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제56, 57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시 - 제56, 57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 대학신문
  • 승인 2016.10.09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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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요의 맛

 

누떼의 구름은 오래 전 저녁의 서 西를 향했다

회빛의 구름은 석양에 저물어 곧 최후를 맞겠다

 

누떼를 바라보며 석양에 잠긴다

이제 눈을 감고 존재의 연을 서행한다

 

어느덧 투명치 못한 나

저 누떼를 따르면 탁류는 멎을 것인가

아득한 지난날의 소요는 서를 넘으련다

—그만 각자의 처소를 갖기 위하여

 

바야흐로 석양은 탁한 슬픔이 소요하는 뜰이다

 

누떼는 뜰 안에 아무런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오롯 침묵으로 석양에 타들어간다

무정의 고개를 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누떼는 죽음 앞에서 끝내 투명하다

 

최후의 누떼 앞에서 한낱 소유는 적요가 된다

이것이 나의 처소였던가!

 

저녁이 당도해 목울대 안으로 적요가 넘어간다

투명하지 못한 것과 투명해진 것 사이에서

한참 동안이나 적요, 적요의 맛이 난다

 

 

그림 속의 새

 

눈물을 흘려도 눈이 젖지 않는 새와 역 주변을 거닐었다

새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아침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새에게 말을 걸면 의심이 커진다

고즈넉한 공기 아래

새가 날아가지 않기를 조심히 바라면서

나는 울지 않는 눈을 연신 닦아낸다

새는 나와 사물을 지나친다

 

새는 날개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눈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새도 나를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차 안으로 들어가는 상자 속에 새가 빠져버렸다

다른 상자로부터 새가 날아올랐다

 

기관사는 상자를 모두 화물이라고 불렀다

나는 기관사에게 화물 속의 날씨를 물었다

답변 없는 주위에 둘러싸여

좁은 상자로 물기가 스민다

수화물은 금세 사라졌다

마음이 돌아선 연인이 침묵할 때처럼 나의 눈은 젖어 있다

 

김지섭

독어교육과·09

제57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수상자

 

 

한 마리의 생

 

눈의 장막을 감으면 여전히 그날의 총성이 울린다

비어버린 속에 도리어 큰 울림으로—

 

누구도 새에게 정물이 되라고 한 일이 없다

 

바람은 새의 비행곡선을 범하며 그에게 한 마리의 생을 주었다

새는 죽는 날까지 바람을 거스르고 싶었다

바람이 아니라면, 볼기에 발그레한 저항은 피어오를 수 없었다

 

이제 새의 육신이 생명의 꼴이 되게 하는 것은 철사이다

둥근 새장이 새의 가죽을 받치면 죽음과 삶의 경계가 그어진다

그것은 죽음과 삶을 품는 시간의 대치이다

 

그 경계를 타고 다시 날아가는 것이 새의 일이다

새는 정물이 될 수 없어 가죽으로 새장을 품었으리라

 

새는 방안의 정물들을 바라본다

저마다의 정물 위로 시간의 언덕이 쌓여있다

가난한 정물이 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구도 새에게 방부된 삶을 살게 할 수 없다

 

새는 정물의 언덕을 딛는다

마침내 새는 죽음의 새장을 발끝에 걸고 날아보리라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한 마리의 생이 되리라

 

 

소라

 

파도 소리를 밟으면 두 눈은 날씨보다 먼저 흐려진다

떠나야할 때까지 물결을 발목에 덮어 쓰고

발바닥은 모래의 까슬함을 느낀다

모래사장 지나는 초겨울

손등을 비비며 바다 속으로 해가 지는데

바람이 춥다

바람이 춥다

복사뼈에 해초를 감은 채로

당신은 저만치 걸어간다

아이처럼 모래톱에 흩어진 소라를 줍는다

속에는 잘 여문 낙조가 있고

회오리치는 소리가 있다

수면을 등진 당신의 둥근 그림자는 어디를 향하는가

여기에는 끈적한 해변이 있고

소라 익는 술집이 있다

따끈한 술이 나오면 당신은 잔을 따르는 사람이자 받는 사람

 

박민규

지구환경과학부·10졸

제56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수상자

 

 

빗물이 창틀에 쌓여가고

한 줌의 부드러움을 삼킨다

눈시울이 다시 데워질 때

껍데기에 쌓인 소리들이 행주에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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