지의 경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실험에 참여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아크릴판넬로 만들어진 견고한 실험실 안으로 통로를 따라 36살의 어미 침팬지 ‘클로에’와 16살의 딸 ‘클레오’가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방 안의 모니터 앞에 앉은 침팬지는 화면의 문제들의 알맞은 답을 찾아 손으로 클릭한다. 맞는 답을 클릭하는 경우 자동적으로 과일 조각이 침팬지에게 제공된다. 토모나가 교수는 “침팬지가 보고 있는 화면에는 여러 동일한 채소가 보여지는 데 각각 흠집과 같은 신선도가 다르다”며 “이때 신선함의 범주에서 흠집의 유무, 색깔 등을 달리했을 때 침팬지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인지하는지 관찰한다”고 설명했다. 옆에 앉아 있는 연구원은 침팬지가 고른 선택지를 외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고 정리한다. 토모나가 교수는 연구 목표에 대해 “침팬지가 다양한 물체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는지, 구체적으로 색깔, 질감, 방향성 등과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연구한다”며 “우리 인간이 세계를 보는 것과 어떠한 측면이 다르고 같은 건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쌓고 결국 이 둘의 인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험에 참여한 침팬지들은 실험이 완전히 끝나면 자연환경에 가깝게 지어진 야외 사육장으로 돌아간다. 3개로 구성된 사육장에서 침팬지들은 자유롭게 무리생활을 한다. 또한 몇몇 원숭이 종들은 작은 케이지에 가두지 않는 야외사육장을 둬 연구한다.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에는 침팬지, 일본 원숭이, 타마린 등을 포함해 총 16여 종의 영장류 855마리 개체를 보유하고 있다.

영장류에 대한 연구는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 뇌과학의 선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에 점차 그 연구 가치는 중요해지고 있다. 토모나가 교수는 “침팬지와 인간의 인지 능력이 각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걸맞게 진화했는지를 보며 마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며 “이런 연구들은 인간 사회에 대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생명과학과)도 “뇌과학연구가 발달하면서 결국 뇌의 진화를 연구해야 하는데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진화의 결과물을 확인한 것”이라며 “비교연구의 측면에서 다양한 영장류들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해 지금까지 실험실 내에서 조직, 세포 수준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던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막 시작된 한국의 영장류 연구

한국의 영장류 연구 역사는 일본과는 다르게 그리 길지 않다. 영장류 자체에 대한 연구의 경우 한국인 처음으로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장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희수 교수가 부산대에서 2004년에 영장류를 포함한 계통분류학 연구실을 열고, 2006년 최재천 교수가 이화여대에 부임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야생 자바 긴팔원숭이를 대상으로 필드 연구를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모델동물로서의 영장류의 경우, 2005년 청주에 다양한 영장류 연구자원 확보를 목표로 설립된 국가영장류 센터가 있다.

청주에 건설된 국가영장류 센터는 영장류 자원을 충분히 확보해 연구자들에게 지원하는 자급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연구 인프라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영장류의 다양한 질환 모델을 확립하고 있으며 영장류가 필요한 연구에 대해 외부 기업이나 연구진으로부터 실험을 위탁받고 국가 연구 과제를 수행한다. 국가영장류센터 허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중요한 실험동물인 영장류에 대한 자급력이 부족한데 이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족한 영장류 자원으로 국내 연구진이나 기업이 외국에 나가 실험을 위탁하는 경우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국내에서 연구를 하고 싶어도 외국에서 영장류 자원 수출을 제한하면 중지하게 될 수 있다”고 영장류 자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국가영장류센터는 붉은 털 원숭이를 포함한 3종의 영장류를 400여 개체 보유하고 있으며 2017년에 추가로 정읍에 3,000마리 규모의 원숭이를 대량으로 사육할 수 있는 시설이 완공될 예정이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영장류 행동인지 연구를 진행 중인 최재천 교수는 영장류 연구 후발주자로서 전략적으로 자바 긴팔원숭이를 선택했다. 그는 “긴팔원숭이는 일단 침팬지와 같은 고등한 유인원인데 비해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아직 연구가 거의 되지 않았다”며 “종이 한 종류거나 아종뿐인 다른 유인원들과는 다르게 긴팔원숭이는 종이 17종이기 때문에 다른 유인원보다 비교 연구에 있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긴팔원숭이는 원숭이에서 유인원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는 만큼 진화 연구에 있어 중요하다”며 “현재 연구 7년 차로서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에 있어서는 선도적인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야외필드 연구를 하는 최재천 교수와는 다르게 국립생태원 김예나 연구원은 국내 서울대공원 동물원 시설을 이용해 오랑우탄에게도 인간과 같은 공정성의 가치가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영장류 연구소 내의 침팬지 야외사육장. 이곳에서는 침팬지들이 자연환경에 가까운 넓은 공간에서 무리를 지어 살고 있다.

 

영장류 연구가 꽃 피기 위해선

국내 영장류 연구가 싹트려 하지만 연구 인프라 및 재정적으로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국내 동물원에서도 영장류 행동 인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연구에 적합한 시설은 아니다. 최재천 교수는 “국내 동물원의 경우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기에 잡종 교배 금지 같은 것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연구로 많이 쓸 순 없다”고 설명했다. 김예나 연구원은 “많은 동물원의 경우 복지 가이드라인이 지켜지지 않아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내분비계에 이상이 와서 실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 지원 측면에서 최재천 교수는 “영장류 연구소를 계획하려 했을 때 영장류 연구 특성상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재원을 필요했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보장하기 힘들기에 포기했다”며 “현재 긴팔원숭이 연구비도 국가가 아닌 기업으로부터 지원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영장류를 확보하고 있으며 행동연구가 가능한 전문적인 연구 시설이 필요한 실정이다. 김예나 연구원은 “전문적인 영장류 연구 시설에서는 생리적인 특성이나 행동학적인 특징을 가까이에서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다”며 “상호보완적으로 필드연구와 인도어(indoor)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영장류에 대해 행동 인지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설들이 조금씩 준비되고 있다. 내년에 완공되는 정읍 영장류자원센터에서는 원숭이들이 외부 콘트리트 벽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해 어느 정도 행동 연구가 가능한 시설이 구비될 계획이며, 국립생태원에서도 야외방사장을 비롯한 영장류 연구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연구비 지원 구조에 있어서도 장기적이며 성과중심이 아닌 연구비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최재천 교수는 “현재 연구비를 지원하는 구조는 보통 3년 단위인데 영장류 연구는 특성상 야생 동물과 친해지는 시간만 보통 1년이 걸린다”며 “10년, 20년 단위로 가는 숨이 긴 연구 분야로서 빠르게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고 돈이 되는 연구가 아니기에 투자 받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영장류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환경도 부족하다. 현재 국내에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연구실만이 행동 및 인지를 전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남학생의 경우에는 박사후 연구 과정 단계에서야 연구실에 입학할 수 있다. 학부생 예상현 씨(생명과학부·12)는 “영장류 행동인지연구에 관심이 있었으나 국내의 경우 이화여대밖에 없었으며 군문제와 겹쳐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최재천 교수는 “국립생태원을 장기적으로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기관으로 끌어올려 영장류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해 해결하고자 계획하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 공동지도교수제도, 학점 교류제 등으로 밑거름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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