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용익 개인전 - ‘가까이…더 가까이…’

자신이 쌓아온 모더니즘의 견고한 성벽을 스스로 부숴버린 한 남자, 여기 그의 회고록이 있다. 40년간 한국 화단에서 모더니스트로 이름을 날렸지만 모더니즘의 기능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을 이어나간 김용익 화백의 개인전 ‘가까이… 더 가까이…’가 지난달 1일(목)부터 시작돼 11월 6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세 개의 층에 걸쳐 진행된 이번 전시는 특히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를 쌓는 것에 천착하는 모더니즘에 환멸을 느껴 그 틀을 깨려는 김 화백의 면모에 주목한다. 김원섭 학예연구사는 “개별 작품 설명에 치중하기보단 층마다 김 화백의 삶에 따른 구간을 설정해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설명하려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1층에는 70년대 단색화로 시작한 초기작과 모더니즘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 2층에는 90년대 ‘땡땡이’를 활용한 작품들, 3층에는 2015년에 제작된 관 속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첫 번째 층의 전시실로 들어서면 모더니스트지만 결코 모더니즘 안에 고립되지 않겠다는 김용익 화백의 의도가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시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들은 초기 작품인 ‘평면 오브제’(1977) 연작이다. 캔버스 천을 떼어내 아무렇게나 주름을 만든 후,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주름의 입체적인 형태대로 흔적을 남긴 이 작품은 벽에 평면으로 걸려있어 평면과 입체가 공존한다. 김 화백은 “입체인지 평면인지 모를 경계의 불확실성을 통해 기능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모더니즘에 흠집을 내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된 작품들은 이런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1, 3, 4, 6, 7’(1982)의 네모들은 언뜻 보면 모두 똑같지만 종이에 직접 그린 것과 하드보드를 잘라 붙인 것이 공존하며 입체와 평면의 환영을 일으킨다. 모더니즘에 대한 저항은 ‘무제(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1981-2011)에서 극대화된다. 평범한 소포 상자 더미에 불과한 이 작품 안에는 ‘평면 오브제’ 작품들이 들어있다.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을 직접 상자에 봉인함으로써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2층의 두 번째 전시실에선 김 화백이 모더니즘 미학으로 제작된 자신의 과거 작품을 직접 훼손해 모더니즘뿐만 아니라 모더니스트인 자기 자신을 비판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시실을 채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캔버스에 큰 단색 땡땡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려진 전형적인 모더니즘 회화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권위적으로 전시돼 절대적인 감상의 대상으로 남는 대신 끊임없이 수정되고 훼손된다. ‘가까이… 더 가까이…’(1996-2013)는 작품이 방치됐다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씌워진 비닐포장 그대로 전시돼 있고 그 위에는 김 화백이 휘갈긴 낙서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김 화백의 작품 훼손은 땡땡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려진 작품 위를 까만색 잉크로 덮어버린 ‘절망의 완수 #6’(1990-2002)에서 극에 달한다. 그는 “모더니즘 미술에선 작품이 미술관에서 절대적이고 독립된 존재가 된다”며 “끊임없는 수정과 훼손을 통해 작품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삼면화, 캔버스에 혼합재료, 157x226x16cm, 2015. 유리로 된 관뚜껑 위에 검은 마커펜으로 '인간의 자유, 평등, 평화를 추구하려던 근대주의 기획은 파탄이 났다'등 김용익 화백의 사색이 적혀 있다.

 

마지막 3층에선 수정과 훼손을 거듭한 그의 작품들이 급기야 관 속에 안치된다. 유리로 만든 투명한 관 안에 안장된 작품들 위엔 해당 작품에 대한 김 화백의 사색이 묘비명처럼 쓰여있거나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해 준다는 지장보살이 그려져 있다. ‘삼면화’(2015)의 유리관 안엔 작업물 여러 점과 자화상이 들어가 있고 그 위에 아담과 이브의 추방, 심판도, 지옥도 등이 그려져 있어 40년간 모더니즘의 언어로 작품을 그려온 자신의 세계에 대한 고통과 회의가 엿보인다. 이런 사색이 담긴 기존 작품들은 염하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가까이… 더 가까이…’라는 전시의 제목처럼 김 화백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작품에 가해진 수정과 훼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전시장에 걸려 있다가 어린아이의 낙서로 훼손된 그의 작품 ‘너를 보내며’(1995-2012)에는 ‘미술관 측으로부터 낙서에 의한 “훼손” 사실을 전화로 연락받는 순간 나는 이 그림이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는 김 화백의 설명이 쓰여있다. 모더니즘 미학을 사용하면서도 작품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끊임없이 훼손하며 저항하겠다는 김용익 화백. 이번 전시는 자신의 그림에 가까이 다가간 관객에게 그가 전해준 하나의 다짐 아닐까.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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