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르포] 문화가 스며있는 그 상가에 가다 - ② 낙원상가

진동이 손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콘솔게임부터 목소리에 화음을 더해주는 기타,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한 벌의 옷까지. 많은 것들이 데이터화 돼 무형으로 떠도는 이 시대에도 문화를 향유하려면 사물화된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그 바탕엔 그것을 유통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형성된 문화 관련 상업밀집지역, 즉 상가들이 있다. 콘솔 게임 ‘덕후’들의 보물창고 국제전자센터, 음악인의 젖줄 낙원상가, 그리고 패션계 터줏대감 동대문 패션상가까지. 이번 연재 기획에선 추억을 간직한 상가들을 찾아가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을 그려내고자 한다.

 

① 국제전자센터 ② 낙원상가 ③ 동대문 패션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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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 종로, 그 종로의 중심엔 1세대 주상복합상가 낙원상가가 있다. 높고 커다란 종로의 빌딩숲 속에서 투박하고 낡은 생김새로 48년간 제자리를 지켜온 낙원상가는 종로의 터줏대감이다. 상가 옆 자락에 붙어있는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하면 갖가지 악기들이 즐비하다. 클래식 기타부터 각종 음향기기까지 음악의 하드웨어가 가득한 2층과 3층을 지나 4층에 오르면 야외공연장까지 마련돼있다. 어설프게 퉁겨지는 기타 소리와 누군가가 수준급의 실력으로 시연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이 하모니를 이루는 이곳은 악기들의 고향 낙원상가다.

 

반백 살 낙원상가의 일대기

투박하고 낡은 건물로 보이는 지금의 낙원상가는 한때 과거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초기 낙원상가엔 양장점, 가구점, 카바레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해있었다. 그러나 1979년 종로2가와 종묘 일대에 밀집해있던 악기점들이 1979년 탑골공원 정비사업으로 인해 낙원상가로 이주하게 되고 남대문시장의 큰불로 남대문시장의 악기점까지 입주하면서 악기 상가로 특화됐다. 플루트 수리 전문가 지병옥 씨(77)는 “과거 낙원상가는 단순히 악기를 파는 것을 넘어 악사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직업소개소 역할을 하거나 악사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낙원상가엔 밤늦게까지 음악이 가득해져 전성기를 누렸다. 19년째 낙원상가에 악기를 수리하러 온다는 이박자 씨(77)는 “80년대엔 음악을 하려면 낙원상가를 와야 했다”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엄토미 악단도 이곳에 자주 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건재함을 자랑하는 낙원상가지만 이곳에도 몇 차례 풍파가 있었다. 전성기를 누리던 1980년대 초중반을 지나 1980년대 말 노래반주기가 보급되면서 연주자들의 일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명문악기’ 직원 김종세 씨(77)는 “골방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이들도 1990년대에 노래방으로 떠나며 악기의 수요마저 감소해 침체기를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넷으로 악기를 사고 팔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러던 중 2011년 ‘세시봉’ ‘김광석’ 등 복고열풍이 불기 시작해 기타를 찾는 고객이 많아져 낙원상가엔 다시 활기가 돌게 됐다. 기타전문점 ‘쥬빌리’ 직원 이혜연 씨는 “복고열풍을 시작으로 ‘슈퍼스타K’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뮤지션이 사랑을 받게 되면서 통기타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며 “여성 고객은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아이유가 연주하던 색깔기타를 주로 찾았다”고 말했다.

현재 상가 안엔 48년의 역사를 가진 낙원상가와 함께 청춘을 보내고 그 자리를 후대에 물려주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악기들이 빼곡한 2층 복도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유리문으로 된 화려한 악기점들과 대조되는 알루미늄 문으로 된 ‘신광 악기’는 낙원상가에 들어온 지 43년이 됐다. 60년간 플루트를 수리했다는 지병옥 대표는 “70~80년대만해도 내가 유일한 플루트 수리공이었다”며 “경찰악대에서 유일한 여성 플루트 주자였던 83세 최영석 씨가 나의 가장 오래된 단골”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60년 동안 연마한 그의 노하우는 며느리 민경선 씨가 배워 가업으로 잇는다. 일본 대사관에서 일하던 민경선 씨가 일본의 가업 계승 문화를 인상 깊게 보고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이다. 상가에서 제일 오래된 현악기 전문점 중 하나인 ‘한양악기’도 두 세대가 대를 이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아버지의 업을 이어 한양악기를 운영하고 있는 최신해 씨는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음악가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요즘은 어린 딸도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수리된 플룻을 불어보는 한 손님. 지병옥 씨는 만족한다는 듯이 웃어보이고 있다.

낙원의 하루, 그 속의 사람들

한 수리공이 밤 늦게까지 바이올린을 수리하고 있다.

둥당거리는 악기 소리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촘촘히 입점한 매장들이 하나둘씩 드르륵 셔터를 올리고 악기를 점검하고 조율하며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통상적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열지만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매장이 있으니 낙원상가엔 매일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본적적으로 상가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노점형태로 복도에서까지 악기판매가 이뤄지고 상인들은 “무엇을 찾으세요?”라고 물으며 호객행위를 하기도 하며 직접 악기를 연주해 행인의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상인들은 짬짬이 지하 식당이나 매장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점심을 먹고 2층 상가 중앙에 위치한 카페 ‘해오름’에서 식후 커피를 즐기기도 한다. 관광객부터 손님, 악기 조달업자로 북적이던 상가는 8시가 돼서야 하나둘씩 불이 꺼진다. 상가를 나서기 전 상인들은 새로 들어온 악기들을 점검하고 또 다시 다음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기타를 같이 사러 온 단짝친구 둘, 장발에 가죽 재킷을 입고 아코디언을 살피던 멋쟁이 아저씨까지. 해가 지고 어둑할 무렵까지 악기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갓 구매한 기타를 매고 상가를 나서던 신현호 씨(27)는 “직접 소리를 듣고 비교해가며 몸에 꼭 맞는 기타를 찾고 싶어 낙원상가를 찾았다”고 말했다. 오래 전 이곳에서 기타를 사서 배우고 연주하던 청년이 머리가 희끗해져 손자의 손을 붙잡고 찾기도 한다. 왕년에 기타 좀 튕겼다는 유희락 씨(79)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손자의 악기를 직접 골라주러 같이 왔다”며 자신의 악기도 낙원상가에서 샀다고 웃으며 말했다.

낙원상가는 음악인들이 모일 장소를 제공해 과거처럼 음악인들의 ‘둥지’가 되고자 한다. 4층엔 합주실과 녹음실을 마련해 사용을 원하는 시민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합주실에서 만난 서울 대성고등학교 밴드동아리 ‘이카루스’는 해가 지고 매장들이 문을 닫을 때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베이스 주자 오원식 씨(17)는 “낙원상가는 과거부터 음악의 메카였다고 부모님께 들었다”며 “이 악기도 부모님이 낙원상가에서 사주셨다”고 말했다. 동아리 대표 박중현 씨(18)는 “홍대가 밴드들이 서고 싶은 꿈의 무대라면 낙원상가는 그 무대를 위해 준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낙원상가’를 위해

낙원상가는 악기를 찾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닌 음악을 향유하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낙원’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과거 음악인들이 모이던 장이었던 4층 광장은 2012년에 1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 ‘멋진 하늘’로 정비돼 다채로운 공연들을 열고 있다. 매년 열리는 ‘유재하 동문회 낙원상가 동창회’는 객석 가득 메울 정도로 관객이 많이 모이며, 매주 열리는 뮤지션들의 다채로운 공연에 낙원상가를 찾는 발길이 많아졌다. 올해는 ‘반려 악기 캠페인’이 처음 진행되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기부받은 악기를 상인들이 무료로 수리해 문화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다시 기부하는 프로그램, 사연을 접수 받아 무료로 기타와 보컬을 강습해 주거나 결혼식이나 은혼식 같은 특별한 순간에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강습해 주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걸어온 낙원상가의 외벽은 비록 낡았지만 그 안의 음악적 자원은 결코 낡지 않았다. 추억의 장소쯤으로 여겨지던 낡은 낙원상가는 활기를 찾는 움직임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더 많은 이들의 추억을 담아낼 것이다.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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