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권리 혹은 국가의 책임
부모의 권리 혹은 국가의 책임
  • 대학신문
  • 승인 2016.10.1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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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이 교수 아동가족학과

저출산이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15~49세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은 아이 숫자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이 1.25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혼인과 출산 건수가 통계청의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내년이면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인구 절벽’에 도달한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려대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통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에릭슨에 따르면 인간은 성인기에 도달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돌봄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소위 생산성(generativity)의 발달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데, 생산성의 발달과업 달성에 가장 명백하면서도 비교적 접근이 쉬운 방법이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다. 부모됨은 성인에게 있어 중요한 자기가치의 표현이다. 우리는 부모역할을 수행하면서 경험하는 희로애락 속에서 심리적, 사회적,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고 자녀의 성장과 더불어 본인 또한 성숙해가며 인생의 통찰과 지혜를 습득한다. 부모가 돼보는 것, 그건 분명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내가 부모가 돼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어야 하는 것 혹은 책임져야 하는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아니라 국가도 했나 보다. “낳기만 하세요. 국가가 키워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괜한 걱정 말고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참 좋은 얘기다. 낳기만 하면 국가가 알아서 키워주겠다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 장려금을 주고, 좀 자라면 무상보육을 해주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를 낳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어린이집 문제를 생각해보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누려야 할 권리 중에는 자녀가 개별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별받지 않으면서 평등하게 사회적 돌봄과 교육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는 것이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 국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여전히 국가의 보육서비스에 불만이 많다. 혹시 우리 부모들의 요구가 너무 과도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일반인들이 무상보육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무상보육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무상보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에는 거의 완전한 무상보육이 제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매달 부모들이 20~30만원 정도를 추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16년 6월 기준으로 서울시의 어린이집 대기자는 77만 8천명, 116:1의 경쟁률이다. 이 경쟁률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한데, 어린이집의 유형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한정하면 경쟁률이 442:1로 훨씬 더 높아진다. 부모들이 보기에 국가는 무상보육이니 걱정 말고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무상보육이 가능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우리 아이를 보낼 수 있는 확률은 마치 로또 당첨과 같다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됨의 경험이 우리의 삶에 제공해주는 가치가 아무리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제공받아야 할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 부모로서의 책임만을 무한정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부모 되기를 포기함으로써 부모로서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 우리 사회의 극심한 저출산 현상의 이면에는 잠재적 부모 집단의 이러한 자포자기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아이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부터 충분히 확보해놓고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해라, 혹시 부모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 줄 수 있는 국가의 역할 혹은 국가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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